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카밀라 안디니 감독 작품
고등학교 3학년인 여성 주인공
현실 순응하게 되는 과정 통해
성차별적 문화·인권 침해 짚어

'어디선가 먼 훗날 / 나는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시 '가지 않은 길' 마지막 부분이다. 이 시가 새삼 떠오른 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에서 인도네시아 카밀라 안디니 감독 영화 <유니>를 보고 나서다. 아시아 중견·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아시아 영화의 창)에 이름을 올린 이 영화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학교 안팎 여성이 직면한 성차별적 삶을 보여줌으로써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인권 침해 문제를 짚어준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가본 적 없는 길에 발을 들이는 걸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의 인식을 그려낸 영화로 다가왔다. 여러 장면에서 이런 인식과 영화는 수시로 얽혀있다.

▲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소개된 영화 <유니> 한 장면. /갈무리
▲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소개된 영화 <유니> 한 장면. /갈무리

영화 중반까지는 무엇이 되었건 여성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런데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현실을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이 짙어진다. 고3인 유니 친구는 "결혼하기 싫다"며 눈물을 보이지만,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에도 원치 않던 혼례를 치른다.

현실을 따라간다는 건 바로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고등학생들은 문제가 있어도 문제인 줄 모르고 넘어가거나, 문제인 걸 알아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쉬쉬한다. 여성인 친구끼리 모여 대화를 하는데도 성적인 얘기를 꺼내면 그걸 잘못된 일로 치부하고, 임신하지 못하면 가족이며 친구며 온통 여성에게만 책임을 떠넘겨버리는 사회라서 그렇다. 그나마 유니는 용기 있게 두 차례 청혼을 연거푸 거절하기도 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거절조차 하지 못한다. 자기 결정권이 짓밟혀도 그런대로 살아가는 잘못된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아무리 그래도 제 길로 들어서는 게 최선이라고 얘기한다. 여성 역시 남성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편하게 연락해"라는 친구 말에 유니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유니를 짝사랑하는 친구의 '시'를 끌어들이며 유니가 가는 길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유니는 혼자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 위치에서 행사할 때 비로소 삶은 작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법. 영화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여럿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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