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 기간 노동 의제가 실종됐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경쟁 후보 저마다 준비된 공약을 내세우거나, 평소 가치관을 드러내면서 노동 의제를 쟁점화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주 4일제' 공약이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주 52시간제 유연화' 발언이 대표적이다. 다만, 대선 투표일이 두 자릿수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도 노동 의제는 부속에 그치거나, 주요한 노동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다는 점이 진짜 문제로 지적된다.

◇노동 종속화·담론 실종 = 심상완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동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에 "대선 후보 모두 그렇진 않고, 민생이나 부동산 의제보다 크게 두드러지지 않아서인 듯하다"면서도 "경쟁 과정에서 노동 의제가 덜 주목받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 교수는 "대선 후보가 노동 의제를 제시하는 방식이나, 언론 보도 방식에 따라 노동이 탈색되는 경향이 있다"며 "후보가 제시한 성장 의제를 노동 의제라고 재차 강조하지 않는다면 파묻히고 만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산재·청년실업 등
현안 쌓였는데 부각되지 않아
주 4일제 등 담론 형성 부족
정부 산업정책서도 노동 뒷전

 

탁종렬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노동 의제 실종보다 담론 실종에 무게를 뒀다. 탁 소장은 "최근 노동 의제로 부상한 주 4일제 공약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담론이 있어야 하는데 일부 언론에서 기사가 아닌 칼럼으로 장단점, 긍부정을 다루는 데 그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노동 분야 전반에 일자리와 구직자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이른바 미스 매치가 중요한 문제인데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시점에 큰 논의가 없다"고 말했다.

탁 소장 지적처럼 특히 청년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전체 실업률을 웃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전체 실업률은 2017년 3.7%, 2018년 3.8%, 2019년 3.8%, 2020년 4.0%인 데 반해, 청년실업률은 각각 9.8%, 9.5%, 8.9%, 9.0%로 나타났다. 청년실업률은 15세에서 29세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 비율이다.

◇정의로운 전환 = 노동 의제가 뒷전으로 밀리거나, 종속화하는 현상은 가령 문재인 정부 'K조선 재도약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비정규직 중심 생산 체제를 벗어나 핵심인 본공 중심 체제를 복원할 계획은 빠졌다. 곧바로 정부가 짠 '수주 실적을 뒷받침하는 생산 역량 확보 계획'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하청노동자 중심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 정책도 마찬가지. 기술과 산업 변화에 맞춘 사업 본보기일 뿐, 노동은 중심에서 벗어났다.

기후위기로 산업전환기를 맞은 지금, '정의로운 전환'은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 노동 의제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 변화에 맞서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훈련, 기술 개발과 함께 노동자·시민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점진적으로 탄소를 줄이는 과정에서 산업 전환이 일어나고 고용 상실이 일어난다"며 "고용 상실을 예방하고자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6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6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 개념으로서 '정의로운 전환'은 산업뿐만 아니라 환경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거대한 흐름이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한 대선 후보는 몇 없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정의로운 전환 취지에 맞게 이해당사자 참여와 산업 전환 과정에서 고용과 일자리를 유지할 법과 정책, 제도가 필요한데 여야 주요정당은 공식적으로 정의로운 전환 태도를 피력한 게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지자체 가운데 조례를 제정, 정의로운 전환에 대응하는 곳은 충남도 정도다. 그마저도 일자리기금 설치·운용 조례다. 대부분 지자체는 기후 변화 대응 조례 수준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맞물린 의제이기에 대선 후보 태도부터 밝히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경남은 정의로운 전환 대응이 시급한 산업이 많은 까닭에 대선 후보 공식 태도는 무엇인지 밝혀야 하고, 그 내용을 보고 지역사회나 각계에서 보완 요구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위기 따른 산업 전환기
고용·일자리 유지 정책 시급
플랫폼 등 새로운 노동형태도
변화한 환경 맞는 공약 내놔야

 

◇의제화 시급 = 정의로운 전환뿐만이 아니다. △해고 일상화 △높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 수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지속 △초단시간 노동자 증가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문제부터 높은 청년실업률까지, 노동 의제는 산적했다. 지역 노동 의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급변하는 환경에 발맞춘 의제 설정도 시급하다.

심 교수는 "과거에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에 따라 취약 노동자 문제를 다뤘는데 플랫폼 노동자 등 새로운 형태 노동자가 생겨났다"며 "기술적, 체제적 변화가 있는 만큼 취약성을 포괄하는 노동 의제 설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형태 취약 노동자 문제를 과제로 끌어안고 공약으로 제시하는 후보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아 당선된다면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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