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나비섬의 속내에 담긴 앵강만

남해를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활짝 편 나비 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쪽 위가 창선섬이고 나머지 세 날개는 남해 본섬이다. 접었다 펼쳐서 만든 데칼코마니에서 왼쪽 아래 끝과 오른쪽 아래 끝이 제각각 가천마을과 두모마을을 이루고 있다.

가천에서 두모까지 두 날개 사이 옴폭 들어간 데가 앵강만이다. 여기에 홍현·숙호·월포·두곡·용소·화계·신전·벽련까지 모두 열 개 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은 모두 독특하고 개성이 뚜렷하다.

산비탈 다랑논으로 유명한 가천, 크고 멋진 마을숲과 석방렴을 갖춘 홍현, 전복으로 이름난 숙호, 몽돌과 모래를 모두 가진 해수욕장의 월포·두곡, 미국마을을 품은 용소, 역사가 오랜 화계, 마을숲과 석방렴에 모래사장까지 있는 신전, 마을숲이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원천, 어항·갯벌·갯바위에 농지까지 통째로 자연미가 빼어난 벽련·두모가 그것이다.

◇바래길의 알짜가 모인 앵강다숲길

가천에서 두모까지 열 개 마을을 이으면 남해 바래길의 두 번째 앵강다숲길이 된다. 산과 바다, 들판과 골짜기를 두루 누리고 사람과 마을을 만나면서 걷는 길까지 평탄한 편이라 가장 많이 찾는 구간이다.

앵강다숲길은 걷다 보면 곳곳에서 호쾌한 전망을 만난다. 언덕배기나 산중턱에서 고개를 돌리면 툭 트인 바다가 그 너머까지 시원하게 뚫려 있다. 특히 가천에서 홍현으로 가는 고갯길은 수평선까지 거침없이 펼쳐지는 바다가 걷는 내내 동행하며 어깨를 토닥여 준다.

바다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아기자기한 눈맛도 있다. 이 가운데 화계에서부터 원천·벽련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산이나 언덕으로 올라가지 않고 줄곧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어서 갯바위와 파도의 어울림과 해녀들 물질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다른 숨은 명품 두모마을 다랑논

남해에서 가장 북적이는 데가 가천마을이다. 가천마을 다랑논은 산비탈에 가파르게 계단처럼 이어진다. 거친 자연에 맞서며 고된 노동으로 일군 다랑논에는 이제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그에 뒤지지 않는 명품 다랑논을 품은 데가 두모마을이다. 가천마을 다랑논이 바깥에서 쳐다보는 눈맛이 시원하다면 두모마을 다랑논은 골짜기 오목한 데 들어서 있어 안길을 더듬으며 살펴보는 재미가 뛰어나다.

고개를 지나 마을을 향해 내려가면 부드러운 곡선을 뽐내는 논두렁이 줄줄이 이어진다. 여기 논들은 커다란 바위까지 여럿 품고 켜켜이 펼쳐진다. 좌우에서 둘러싼 나지막한 산들이 계절마다 다양한 색상으로 배경을 그럴듯하게 받쳐준다.

마을에서 거슬러 올라도 괜찮다. 한 발짝 오를 때마다 숨어 있던 논이 하나씩 나타난다. 곳곳에 있는 크고작은 바위들도 조화롭게 느껴진다. 바다가 좋아 금산에서 내려왔다는 두꺼비바위는 살짝 돌아앉았다. 삐뚜름한 논두렁은 기대고 서서 얘기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을에도 명물이 적지 않다. 당산숲과 밥무덤도 있고 문을 닫은 초등학교 자리도 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우거진 당산숲은 개울에 걸쳐져 있고 개울에는 학교로 이어지는 좁다란 통로가 있다. 옛적 아이들은 여기 당산나무 아래에서 물고기들과 놀았겠지.

◇그럴듯한 산책로를 품은 용문사

호구산 중턱에 앉아 앵강만을 내려다보는 용문사에도 명품이 여럿 있다. 단단하고 짜임새 있는 대웅전, 명부전을 차지한 지장시왕상, 천왕각을 지키는 사천왕상 등 문화재들도 눈길을 던질 만하고 굵은 둥치를 자랑하며 오랜 역사를 일러주는 여러 노거수도 한 번 올려다볼 만하다. 전각 뒤편 언덕배기의 차밭도 잘 가꾼 품새가 시원스럽고 정겹다.

백련암을 거쳐 염불암까지 올라가는 산책길도 멋지다. 거리는 왕복 1km도 안 되지만 여기서 누리는 재미와 보람이 상당하다. 가파르지도 완만하지도 않은 콘크리트길을 타박타박 걸으면 물소리와 숲이 한꺼번에 다가선다.

숲에는 서어나무가 유별나게 많은데 울퉁불퉁한 몸통에 얼룩덜룩 무늬를 걸치고 줄줄이 늘어섰다. 가장 잘생긴 친구는 염불암 앞에 있다. 굵지 않은 줄기가 밑둥에서 여럿 뻗어나와 올라가면서 멋진 모습을 이루었다. 맞은편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면 머릿속이 맑아진다.

앵강만에 와서 보면 자연은 사람과 함께하고 사람은 자연 안에 들어가 있다. 많은 이가 남해를 즐겨 찾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싶다. 색다른 것 같으면서도 왠지 푸근하고 친근하다. 그래서인지 그냥 와서 걷고 쉬고 보고 누리기만 해도 무엇인가 마음이 넉넉해지는 데가 앵강만이다. 문의 앵강다숲 사무국(055-863-0964), 남해군생태관광협의회(055-862-8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