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마을 200년 넘은 팽나무
우리네 삶·죽음 자취 지켜봐
지족마을 달반늘 펼쳐진 갯가
수십 명 나와 함께 작업 '눈길'

▲ 설천면 진목리 고사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팽나무
▲ 설천면 진목리 고사마을 언덕에 자리 잡은 팽나무.

◇생사고락을 묵묵히 지켜봐 온 노거수

8월은 무더웠다. 흙먼지가 풀풀 날렸고 바람이 잦아든 바닷가에는 비릿한 갯냄새가 머물렀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눈에 들어와 박혔다. 휘적휘적 올랐더니 마을 들머리 언덕배기에 나무그늘이 짙었다.

설천면 진목리 355번지에서 고사마을을 200년 넘게 지켜온 팽나무였다. 아래는 없던 바람이 들판과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골목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왔다. 한 손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뒤춤에 올린 채로 가만히 걸어와 자리에 앉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자락과 들판을 넘어 바다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편안했다. 푸른 무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벼들로 짙어지고 있었고 갯벌을 머금은 바다는 갈수록 거뭇거뭇해지고 있었다. 나뭇잎이 살짝 흔들리자 햇살이 바람에 흩어졌다.

"조금 전에 버스가 한 대 올라가데예." "영구차였던 모양이네. 각중에 사람이 죽었거든. 마을에서 제일 젊었는데 육십여섯이라지, 자꾸 사람이 없어지네." 그러고는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이 나무는 저 너른 들판과 더불어 이런 모습까지 수도 없이 보았을 것이다.

▲ 창선면 부윤리에서 만난 느티나무 당산나무<br /><br />
▲ 창선면 부윤리에서 만난 느티나무 당산나무.

◇공동체의 소망이 녹아 있는 당산나무

1월은 매서웠다. 날씨도 차가웠지만 몰아치는 칼바람이 옷섶을 파고드는 기미가 예사롭지 않았다. 들판은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고 바다는 바람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며 갯바위 틈새에 끼여 소리를 죽였다.

창선면 부윤마을 들머리 636-5번지에서 잘생긴 나무를 만났다. 구름 낀 하늘은 어두웠고 나무는 밑둥치를 지나자마자 서너 갈래로 갈라지며 하늘로 솟구쳤다. 가지들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가장자리를 마감하면서 구름사탕 같은 동그라미를 너덧 그려놓았다.

정자와 제당도 있었다. 대들보에는 '1978년 음력 11월 17일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얹었다'고 적혀 있었다. 벽에는 '1979년 양력 1월 13일 현재의 보관 물품으로 촛대 식기 대접 쟁반 돗자리 중발 종기 기 주전자…' 등이 나열돼 있었다.

다시 느티나무 당산나무 밑동을 보았더니 대나무 가지가 돌아가며 꽂혀 있었고 왼새끼도 한 바퀴 두르고 있었다. 제단에는 작은 돌 하나만 놓여 있었지만 지금도 동제는 지내고 있을 것 같았다. 거친 자연 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소망을 받아 안은 당산나무였다.

▲ 창선도 왕후박나무.
▲ 창선도 왕후박나무.

◇넉넉한 자태로 전설을 품은 나무

창선면 왕후박나무(대벽리 669-1번지)에는 전설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나가 왜적과 싸웠다는 것이다. 그때는 나무가 이렇게 크기 이전이니까 분명 지어낸 얘기지만 충무공에 대한 남해 사람들의 애정과 존경은 여기에도 녹아 있다.

멀리서 제법 크게 빛난다 싶어 다가가 보면 그 대단한 품새에 깜짝 놀라고 만다. 둘레를 돌아보면 얼마나 큰지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된다. 남해 온 김에 나무를 찾는 사람도 많지만 이 나무를 알현하러 왔다가 남해를 둘러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밖에 고현면 오곡리 1543-2 회화나무, 도마리 242-1 녹나무, 남면 당항리 1997 비자나무, 서면 평산리 161-5와 서상리 1286-8의 느티나무, 가직대사 삼송(서면 노구리 1083-5 남상리 685 남상리 1166-8)도 찾아볼 만한 멋진 나무들이다.

▲ 지족마을 달반늘에서 만나는 갯벌 풍경과 사람 모습
▲ 지족마을 달반늘에서 만나는 갯벌 풍경과 사람 모습.

◇사람살이와 함께해 온 갯벌들

남해의 갯벌은 크지 않다. 유명한 다른 지역 갯벌은 지나치게 너른 때문인지 사람들이 안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남해는 옹기종기 숨어 있는 갯벌마다 물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빠짐없이 바다로 내려온다.

널리 알려진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한적한 마을에도 갯벌은 달려있다. 지족마을 달반늘에서도 갯가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까닭이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나와 일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저마다 색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경운기까지 동원해 공동작업을 벌이기도 한다.

창선섬 천래섬(가인리 산178-2)에서는 나무로 얽은 전통시대 선착장을 볼 수 있다. 차진 펄흙으로 덮였는데 노로 저어 가는 작은 배도 있다. 물이 빠지면 섬에 들어가 도둑게도 눈에 담을 수 있다. 갯일 마친 할머니를 만나면 갓 잡은 낙지를 두고 흥정도 해볼 수 있다.

▲ 물건리 방조어부림에서 내다본 바닷가 풍경. /독자 윤병렬 씨·김훤주 기자
▲ 물건리 방조어부림에서 내다본 바닷가 풍경.

◇사람과 자연에 두루 이로운 마을숲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남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마을숲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잎 지는 활엽수로 이뤄진 숲이기 때문에 단풍 드는 가을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아닌 봄 여름 겨울도 충분히 그럴듯하다.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어 사람에게 이롭고 고기에게 시원한 그늘과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니까 자연에 이롭다. 시원한 그늘은 바로 이해가 되는데 물고기 먹을거리는 무엇일까. 나무에서 생겨나는 식물성·동물성 플랑크톤을 말한다. 자연을 이롭게 함으로써 그 혜택을 돌려받는 선순환을 선조가 알고 실천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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