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중고생 241명 대상 조사
부당 대우에 38% 무대응 응답
권리 보장 도울 체계·상담 강조

#통영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인 ㄱ 군은 1년 2개월가량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근로계약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시작한 첫 알바였다. 사용자는 주말 알바였던 ㄱ 군에게 매주 두세 번 평일 업무도 부탁했다. 처음엔 거절했지만 "사람이 없다", "매장이 빈다"는 사용자 말에 불만을 감추고 일했다. 돈을 더 받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컸다. 월급날, ㄱ 군은 근무 시간표·주휴수당·최저시급을 기준으로 자신이 받을 금액을 사용자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전했다. "왜 최저시급으로 계산을 했느냐"는 호통으로 돌아왔다. 6500원. 돈이 급했던 ㄱ 군은 사용자가 제시한 시급을 수용했다. 다시 6500원을 기준으로 받을 금액을 정리해 사용자에게 보냈다. 그날 밤이나, 적어도 다음날은 받으리라 여겼던 월급은 차일피일 미뤄지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계좌에 찍혔다.

ㄱ 군은 "일 년 중 8개월은 일주일 이상 월급을 미뤄 받았고, 한 달을 미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함께 일하던 주말 알바생이 그만두자 ㄱ 군은 주말 13시간 일을 해야 했다. 용기를 내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사용자는 ㄱ 군을 압박했다. 수개월 속병을 앓던 ㄱ 군은 이사를 하면서 겨우 일터에서 벗어났다.

노동권과 노동법에 대한 청소년의 인식은 높아졌지만, ㄱ 군의 사례처럼 부당한 행위에 대응하고 해결하는 데는 서툰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확대와 현실적인 지원체계·상담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오는 까닭이다.

27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남지역본부 대강당에서 '2021년 경상남도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 보고·청소년 노동인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경남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준), 경남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창원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주관했다.

ㄱ 군 사례도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됐다. ㄱ 군은 학교에서 '찾아가는 노동인권 교육'을 듣고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깨달았다. 상담을 받고, 최저시급 미지급 금액과 연장근로 수당을 받고자 진정서를 쓰면서 ㄱ 군은 "노동인권 교육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남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경남지역 중·고등학생 241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노동권 인식은 높았지만, 부당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회피하는 경향이 컸다.

같은 일을 한다면 성별·학력·연령 등 관계없이 똑같은 돈을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49%(118명)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가사노동을 임금노동과 같게 대우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는 쪽이 높았다. 근로계약서 작성, 최저임금, 주휴수당, 법정 근로시간 등 노동을 하면서 꼭 필요한 지식도 대부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는 청소년 대부분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고 계속 일을 했다든가(38%), 일을 그만뒀다(19%)고 답했다.

서영옥 창원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청소년 노동권 인식, 노동법 이해는 많이 향상했으나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는지는 더 많은 교육과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이 모든 학교, 청소년기관·시설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 상담팀장은 "교육부, 고용노동부, 노동상담기관 등이 머리를 맞대 청소년을 도울 현실적인 체계와 상담을 고민해야 한다"며 "청소년이나 청소년 노동자가 주체로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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