변종 벌거지 발호 중 지구촌 박수가 위안
우울한 비대면 시간 한류예찬 빠져 산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란 것이 또 고약한 신종 병증이라. 그 실시간 상영관에 접속하면 화면 그득 방방하게 들어찬 각양각색의 연속극과 영화가 간택을 기다리는데 그걸 한눈에 찍어 고르지 못하면 넥타이 빼곡이 진열된 방에 들어선 혼돈에 빠진다. '미드' '영드'라 불리는 연속극에 엎어지면 그 밑도 끝도 없는 중독에 빠질까 시작이 겁나고, 서양 단편은 쓰레기가 너무 많아 옥석 가리기가 쉽잖고, 충무로 영화는 안 본 것 찾기가 어려우니 이거야말로 풍요 속의 빈곤이라. 골라서 보는 시간보다 검색으로 미적이는 시간이 더 길어 종내에는 눈알이 욱신거려 그냥 덮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끊었던 넷플릭스를 다시 이은 것은 <지옥>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녹색 운동복이 넘쳐나고 매체마다 숱하게 인용되는 것이 '오징어'라.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어 궁금키는 하나 이제 갓 벗어난 그 촘촘한 그물망에 그리 쉬 되걸리지 않겠노라 들썩이는 손가락을 지그시 누르고 지켜보는 판이었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관람 집계 꼭대기에 섰던 <오징어 게임>이 내려간 자리에 유아인의 <지옥>이 올라서고 그 아래로 <연모>에다 <갯마을 차차차>까지 상단 진입을 도모하고 섰는 지경이라니 그걸 어찌 견디겠는가.

중세에 닥쳤던 재앙이었을 뿐이라 여겼던 '전염병'이 지구촌을 뒤집어 주인 노릇하고 그 치다꺼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꼬박 이태째. 세상은 사회경제·정치·문화·일상생활 전반에 엄청난 뒷걸음을 친다. 오죽하면 예수 이전과 이후를 나누던 BC와 AD를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이후(After Disease)로 바꿔 써야 한다 아우성이겠는가.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 문을 닫고 국경을 걸어 잠그고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통에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지고 기울어진 불평등 구조는 더욱 나빠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란 소통의 단절과 개별화를 부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더라. 대면을 비켜 가야 하니 SNS가 활발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내 페이스북 친구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런 수그러들지 않는 변종 벌거지의 발호 와중에 얻는 위안이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박수소리다. 미국 유수 온라인 쇼핑몰에서 '달고나' 뽑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거나 느닷없이 울려 퍼지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지나던 서양 청년들이 모두 '얼음'이 된다거나 지하철 승강장에서의 뜬금없는 '딱지치기'나 한인촌 곱창집의 장사진 말이다. 봉준호 윤여정에 이어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다 아메리칸 팝스 어워드를 삼키고 190개국에서 2억 인구가 본다는 넷플릭스 드라마차트 1위에 한국 연속극이 거푸 올라타는 꿈같은 이벤트를 본다. 국자에 설탕을 녹여 먹던 '뽑기'와 붕어빵 어묵 떡볶이… 퍼렇거나 주황의 성긴 천막 아래서 혹은 너그러운 담부랑에 기대서서 익혀지던 그 남루한 시절의 주전부리가 눈 푸른 소녀들의 선망 아이템으로 등극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이 우울한 비대면 시간을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떼로 넘어오는 한류예찬의 '국뽕'에 빠져 산다. 검·언 적폐들의 단말마적 발호를 곁눈질하며. '조선희'의 말마따나 "적당량의 국뽕은 영혼의 종합비타민제다. 국수주의자라는 혐의는 적절치 않다. 유치하다거나 정신승리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도 당치 않다. 한국인의 애국심은 외국을 침략하는 데 쓰인 적이 없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