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급 5세기 후반 축조 추정
삼봉산-가야리 사이 마을 위치
소·대가야 계통 유물 등 혼재
군, 도 문화재 지정 절차 계획

아라가야는 고대 함안 지역에 있던 나라다. 아시랑국 또는 안락국으로도 불렸다. 561년 멸망(신라 통합) 전까지 위세를 떨쳤다. 중심세력은 아라가야 옛 도읍지인 가야읍에 있었다. 토성으로 둘러싼 함안 가야리 유적이 우두머리 거처였다. 가야리 유적 왕궁은 최고 높이 8.5m, 너비 20~40m로 발견됐다. 같은 시기 다른 가야권역 그 어디에서도 비교할 상대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왕궁에서 보이는 말이산은 안락국을 다스리던 역대 왕들이 잠들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우두머리 산'이라는 뜻에서 말이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자리에 왕릉급 무덤이 즐비한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함안군청 뒤편 가파른 언덕 위에 터를 튼 아라가야 최초 왕릉급 무덤인 4호분을 기점으로 열을 지어 고분이 서 있다. 구릉 정상과 가지 능선에 있는 초대형 고분 37기는 남쪽을 향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내려간다.

▲ 선왕고분군 발굴조사 구역 전경.  /함안군
▲ 선왕고분군 발굴조사 구역 전경. /함안군

함안 하면 600년 가까이 단계적으로 변화해온 무덤 양식과 외형을 한자리에서 보여주는 대표적 가야유적인 말이산고분군(사적 제515호)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곳이 함안 선왕고분군이다. 말이산고분군 4호분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세 개 봉우리를 가진 삼봉산(272m)이 보이는데, 이곳과 가야리 사이에 자리한 선왕마을에 고분군이 자리한다. 선왕고분군은 야산 낮은 산지에 분포한다. C자 모양으로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지금까지 이곳 지표상에서 확인된 무덤은 150여 기. 직경 10~15m 규모 중대형급 삼국시대 고분으로, 축조 시기는 5세기 후반기로 추정된다.

무성하게 자란 잡목만 제거되면 말이산고분군은 물론 가야리 유적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선왕고분군이다. 이 무덤에서 함안 중심고분군인 말이산고분군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다. 약 700m 떨어진 자리에는 아라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함안 가야리 유적도 있다. 중하위계층 봉토분이 몰려있는 선왕고분군과 왕릉급 고분이 위치하는 말이산고분군 간 출토 유물 성격만 놓고 보면, 가까운 거리인데도 서로 다른 양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말이산고분군은 대부분 아라가야 계통 유물 일색이다. 반면 선왕고분군은 동시기 소가야, 대가야 계통 유물 등이 혼재한다.

선왕고분군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지역 향토사단체 조사와 창원대박물관이 진행한 아라가야 문화권유적 정밀지표조사를 통해서다. 발굴조사는 이후 수십 년간 이뤄지지 못하다가 2017년 7월 처음 이뤄졌다. 가야읍 묘사리 야산에 단독주택 신축을 위해 사업시행자가 군에 건축허가(976㎡)를 신청했다. 군은 매장문화재 분포지역에 있던 단독주택 신축 예정 터를 대상으로 공사 전 입회조사를 했다.

▲ 발굴조사가 진행된 함안 선왕고분군 일대. 발굴 이후 2필지에는 집이 세워졌고, 1필지에는 보존 조처가 내려졌다. 보존 중인 집 위 문화재 구역에 모래주머니와 천이 덮여 있다.  /최석환 기자
▲ 발굴조사가 진행된 함안 선왕고분군 일대. 발굴 이후 2필지에는 집이 세워졌고, 1필지에는 보존 조처가 내려졌다. 보존 중인 집 위 문화재 구역에 모래주머니와 천이 덮여 있다. /최석환 기자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토기편 다수와 함께 삼국시대 석곽묘(돌널무덤) 3기가 확인돼 정밀발굴이 이어졌다. 2017년 7월 12일부터 43일간 유구가 파악된 범위(660㎡)를 우리문화재연구원이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삼국시대 봉토분 1기, 석곽묘 3기, 시대 미상 토광묘(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은 무덤) 1기 등 모두 6기 유구가 확인됐다. 금동제 세환이식(귀걸이)·철촉(철제 무기)·유개고배(굽다리접시)·장경호(목긴항아리)·대부파수부완(다리와 손잡이가 달린 접시) 등이 출토됐다. 석곽묘 주변 지표에서는 파수부배(손잡이잔)·발형기대편(화로모양그릇받침)·통형기대편(원통모양그릇받침) 등 토기편 다수도 수습됐다. 도굴 규모가 커 남아있는 유물이 많진 않았다.

소규모 발굴조사는 두 차례 더 진행됐다. 인접 지역에서 단독주택 조성과 주택 진입로 등을 내기 위한 신청이 추가로 들어와서다. 2018년 진행된 조사에서 삼국시대 목곽묘(덧널무덤) 1기, 석곽묘 5기, 봉토분 2기 등이 나왔는데, 그중 봉토분인 2호분과 3·6호묘(석곽묘)는 조사구역 경계 밖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후 문화재 자문회의 결과에 따라 석곽묘 일부는 공사 범위에서 제외된 뒤 인근 봉토분과 함께 보존 조처됐다.

2019년 12월 20일 착수해 2020년 4월 10일까지 이뤄진 발굴조사에서는 암반층에 조성한 삼국시대 봉토분 1기, 석곽묘 8기 등 12기가 조사됐다. 유물은 삼국시대 기대편(그릇받침)과 고배·단경호·철촉 등 66점이 출토됐다.

지난 24일 오후 방문한 선왕고분군 발굴조사 구역은 집이 들어선 상태였다. 유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3필지 중 2필지에 예정대로 단독주택 2채가 세워진 것이다. 1개 필지는 조사 이후 보존 조처돼 모래주머니와 파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신축주택 옆으로는 컨테이너가, 집 앞쪽으로는 진입로가 나 있었다. 밭 경작지와 조경수 식재지도 보였다. 임야로 된 일대는 수목이 무성했다. 고분 위로 솟은 나무를 비롯해 고분 주변에는 민묘가 조성돼 있었다. 과거 있었던 도굴로 고분이 움푹하게 파인 모습도 드러났다.

▲ 볼록하게 솟아있는 선왕고분군. 발굴조사로 잡목과 풀이 제거된 상태다.  /최석환 기자
▲ 볼록하게 솟아있는 선왕고분군. 발굴조사로 잡목과 풀이 제거된 상태다. /최석환 기자

선왕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마을을 감싼 산이 문화재 구역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태어나 20살 때 선왕마을로 시집왔다고 밝힌 심재춘(82) 씨는 "문화재라는 건 다들 알 거다. 예전에 산에 올라가서 돌을 들어내면 유물이 많이 나왔었다"며 "거기서 가져온 걸 마을 사람들이 팔아먹고 그랬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떠나고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중 땅이 많은 곳이라 (문화재) 지정이 가능할진 모르겠다"고 밝혔다.

안병무(65) 씨는 "문화재로 묶인 땅에 우리 선산이 있다. 종중 땅이 산에 있기 때문에 문화재 지정을 찬성하느냐, 마느냐는 혼자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라며 "(추후 문화재 지정 절차가 진행된다면) 다른 사람들과 논의해보고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어려서부터 집 앞이 대밭이었다. 문화재인 건 모르고 지냈었다"며 "예전에 배수로 작업을 하는데 전문가들이 와서 보고는 유물이 있다고 얘기하더라. 집 앞 대나무를 쳐내다가 그때 문화재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 전했다.

함안군은 선왕고분군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으로 판단, 내년께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추가 발굴조사에 앞서 경남도 지정문화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먼저 진행할 방침이다.

조신규 함안군 가야사담당관실 가야사 담당 계장은 "선왕고분군은 일대 나무만 제거하면 가야리 유적과 아라가야 고도의 경관을 바로 마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은 함안 말곤 없다"며 "군에서 선왕고분군을 중요 유적으로 보지 않았다면 이미 개발돼서 다 없어졌을 거다. 현재 문화재청에 보존 요청을 해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사유지로 묶인 곳에서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추후 땅을 매입해서 정비를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 하반기에 도 기념물로 만들기 위한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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