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역전문가 키워 정보 파악·대응
한국도 이성적이고 냉정한 탐구 나서야

"1979년 10월 28일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박정희 사망 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저녁 주한 일본대사관은 외무성에 '소장 계급의 전두환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장보다 더 힘이 세다'고 보고했다." 뉴스타파가 최근 보도한 '일본 외무성의 '전두환 파일' 최초 공개' 기사 일부다. 읽어보면 일본의 놀라운 정보력에 섬뜩해진다. 10.26 사태 이틀 만에 일본은 이미 전두환이 '실세'임에 주목했고, 12.12 한 달 전부터 쿠데타 낌새를 알아차렸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미국보다 훨씬 더 깊숙이 한국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현장에 직접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순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외교관이 친구한테 편지를 보내 '담을 넘어 내전에 도달, 왕비를 시해했다…의외로 간단해 너무 놀랐다'고 했다는 최근 보도가 함께 떠올랐다. 1895년에도, 1979년에도 일본은 한국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단 말인가. 최첨단 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어느 정도일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20여 년 전 이슬람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를 지역에 초청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한국은 이슬람 전문가를 갑자기 찾아 비상이었는데, 일본은 오래전부터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지역 전문가들을 양성해 왔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전문가는 해당 지역에 정통한 것은 물론 '이너서클'에 들어가 핵심 정보에도 접근 가능한 사람을 일컫는다.

일본은 한반도 지역 전문가를 언제부터 양성해 왔을까. 문득 임진왜란이 떠오른다. 한국엔 일본 전문가가 얼마나 있고, 정부나 대기업 정책 결정엔 얼마나 제대로 반영될까.

현재 한일관계는 최악 국면이다. 일본 우익이 독도를 고리로 야욕을 숨기지 않는 것을 보면 에도 막부 말기에 등장했던 '정한론(征韓論)'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일본에서 정한론을 집대성한 인물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꼽힌다. 일본 최장수 총리를 지내고 자민당 최대 파벌 수장으로 건재한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스승처럼 떠받드는 인물이다. 한국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역시 쇼인의 제자며 아베의 고향 선배다. 쇼인은 정한론과 함께 주변국 정벌과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개척론을 노골적으로 폈고, 그 논리가 지금도 계보를 따라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경찰청장이 독도를 방문한 것을 놓고 일본 집권 자민당이 당 외교부회에 '대(對)한국 정책 검토 워킹팀'이란 대응팀을 설치하고 내년 여름까지 대항 조치를 마련하기로 했다고 보도됐다. 일본의 '지역 연구'가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측 대응은 어떤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반일과 친일 논쟁은 여전하고 '토착 왜구' 프레임도 수시로 등장한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지역 연구는 가동되고 있을까. 감정적 반일 풍토에 문제를 제기하며 요시다 쇼인 탐구에 나섰던 한 청년은 책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일본 관련 역사 이야기를 할 때면 반일감정으로 촉발된 분노 때문에 논의가 흐트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분노는 역설적이게도 분노의 대상보다 분노하는 그 스스로를 더 아프게 한다."

외형적으로나마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한국이 이제 편견 없이 세계 구석구석은 물론 일본 '지역'에 대해서도 제대로 탐구, '극일(克日)'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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