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착수·현지조사 검토 "의거 전모·피해 고통 밝힐 것"
2기 피해 접수 1만 2000건 넘어... 경남 812건 중 516건 조사 시작
배·보상 쉽도록 제도정비 필요, 국립트라우마센터 건립 제안도

엄혹했던 한국 현대사, 셀 수 없는 시민들이 무자비한 국가 폭력 앞에 스러졌다. 특별법에 따라 진상규명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랫동안 역사의 지층 속에 묻혔다. 어두운 과거를 들추고 국가폭력 희생자의 한을 풀어내고자 만든 한시 조직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다. 부마민주항쟁 42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을 만나 2기 위원회 출범 의의와 경남지역 민간인학살 피해 접수 규모, 3.15의거 특별법에 따른 진상규명 계획 등을 물었다. 

◇피해신청, 1기 위원회 두 배 = 1기 진실화해위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만 1000여 건의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해 8500여 건(경남지역 1391건)을 진실규명한 뒤 활동을 마쳤다. 한국전쟁기 국민보도연맹 사건, 형무소 재소자 학살 사건 등의 진상 일부를 밝혀내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피해규모가 워낙 방대해 활동 연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 12월 2기 위원회가 출범했고, 올해 5월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정근식 위원장은 "1기 위원회 활동이 있었기 때문에 피해 신청자가 적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10개월간 접수 건수만 1만 2000여 명"이라며 "이 중 민간인 집단학살 관련 사건만 65%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경남지역만 놓고 보면 10월 1일 기준 817건이 접수됐고, 516건은 조사가 시작됐다. 피해접수 기간이 지나 다루지 못했던 창원·진주·하동·고성·사천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이 이에 포함된다. 진실화해위는 현재까지 전국적인 피해 접수 건수가 1기 위원회 동기간 대비 2배 정도 늘어났다고 파악하고 있다. 신청 접수기간이 1년에 불과했던 전과 달리, 2기 위원회 신청 접수기간은 2년(2022년 12월까지)인 만큼, 총건수는 훨씬 늘어날 수 있다. 정 위원장은 "빠르면 올 연말, 혹은 내년 초부터 진실규명 결정이 이루어질 예정"이라며 "이미 진실규명이 된 사건 관련 피해자가 신청을 하면, 기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훨씬 신속하게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 지난 16일 창원시 3.15아트센터에서 제42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지난 16일 창원시 3.15아트센터에서 제42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현지 3.15의거 진상조사팀 계획 = 2기 진실화해위는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한 '3.15의거 참여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5의거 진상조사 임무도 맡았다. 이 법이 시행되는 2022년 1월부터는 조사를 해야 한다. 현재 진실화해위와 행정안전부가 시행령 마련을 위한 협의 중이다.

진실화해위는 3.15의거 조사만을 맡는 별도 전담과를 만들 계획이다. 이 부서는 조사 용이성 차원에서 창원시에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정 위원장은 "피해자들이 주로 창원시에 거주하고 있어 현지 조사를 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고려 중"이라며 "허성무 시장도 장소 제공에 협력하겠다고 밝혀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담부서는 진실화해위 전문인력에 더해 일부는 지역 전문가들을 조사관으로 채용하고, 일부는 현지 공무원 파견을 받아 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거 관련자 접수기간은 2022년 1월부터 12월 9월까지다. 정 위원장은 "단일 특별법으로 진행하는 조사이기 때문에 신청자뿐 아니라, 직권조사도 할 수 있다"라며 "참가자로 알려진 분들을 가급적 전수조사해 창원시민이 원하는 3.15의거 전모와 관련자 개개인의 어려움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방향은 나왔지만, 관건은 규모다. 구체적인 내용은 3.15특별법 시행령으로 정비될 예정이다. 정 위원장은 "충실한 진상규명을 하려면 안정적인 인원과 예산이 필요한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라며 "정부와 국회가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충분한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배·보상, 트라우마 치유 입법 필요 = 진실화해위 진상규명에도 한계는 있다. 피해자들이 배·보상을 받으려면 진상규명 결정문을 토대로 개인적으로 국가 대상 소송을 제기해야 해서다. 노령층·저소득층들에게는 높은 벽일 수 있고, 소멸시효 문제로 패소하기도 한다. 보상받는다고 해도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상당한 시간이 든다. 하지만, 최근 제주 4.3사건 특별법, 노근리 희생자 특별법이 연달아 개정되면서 피해자들이 배·보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정 위원장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은 4.3이나 노근리 특별법을 준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라면서도 "진실·화해와 과거사정리기본법을 고치든, 별도 특별법을 만들든 국회 차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어떤 형태로든 국립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다양한 국가 폭력·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삶이 깨지고, 오랫동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현실을 본다"라며 "심지어 조사관들이 간접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일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 관련법이 올라와 있고, 위원회에 의견을 묻는다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고 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장은 "경남지역 보도연맹 피해자들, 4월혁명유족회 등의 움직임이 2005년 1기 진실화해위 출범에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피해접수 기간임을 모르거나, 주저하시는 분들은 진실화해위를 믿고 꼭 진실규명을 신청해 달라"라며 "가까운 시일 안에 온 힘을 다해 해결하겠다고 경남도민들께 약속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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