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살이 중 탄생한 유배문학 한눈에…절벽에 남은 용암 흔적 볼거리

▲ 노도에 복원된 김만중 유배 당시 거처. 김만중문학관과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 노도에 복원된 김만중 유배 당시 거처. 김만중문학관과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사씨남정기>의 탄생지 남해

지금 남해는 보석처럼 빛나는 자연이 곳곳에 박힌 보물섬이지만 옛날 남해는 외롭고 서러운 유배의 섬이었다. 지금은 1㎞도 되지 않는 남해·노량대교로 육지와 이어져 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는 절해고도였다.

전통시대 남해에 유배 왔던 사람은 130명가량 되는데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서포 김만중(1637~1692년)이었다. 서포는 한문을 떠받드는 사대부였지만 한글로 쓴 글도 남겼다. 남의 말인 한자를 쓰는 것은 앵무새와 같다고 했을 정도로 주체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유배를 떠난 아들 때문에 상심한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쓴 김만중의 소설이 <구운몽>이었다. 여덟 여인과 인연을 맺고 입신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깨어보니 꿈이더라는 내용이다. 김만중은 병자호란 때 아버지가 자결하고 피란길에서 돌아오다가 낳은 유복자였기에 자신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또 다른 한글소설 <사씨남정기>는 인현왕후를 내쫓고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인 숙종을 일깨우려고 쓴 것이었다. <구운몽>은 먼저 유배를 살았던 함경도 선천에서 썼고 뒤이어 귀양을 살게 된 남해에서는 <사씨남정기>를 창작했다. 고독과 단절과 절망의 고통을 이겨낸 유배문학이 남해에서 꽃을 피운 것이다.

▲ 남해유배문학관.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 남해유배문학관.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남해의 자랑 유배문학관

남해가 으뜸가는 유배지는 아니었다. 유배객이 가장 많았던 고장은 제주도였다. 두 번째는 바로 옆 거제도였으며 남해는 전라도의 진도와 함께 서너 번째 유배지였다. 그런데 유배와 유배문학이 가장 잘 갈무리되어 있는 데는 다름 아닌 남해다. 제주도나 거제도에는 없는 유배문학관이 남해에 있다.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유배가 왜 혹독한 형벌이었는지와 유배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공간도 있고, 유배의 괴로움과 고달픔을 몸소 느끼게 하는 체험 시설도 있다. 초가집과 김만중 동상이 놓여 있는 광장은 아이들 뛰어놀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남해에서 탄생한 유배문학으로는 유의양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바를 1773년 한글로 펴낸 <남해문견록>도 있고, 1520년대에 유배왔던 김구가 남긴 시문 <화전별곡>도 있다. 김구의 후손들은 조상의 유배살이를 기리는 유허비를 1700년대 중반에 노량나루 충렬사 근처에 세우기도 했다.

▲ 김만중문학관.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 김만중문학관.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노도의 김만중문학관

남해에서도 김만중은 본섬에 살지 못하고 섬 속의 섬 노도로 쫓기듯 들어왔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가두어 바깥출입을 막고 사람들과 만남을 차단하는 위리안치에 놓였다. 여기서 서포는 극한의 고독을 견뎌내며 <사씨남정기>를 창작했다. 서포는 노도에서 삶을 마감했다. 홀어머니의 부고도 여기서 받았다. 노도에 들어선 김만중문학관은 서포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의 작품이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작품의 탄생 배경은 어떠했고 서포의 사상은 무엇인지를 짜임새 있게 갖추고 있다.

노도에 가면 이런저런 유적도 둘러보고 가로세로 놓인 길을 따라 산책도 즐길 수 있다. 콘크리트 넓은 길도 있고 둘이 걷기 힘든 좁은 흙길도 있다. 섬 자체가 조그맣다 보니 길이 너무 길지 않을까 걱정할 일은 없다. 골짜기를 오르내릴 때는 우거진 나무가 좋고 산마루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멋지다.

▲ 대량마을 갯바위 주상절리.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 대량마을 갯바위 관입용암. /김훤주 환경전문기자

◇한 바퀴 둘러보는 뱃길의 시원한 눈맛

노도와 벽련마을~소량·대량마을~비룡계곡을 둘러보는 뱃길 한 바퀴를 곁들이면 더욱 그럴듯한 탐방이 된다. 섬들이 발치를 바다에 내려놓은 갯바위가 다양하고 색다른 눈맛을 안겨주며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뱃전을 두드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바닷물을 뒤로하고 건너편을 바라보면 같은 듯 다르게 생긴 바위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갯바위에 입혀진 무늬는 옛날 지구의 화산활동이 자연에 새겨넣은 것들이다. 심해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용암이 바위를 뚫고 올라오다가 굳어진 바위였다.

갯바위 곳곳에 V와 W 또는 L 모양으로 아롱져 있는 관입암은 노도에서 대량마을까지 이어지더니 끝자락에 이르면서 주상절리로 바뀌었다. 뜨거운 용암이 찬 기운을 만나 갑자기 식으면 주상절리가 생긴다. 수정처럼 육각 기둥 모양으로 삐죽 솟아 있다. 바다로 튀어나온 주상절리는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여나갔고 안쪽 깊숙한 비룡계곡은 그 모서리에 손이 베이고도 남을 만큼 서슬이 시퍼렜다.

한 시간 남짓 달리고 나면 몸도 마음도 상큼해진다. 유배가 주는 묵직한 느낌은 깨끗하게 씻겨나가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그 덕분에 절로 가벼워진다. (문의 남해군생태관광협의회, 전화 055-862-8677).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