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쓰레기 없는 가게 '비채', 재사용품과 환경친화용품을 판매하는 책방 '너의 바다'를 취재했다. 비슷한 유형의 취재가 잦은 이유는 환경친화활동, 기후위기 대응이 유행에서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 분석했다.

'비채' 대표는 우리 조상의 삶을 엿보면 그만큼 환경친화적이고 쓰레기 없는 삶이 없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은 친환경 수세미라고 식물인 수세미를 말려 가공해 팔지만 예전에는 당연히 쓰던 일상용품이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세제 대신 아궁이 옆에서 잿물을 만들어 놋그릇 닦는 걸 보여주셨던 기억도 났다. 옷에 구멍이 났다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몇 번 기워서 입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자장면 배달할 때 그릇이 오갔다. 지금의 다회용기, 재사용 용기와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위생문제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지난달 26일 경남도민일보 1면에는 김다솜 기자의 기사 '제로웨이스트? 할매는 원래 그래 살았다'가 실렸다. 밀양시 중리마을 할머님 네 분의 자급자족 삶이 담긴 전시회와 전시 기획자들의 이야기다. 그 내용이 비채 대표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민족은 배달의 민족보다 쓰레기 없는 삶을 살 줄 아는 민족이었던 게 아닌가. 온고지신(溫故知新). 옛날에 자급자족하고 대량소비하지 않던 삶과, 현재의 제로웨이스트 가게의 일상화를 융합해야 한다. 그러면 기후위기에 강력하게 대응하진 못하더라도 우리 미래를 덜 더럽히지 않을까.

며칠 전 미국에서 28일 동안 플라스틱 통에 머리가 낀 흑곰이 보도된 적이 있다. 인간이 해하려 했는지, 먹이를 주려다가 그랬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미래엔 우리가 만든 쓰레기가 우리의 숨통을 조여오겠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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