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임금 약 2억 안 줘
28살부터 농사·돈사 관리 시켜
하동경찰서, 80대 농장주 조사
장애인단체·기관도 대응 나서

34년간 지적장애인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익을 얻은 혐의로 80대 농민이 경찰에 붙잡혔다. 오랫동안 장애인 노동력을 착취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또 확인되면서 장애인단체와 관련기관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농어촌지역 피해자를 확인하는 추가 실태조사도 필요해 보인다.

◇또 '착취' 의심 사례 = 27일 하동경찰서는 형법상 노동력 착취와 준상습사기 혐의로 ㄱ(81) 씨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ㄱ 씨는 1987년 하반기부터 올해 7월까지 하동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중증 지적장애인(61)에게 일을 시키고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농장에서 일을 시작한 34년 전 피해자는 28살 청년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ㄱ 씨는 피해자에게 매일 7시간 이상 농사, 돈사 관리, 감 수확 등을 시키고 임금을 온전히 주지 않아 2억 5000만 원 상당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 계좌를 분석해보니 34년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했어야 할 임금 2억 8000만 원 가운데 3400만 원만 지급했다. 경찰은 연 1회 30만 원에서 많으면 120만 원가량이 지급됐으며, 부산에 있는 피해자 아내가 자녀 둘과 함께 이를 쓴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ㄱ 씨는 함께 살던 피해자가 집에 없어 지난 7월 14일 가출 신고를 했다. 경찰은 이튿날 인근 마을에서 피해자를 발견했으며, 조사 과정에서 노동력 착취를 의심해 지금까지 수사를 해왔다. 피해자는 착취를 인식하지 못했으나 ㄱ 씨는 조사에서 착취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하동군을 비롯해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과 함께 피해자 지원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촘촘한 조사·지원 필요 = 지난해 7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남지부 등은 △2018년 거제 한 선박 소유자의 8년간 50대 지적장애인 노동 강요·임금 착취 △2017년 김해 한 비닐쇼핑백 제조공장 업주의 15년간 50대 지적장애인 중노동·억대 임금 미지급 △2017년 합천 한 축사 업주의 7년간 50대 지적장애인 상습 폭행·임금 착취 등 발달 장애인 노동착취 실태를 고발한 바 있다.

당시 통영 섬마을 가두리 양식장에서 19년간 지적장애인에게 일을 시키면서 2억 원가량 임금을 주지 않고 장애인수당 일부를 빼앗은 혐의로 50대가 구속됐다. 1심에서 실형을 받았던 그는 올 4월 항소심에서 "미지급금 상당액을 지급했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7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통영 사건 직후 지역 발달 장애인 전수조사도 진행됐지만, 이번 하동지역 피해자는 주민등록지가 부산이어서 빠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14년 전남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서 지적장애인을 감금하고 강제로 노동을 시켜온 일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었다. 당시 장애인 불법고용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는데도 최근 이곳에서도 유사 사례가 다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2017년 김해 공장, 지난해 통영 가두리 양식장에서도 비슷한 장애인 착취 사건이 있었고, 사실상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지난해 경남도에서 유사 사례 전수조사를 진행했지만,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피해 당사자 법률 구조를 지원하는 한편, 진행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진기 경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하동경찰서가 피해자를 조사할 때 신뢰관계인을 파견하는 등 권리 구제를 지원 중”이라며 “사건이 일단락되면 하동군 기관들과 피해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 개인별 지원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정문 경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부산에 가족이 있었는데, 방치되고 있었던 점 등 노동력 착취 이외에 가족 내 학대 정황도 의심돼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장애인 학대·노동력 착취 등 의심 현장을 발견하면 경찰에 알리거나, 경남장애인권익옹호기관(1644-8295), 경남발달장애인지원센터(1522-2882)로 신고하면 된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학대 신고 때 경찰과 서로 통보해 피해자 가족관계 등을 포함한 넓은 범위에서 조사를 진행한다.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장애인 권리 구제를 위한 상담·현장조사·경찰 수사의뢰·형사사법절차 지원(신뢰관계인 동석) 등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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