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우리말 표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주 쓰는 말이니 잘 새기고 즐겨 쓰면 좋겠습니다.

/ 이창수 토박이말바라기 맡음빛(상임이사)

 

■ 핫바지 : 날씨가 더 추워지면 바지도 홑바지를 입다가 '솜바지'를 입게 될 것입니다. 솜바지는 말 그대로 솜을 넣은 바지로 입으면 따뜻하지요. 이런 솜바지와 비슷한 말에 '핫바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핫바지'는 '솜바지'라는 뜻보다 '시골사람 또는 못 배우거나 어리석은 사람에 빗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으로 쓰기 때문에 그리 반기는 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솜이 들어간 따뜻한 바지'라는 본디 뜻을 모른 채 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무슨 까닭으로 '핫바지'가 그런 뜻으로 바뀌었는지 똑똑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앞뒤가 잘 가려지지 않고 두루뭉술한 핫바지의 모양새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핫바지'가 가진 또 다른 뜻을 모르는 분들이 둘레에 계시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살얼음 : 날씨가 추워지면서 얼음이 얼었다는 기별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이것 때문에 차들이 미끄러져 부서지고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어서 조심하라는 말이 신문, 방송에 들리실 것입니다. 바로 '블랙 아이스'입니다. '블랙 아이스'라는 말이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검다'는 뜻의 영어 'black'에 '얼음'이라는 뜻의 'ice'를 더한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말로 곧바로 뒤쳐 직역하면 '검은 얼음'이 될 것입니다. '블랙 아이스'를 흔히 '겨울철 비가 온 뒤 빗물이나 녹은 눈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면서 길 위에 얇게 얼어붙은 현상'이라고 풀이하곤 합니다. 한마디로 '얇게 살짝 언 얼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얇게 살짝 언 얼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바로 '살얼음'입니다. 꼭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뜻의 토박이말이 있다면 다른 나라 말을 가져다 쓰기보다 그런 토박이말을 살려 쓰고 모자란다 싶으면 뜻을 더해 쓰며 살았으면 합니다.

갑작추위 : 여름과 같이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하루아침에 바로 겨울과 같이 날씨가 추워져서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직 추우면 거두어 들여도 먹을 수 없게 되는 열매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추워지기 앞에 서둘러 따서 거둔다고 했지만 다 하지 못해서 버린 것도 많을 것입니다. 이처럼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한파'라고 하더군요. 날씨를 알려 줄 때도 그 말을 쓰니 너도나도 다 '한파'라는 말이 눈과 입에 익어서 쓰며 삽니다. 하지만 갑자기 추워졌으니 '갑작추위'라고 하면 더 알기 쉽습니다. 많은 분이 좋은 말은 누구나 알기 쉬운 말이라는 데 생각을 같이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파'라고 해서는 '갑자기 찾아온 추위'라는 뜻이 얼른 떠오르지 않지만 '갑작추위'는 따로 풀이를 하지 않아도 '갑작스러운 추위'라는 뜻을 바로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이제부터 알기 쉬운 '갑작추위'라는 말을 자주 쓰면 좋겠습니다.

너나들이 : 옛날부터 어른들께서는 아이들에게 동무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이가 좋은 동무들끼리 서로 너니 나니 하면서 허물없이 잘 지내는 본을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를 나타내는 토박이말이 바로 '너나들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는 그들이 서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너니 나니' 하는 말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쓰기 어려운 말입니다. 함부로 그렇게 말을 했다가는 바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꼭 나이가 같아야만 그런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가깝게 잘 지냈다든지 어른이 되어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는다든지 해서 그렇게 지내는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 말입니다. '너나들이'라는 말과 '너니 나니' 하는 풀이를 보면 뜻도 바로 알 수 있고 쉽게 잊히지 않는 이런 좋은 말을 많이 알고 쓰며 살기를 바랍니다.

까치밥 :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감도 여느 때보다 일찍 잎을 떨구고 익어가고 있지 싶습니다. 울긋불긋 감잎들 사이로 보이던 익은 감빛과 서리를 맞은 잎들 사이로 보이는 감빛은 많이 다릅니다. 시들어버린 잎빛과 견주어 더욱 붉은 빛이 두드러져 보이게 됩니다. 익은 감은 익은 감대로 달콤하니 맛있게 먹고 덜 익은 감도 따서 갈무리를 해 놓으면 어느새 익어서 맛있게 먹을 수가 있지요.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옛날부터 감을 따실 때 감나무의 감을 다 따지 않고 꼭 몇 낱을 남기셨습니다. 그런 감을 이름하여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먹거리가 넉넉하지 않은 겨울에 새들이 먹으라고 남겨 두셨던 거죠. 이처럼 날짐승들까지 챙기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토박이말 '까치밥'을 자주 써 주시기 바랍니다.

찬바람머리 : 올해처럼 여름같이 덥다가 갑자기 겨울같이 추워지는 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느 해 같으면 가을이 깊어 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서 좀 두꺼운 옷을 찾곤 합니다. 이처럼 '가을철에 싸늘한 바람이 부는 무렵'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찬바람머리'입니다. 이렇게 찬바람이 부는 때 밤에 늦게 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움직이다가 찬바람을 맞게 되면 고뿔에 걸리기 쉽습니다. 추울 때는 얇은 옷을 껴입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덥다 싶을 때는 겉옷을 하나 벗어 들고 다니는 게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찬바람머리에 고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서리 :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여름에서 겨울로 가버리는 바람에 '가을'을 잃어버린 것 같아 슬프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른 곳보다 좀 높은 곳에 '무서리'가 내렸다거나 '첫서리'가 내렸다는 기별을 들어도 될까 말까한 때 얼음이 얼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말입니다.

'무서리'는 '무'+'서리'의 짜임인데 앞의 '무'는 '물'에서 'ㄹ'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물서리'가 되는 것이죠. 날씨가 조금 추워서 단단한 서리가 아닌 물처럼 묽은 서리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무서리와 맞서는 말은 '된서리'로 '늦가을에 아주 되게 내리는 서리'를 가리킵니다. '무서리'와 비슷한 짜임으로 된 말로 '무더위'가 있습니다. 이 말도 '물'+'더위'로 '물기를 잔뜩 머금어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가리키는 말이랍니다.이렇게 같거나 비슷한 짜임으로 된 말, 맞서는 말을 알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새물내 : 가을 구경을 나갈 때 입고 나가는 '나들잇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해마다 나들잇벌을 살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새로 빨아서 입으면 새것 못지않습니다. 새롭게 빨아 입은 옷에서는 새 옷에서 나는 냄새보다 더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새물내'입니다. '새물내'는 '빨래를 해서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입니다. 요즘에는 빨래를 헹굴 때 따로 넣는 헹굼비누를 쓰지 않아도 물비누에 좋은 냄새를 담아서 빨래에서 참 좋은 냄새가 납니다. 하지만 빨래틀(세탁기)을 오랫동안 씻지 않고 쓰면 그 안에 쌓인 찌꺼기 때문에 빨래에서 쉰내가 나기도 하니까 잘 챙겨야 하겠습니다.

왠지 '향기'라는 말을 써야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냄새'가 '내+음+새'가 줄어서 된 말이라는 것을 알면 '꽃내', '꿀내', '밥내', '국내'처럼 '-내'를 쓰는 것이 더 우리말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들잇벌 : 가장 일찍 봄을 알려 주었던 벚나무 잎의 빛깔이 누렇게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벌써 남은 잎보다 떨어진 잎이 더 많은 나무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나브로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빛무리 한아홉(코로나19)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들기는 하겠지만 들로 뫼로 가을 나들이를 떠나시는 분들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나들이를 가실 때는 아무 옷이나 입고 나서지를 않지요. 그처럼 나들이를 갈 때 입는 옷과 신발을 싸잡아 이르는 토박이말이 바로 '나들잇벌'입니다. 나들이 갈 때 입는 옷은 '나들이옷', 신는 신발은 '나들이신', 그리고 이런 것들을 다 더해서 '나들잇벌'이 된 거라고 하겠습니다. '나들이'는 '밖으로 나오거나 나가다'는 뜻의 '나다'와 '안으로 들어오거나 들어가다'는 뜻의 '들다'를 더한 말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면 '나가고 들고 하는 길목'을 뜻하는 '나들목'도 알 수 있고, '나들개'라는 말을 처음 보더라도 나가고 들고 하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어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밑(어원)을 알면 이와 이어지는 다른 말까지 알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맛맛으로 : 요즘과 같은 가을철에는 먹을 것이 참 많습니다. 지난 한가위 때 차례상에 오른 것들만 생각해 봐도 입에 군침이 도는 것 같습니다. 햅쌀은 말할 것도 없고 햇밤, 햇사과, 햇배에 단감, 대추까지 있었는데 맛도 좋았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먹거리를 먹는 일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이 바로 '맛맛으로'입니다.

이 말은 '입맛을 새롭게 하려고 여러 가지 먹거리를 조금씩 바꾸어 가며 다른 맛으로'라는 뜻입니다. 차례상에 오른 것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먹거리가 이어서 나오는 밥집에 갔을 때 쓸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밥이 나오기 앞에 바다, 땅, 하늘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나온 갖가지 먹거리를 다른 맛으로 조금씩 먹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맛과 맛을 보는 입에서 절로 '맛맛으로'라는 말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 돌림앓이(전염병)가 좀 누꿈하면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맛맛으로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다미로 : 밤을 줍거나 감을 따서 그릇에 가득 담을 때나 담은 것을 보고 '수북하게 담았다' 또는 '수북하게 담겼다'는 말을 쓰곤 합니다. '수북하다'는 '쌓이거나 담긴 물건 따위가 불룩하게 많다'는 뜻입니다. 이보다 더 많아서 수북함을 넘어 '담은 것이 그릇이 넘치도록 많이'라는 뜻을 가진 토박이말은 '안다미로'가 있습니다.

요즘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면서 적게 달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옛날에는 밥이든 국이든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 담는 것을 좋게 여기곤 했습니다. 그래서 밥도 밥그릇에 안다미로 담고, 국도 국그릇에 안다미로 담아서 내놓으면 또 그걸 남김없이 싹 다 비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요. 얼마 앞에 밥집에서 물을 그릇에 붓다가 넘치는 것을 보면서 '안다미로'가 떠올라 말을 했더니 같은 이름의 '밥집'을 본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 집에 가면 모든 것이 넘치도록 많이 담겨 나올 것 같습니다.

조바심하다 : 살면서 마음을 졸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조바심 내지 마라", "조바심치지 마라"라고 말을 해 주곤 하죠? 이런 말을 쓰면서도 '조바심'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조바심'은 '조+바심'의 짜임으로 된 말입니다. '바심'은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을 가리키는 말인데 '조'를 거두는 일과 아랑곳한 말인 것입니다.

조는 이삭이 질겨서 비비고 문지르면서 애를 써야 간신히 좁쌀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바심을 할 때는 힘만 들고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바빠지기 일쑤라고 하네요. '바심하다'는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다'라는 뜻이죠. 그래서 '조바심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이다'는 뜻이 됐답니다.

보늬 : 앞선 글에도 나온 '밤송이'는 '밤알을 싸고 있는 두꺼운 겉껍데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꽃송이', '눈송이'와 짜임이 같을 뿐만 아니라 그냥 겉으로 보기만 할 때는 예쁜 느낌도 들 때가 있지만 밤송이에 맞아 본 사람은 아주 무섭게 느껴질 것입니다.

밤을 먹으려면 이 밤송이에서 알밤을 꺼내서 다시 단단한 겉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속에 또 다른 얇은 껍질이 나오지요. 이처럼 '밤이나 도토리 따위의 속껍질'을 '보늬'라고 합니다. 맛있는 밤의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보늬는 그 맛이 아주 떫답니다. 떫은맛으로 여린 알맹이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 단단하지는 않지만 떫은맛으로나마 알맹이를 지키고자 하는 보늬의 마음을 높이 여겨서 또이름(별명 또는 호)으로 '보늬'를 많이 쓴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밤을 드실 때마다 만나는 '보늬'도 그 이름을 모르면 부를 수 없습니다. 앞으로 밤을 드시다가 '보늬'를 보시거든 반갑게 그 이름을 불러 주시는 분들이 많아질 거라 믿습니다.

아람 :  앞서 햇밤, 올밤 이야기를 했었는데 여러분은 밤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밤나무에서 손수 밤을 따기도 하고 떨어진 밤을 주워서 드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밤송이에 맞기도 하고 가시에 찔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주운 밤은 까서 먹는 것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까주는 밤이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밤은 여느 열매와 달리 잘 익었다는 것을 겉으로 똑똑하게 보여 줍니다.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아주 잘 익어 저절로 떨어질 만큼 된 것이나 그런 열매를 '아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흔들지도 않았는데 밤나무 아래에 가면 밤송이째 떨어진 것도 있고 '알밤'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전을 보면 '아람'과 '알밤'이 비슷한 말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말밑(어원)을 따져 보면 '알밤'이 '아람'이 되었다고 하는 분도 있답니다.

올되다·늦되다 :  지난달에 조생종 벼를 수확했다는 기별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조생종 벼'를 '올벼'라고 하고 '수확'을 '거두어들임' 또는 '거둠'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벼'뿐만 아니라 여느 것보다 일찍 익는 것에 '올'을 더해 붙인 '올밤', '올감', '올배'와 같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올'은 '올되다'에서 온 것인데 이 말은 '열매나 곡식 따위가 제철보다 일찍 익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처럼 올되는 것은 이런 열매와 비슷하게 사람도 올되는 사람이 있지요. 그래서 나이에 견주어 빠르게 자라거나 철이 빨리 드는 아이를 가리켜 '올된 아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과 맞서는 말인 '늦되다'를 알면 '늦밤', '늦벼', '늦배'가 '제철보다 늦게 익은 것'을 가리키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맏물 :  한가위 차례상에 올라오는 것들이 거의 다 올해 처음 거두어들인 곡식과 과일입니다. 흔히 ' 햇곡식', '햇과일'이라고 하는데 좀 더 잘게 나누어 말하자면 '햇사과, 햇배'는 말할 것도 없고 햅쌀과 햇밤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해 나온 과일이나 곡식을 가리킬 때 '해'를 더한 말을 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 처음 나는 것을 가리키는 토박이말로 '맏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한집에 처음으로 태어난 아들을 '맏아들'이라 하고 딸은 '맏딸'이라고 하며 가리지 않고 첫 아들이나 딸을 싸잡아서 '맏이'라고 한다는 것을 안다면 '맏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과 맞서는 말(반대되는 말)이 '끝물'인데 '그해 맨 나중에 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대중말(표준말)이라면 '끝'과 맞서는 '첫'이 들어간 '첫물'도 대중말이 되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가위 :  "풍성한 추석 명절 되세요."

요즘 길을 가다보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펼침막에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볼 수 있는 말이고 또 그리 마음을 쓰지 않으면 거슬리는 게 없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추석'이 아닌 '한가위'라는 토박이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써서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추석'이라는 한자말을 풀이해 보면 '가을 추(秋)', '저녁 석(夕)'으로 '가을 저녁'이라는 뜻인데 이 말보다 '한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한가위'라는 말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사말도 그 말을 보는 사람에게 '추석이 되라'는 것은 알맞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되다'는 말보다 '어떤 날(명절, 돌,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내다'는 뜻을 가진 '쇠다'는 말을 쓰면 좋겠습니다. 둥근 보름달처럼 넉넉하게, 그리고 즐겁게 잘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다음과 같이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즐겁게 한가위 잘 쇠시기 바랍니다."

가을부채 : 아직도 맑은 날 한낮에는 덥다는 말이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요즘 쓸모가 없어진 것이 있습니다. 옛날처럼 많은 사람들이 쓰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더울 때는 손부채질을 하는 것보다는 낫고 멋으로 들고 다니기도 하는 '부채'가 바로 그것입니다.

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혀 주던 부채도 선선한 가을이 되면 쓸모가 없어지지요. 이처럼 철이 지나 쓸모가 없어진 몬(물건)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 '가을부채'입니다. 살면서 언제가 되었든 누구한테든 '가을부채'라는 말을 할 일도 들을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채'를 쓰기보다 더울 때 더 많이 찾게 되는 찬바람틀(에어컨)을 가지고 '가을찬바람틀'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살사리꽃 : 어떤 사람은 이 꽃을 여름 꽃이라고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을' 하면 떠올리는 꽃은 아마도 '코스모스'일 것입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이라는 노랫말로 비롯하는 노래도 있고 한곳에 이 꽃을 많이 심어 놓고 흐드러지게 핀 꽃을 구경하러 오게 하는 고장도 있습니다. 이른바 '코스모스 축제'라는 것을 많이 하는데 '코스모스'를 뜻하는 토박이말 '살사리꽃'도 있고 '축제'를 갈음해 쓸 수 있는 '잔치'라는 토박이말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살사리꽃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살사리꽃'을 왜 '살사리꽃'이라 이름 붙였는지는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꽃을 보면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싹쓸바람 : 건들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갑지 않게 '태풍'이 와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도 했고 곳곳에 비가 많이 내려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 '태풍'과 아랑곳한 말 가운데 '싹쓸바람'이 있습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풍력 계급 12의 몹시 강한 바람. 10분간의 평균 풍속이 32.7미터 이상이며, 육지에서는 보기 드문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고 바다에서는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킨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싹쓸'이라는 말만 봐도 어떤 바람인 줄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릴 만큼 바람이 세다는 뜻이니까요. 이런 알기 쉬운 토박이말을 자주 썼으면 좋겠습니다.

건들장마 :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지만 비가 여러 날 동안 오락가락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씨를 가리켜 가을에 든 장마라고 '가을장마'라는 말을 씁니다. 이 '가을장마'와 비슷한 뜻을 가진 '건들장마'라는 말도 있답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초가을에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또 비가 오다가 다시 개고 하는 장마'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건들장마'인지는 알려 주지 않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바람도 느낌이 좀 다릅니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을 '건들바람'이라고 하는데 이 '건들바람'이 불 무렵 드는 장마라서 '건들장마'라고 하면 좀 더 알기가 쉬울 것입니다. '장마'를 옛날에는 여러 날 동안 오래 비가 내린다고 '오란비'라 했다는 것도 알아 두시면 좋겠습니다.

돈머리 : 우리가 돈을 다룰 때 자주 쓰는 '금액'이라는 말을 갈음해 쓸 수 있는 말로 '돈머리'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선금'은 '앞돈' 또는 '민값'이고 '잔금'은 '끝돈'입니다. 어떤 목적이나 사업 행사 따위에 쓸 기본적인 자금 또는 기초가 되는 자금을 뜻하는 '기금'은 '밑돈'이고 일을 해 주고 받는 '임금'은 '삯돈' 또는 '품돈'입니다. 품을 팔아서 삯으로 받는 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참으로 많이 쓰는 '단가'는 '낱값'이고 '국고' 또는 '국고금'은 '나랏돈'입니다. 몰라서 못 쓰기도 하지만 알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으니 쓰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쓰고자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이 글을 보신 분들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길미 : 옛날에는 돈을 모아 은행에 넣어 두면 그 돈에 '이자'라는 것이 좀 붙었습니다. 그래서 맞돈(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것보다 은행에 맡기는 것이 나았지요. 요즘에도 돈을 은행에 맡기기는 하지만 '이자'는 그리 많이 붙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이자'라는 말과 뜻이 같은 토박이말 '길미'라는 말이 있는 줄 아시는 분들 만큼과 비슷하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길미'는 '길다'의 줄기 '길'에 이름씨를 만들 때 쓰는 '-ㅁ'이 붙고 그 뒤에 이름씨를 만드는 '이'를 더해 만든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콩나물이 길게 자라듯이 은행에 넣었던 돈이 길었다고도 하는데 그런 쪽에서 보면 알아차리기 쉬운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이익'이라는 뜻으로도 쓸 수 있으니 '이자, 이익'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길미'를 떠올려 써 보시기 바랍니다.

돈자리 : 왜 자꾸 돈과 아랑곳한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만큼 돈이 우리 삶과 가깝지만 쓰는 말은 토박이말과 멀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말을 우리 삶 속으로 가져와 썼으면 하는 바람에서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계좌'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쓰지만 이 말도 우리가 만든 말은 아닙니다. 나라를 잃었을 때 '구좌'라는 말과 함께 썼고, 나라를 되찾은 뒤 '돈자리'라는 말로 갈음해 쓰자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우리 스스로 쓰지 않았고 북쪽에서 쓰다 보니 '북한말'이 되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조차 '계좌'를 찾으면 그 밑에 '북한어 돈자리'라고 풀이를 해 놓았으니 여느 사람들은 북한말이라고 하니 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넣어 놓을 수도 있고 또 빼내어 쓸 수 있는 '돈이 있는 자리'라 생각하면 '돈자리'라는 말이 꽤 알맞은 말이고 쓰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봅니다. '계좌', '구좌'를 써야 할 때 '돈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목돈 : 이 말은 '한몫이 될 만한 많은 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목돈 마련 저축'이나 "집을 사려면 목돈이 들어간다."처럼 많이 쓰는 말이라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과 비슷한말에 '모갯돈'이라는 말이 있는데 토박이말을 배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과 비슷한 말에 '뭉칫돈'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목돈, 모갯돈, 뭉칫돈'을 묶어서 알아 두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잔돈 : 이 말은 '단위가 작은 돈'을 뜻하기 때문에 1000원을 100원짜리로 바꾸거나 1만 원을 1000원으로 바꿀 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또 이 말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가리킬 때 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뜻으로 '잔돈푼'을 쓰는데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을 가리킬 때도 쓴답니다. 비슷한 말로 '푼돈'도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이 잔돈은 꿰거나 싸지 않은 흩어진 쇠붙이 돈이라는 뜻으로 '사슬돈'이라고도 했습니다. 잔돈, 잔돈푼, 푼돈, 사슬돈을 묶어서 기억해 두시면 더 좋을 것입니다.

낱돈 : 이 말은 '돈머리를 이루지 못한 한 푼 한 푼의 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0원, 50원, 100원, 500원과 같은 쇠돈을 가리킬 때 많이 쓰지만 1000원짜리 종이돈을 말할 때 쓰기도 하지요. 종이돈 1000원을 쇠돈 100원짜리나 500원짜리로 바꿀 때나 만 원 짜리를 1000원짜리 열 장으로 바꿀 때 낱돈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비슷한말에 '낱푼'이 있습니다.

쇠돈 : 우리가 나날살이를 하며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동전'과 '지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도 둘 다 한자말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동전은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쇠돈'이라고 했고 '지폐'는 '종이돈'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동전'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쇠돈'을 떠올려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어 코인(coin)을 써야 할 때도 '쇠돈'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맞돈 : 돈이 모든 값어치를 뛰어넘는 자리에 올라버린 듯한 누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돈 앞에서 여려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쓰는 돈과 아랑곳한 말 가운데 토박이말이 아닌 말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돈'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몇 가지 이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다들 현금을 좋아한다고 하던데 같은 까닭으로 돈 하면 '현금'을 떠올릴 분도 많지 싶습니다. 이 '현금', '현찰'을 뜻하는 토박이말은 '맞돈'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절을 하는 것을 맞절이라고 합니다. 그것처럼 물건을 살 때 물건과 맞바꾸는 것이니까 '맞돈'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현금' '현찰' 또는 '캐시'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맞돈'을 떠올려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도담도담, 너울가지 : '도담도담'이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가 탈 없이 잘 놀며 자라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인데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 우리가 챙겨야 할 토박이말이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으로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너울가지'입니다. 이 말은 '남과 사귀는 솜씨'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교성', '붙임성', '포용성'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쓰시면 좋을 것입니다. 토박이말을 챙기는 사람들이 다 너울가지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토박이말을 챙기는 데 힘과 슬기를 보태주게 될 것입니다.

■ 고맙습니다 : '땡큐(thank-you)'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 살 아이도 쉽게 내뱉도록 가르쳤지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많은 사람이 '감사합니다(도움이 되거나 흐뭇하여 그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인사합니다. '감사합니다'는 한자어 어근인 '감사(感謝)'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같은 뜻의 순우리말에는 '고맙습니다'가 있습니다. 어간 '고맙-'에 있는 '고마'는 '(단군신화)곰-고마-검(신령)'으로 연결돼 '신성스럽다, 존경한다'는 뜻이 있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실제 '감사합니다'와 '고맙습니다'는 한자어와 고유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 의미나 높임 정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될 수 있으면 우리말 표현을 쓰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쉬운 우리말 기획에 많은 관심 보여 주고, 우리말을 사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누리 : 날씨와 관련된 우리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뙤약볕(되게 내리쬐는 뜨거운 볕)', '땅거미(저녁 해가 진 뒤에 차츰 어두워지는 것)', '눈까비(녹으면서 내리는 눈)'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 봤지요? '꽁무늬 바람(뒤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자국 눈(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내린 눈)', '갑작 바람', '까부랑 번개' 등은 말에서 뜻을 쉽게 유추할 수 있어 쉽습니다. 그렇다면 '누리'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누리'는 '큰 물방울이 공중에서 갑자기 찬 기운을 만나 얼어떨어지는 백색 덩어리'를 뜻하는 '우박(雨雹)'과 같은 말입니다. 앞으로 '누리' 먼저 써 볼까요?

■ 모숨 : 우리말에는 '단(짚·땔나무·채소 따위의 묶음을 세는 단위)', '두름(조기·청어 따위를 10마리씩 두 줄로 묶은 20마리)', '사리(국수·새끼·실 따위의 뭉치를 세는 단위)', '제(한약의 분량을 나타내는 단위·스무 첩)' 등 단위를 나타내는 말이 많습니다. '움키다'에서 비롯된 '움큼'은 '손으로 한 줌 움켜쥔 만큼의 분량을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모숨'은 들어보셨나요? 움큼과 비슷한 말이지만 '한줌 안에 들 만한 가늘고 긴 물건의 수량을 세는 단위'로 쓰입니다. '동근이는 담배 두어 모숨을 일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 졸가리 : '소설, 이야기, 연극, 영화에서 핵심이 되는 개략적인 내용', 우리말 '줄거리'는 다 알고 있지요? 훌륭한 밑반찬 재료인 고구마·배추 줄거리의 '줄거리'는 '가지, 덩굴, 줄기 따위에서 잎을 제외한 부분'을 뜻합니다. 줄거리의 작은 말은 '졸가리'입니다. 기본 뜻은 '잎이 다 떨어진 나뭇가지'라는 뜻으로, '겨울이 되면 잎이 무성하던 나무들도 졸가리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처럼 씁니다. 그래서 '졸가리'의 또 다른 뜻은 '사물의 군더더기를 다 떼어 버린 나머지의 골자'입니다. 줄거리와 뜻이 같지요?

■ 띠앗 : 앞서 카스텔라(빵)를 가무렸던 작은 오빠 이야기를 했지만, 우린 참 '띠앗' 좋은 오누이였습니다. 하하. '띠앗'은 '언니 아우(형제 자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뜻합니다. '우애'라는 말을 갈음할 수 있는 말입니다.

'띠앗머리'는 띠앗을 낮추어 이르는 말입니다. '집안끼리 띠앗머리가 이렇게 사나워서야 되겠습니까?' 김주영 소설가 <객주>에 나오는 말입니다.

■ 가무리다 : 어릴 때 먹을 것 앞에 두고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오빠나 저나 기를 쓰고 서로 미뤘습니다. 저는 심부름을 다녀오면 오빠가 맛있는 음식을 가무려 버렸기 때문에 싫었고, 오빠는 동생도 그럴까 걱정이 되었겠지요. 하하. '가무리다'는 '몰래 혼자 차지하거나 흔적도 없이 먹어 버리다'는 뜻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게 숨기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때 엄마는 왜 심부름 간 제 몫으로 따로 음식을 가무려 두지 않았는지 늦었지만 물어봐야겠습니다. 특히, 그때 그 카스텔라(빵).

■ 우수리 : 요즘은 카드로 계산하는 일이 더 많아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셈 공부도 시킬 겸 우수리 계산을 자주 맡겼습니다. '우수리'는 '물건값을 빼고 거슬러 받은 돈'을 뜻합니다. '우수'라고도 하고, '거스름돈'과 비슷한 말이지요. '우수리'는 '일정한 수나 수량에 차고 남는 수나 수량'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부엉이셈'으로 우수리를 제대로 못 받아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엉이셈'은 '어리석어서 이익과 손해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셈'을 뜻하는데, '셈에 어두운 사람'을 빗대어 '부엉이셈 치기'라고도 한답니다.

■ 다님길 : 사람이 다니는 길을 흔히 '인도(人道)'라고 합니다. 토박이말에는 '다님길'이 있습니다. 쉽고 정겨운 말인 '다님길'은 가게 이름에 많이 쓰입니다.

도내에서는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한 식당이 가게 이름을 '다님길'로 쓰고 있습니다, 여행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에도 '다님길'이 있습니다. 지나다닐 때마다 보는 친숙하고 익숙한 느낌을 빌려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인 '차로(車路)'는 토박이말로 어떻게 바꿔쓸 수 있을까요? 다른 말도 있지만 '차 다님길'로 정해도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 갈말 : 전문가들이 쓰는 학술 용어는 몇 번을 들어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런데, '학술 용어'라는 말 자체는 어렵지 않나요? '학술어(학술 용어)'를 뜻하는 토박이말은 '갈말'입니다.

학문을 뜻하는 '학(學)'과 같은 우리말에 '갈'이라는 말을 썼는데, '음성학'은 '소리갈', '문법학'은 '말본갈', '한글학'은 '한글갈'이라고 했습니다. 더 쉽지요?

'이 표현들을 확정된 갈말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틀거지 : 어릴 때 같이 까불거리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지금은 나이보다도 틀거지가 있어 보여 어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틀거지'는 '듬직하고 위엄이 있는 겉모양, 태도'를 뜻합니다. 틀거지가 있는 것을 '틀지다'라고 하는데, '그도 한두 살씩 먹어 가면서 조금씩 틀져 갔다, 틀진 모습이 나타났다'라고 쓰입니다. '자세히 두고 보니 자기와 나이 걸맞은 점잖고 틀거지가 있어 보이는 진중한 청년이니 만만치가 않고 말을 함부로 붙이기가 어려웠다.'(염상섭 <일대의 유업> 중) 

■ 버림치 : 삶이 풍요롭고 편리해지는 것은 좋지만, 우리 둘레를 보면 버림치가 된 것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버림치'는 '쓰지 못하게 되어 버려둔 물건'을 뜻하는데, 요즘 버림치를 보면 새것도 보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림치'는 새로운 말에 밀리고 '고물, 구닥다리, 골동품'이라는 말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쓸모가 많은 말입니다.

■ 두남두다 : 내 눈에는 한없이 예쁘기만 한 자식이라도 무작정 두남두다 보면 버릇이 나빠지겠지요. '두남두다'는 '잘못을 했는데도 역성을 들다, 가엾게 여겨 도와주다'는 뜻입니다.

또 '두남받다'는 '남다른 도움이나 사랑을 받다'는 뜻입니다. 옛말(속담)에 '호랑이도 자식 난 골에는 두남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진 짐승도 제 새끼를 두고 온 골은 힘써 도와주고 끔찍이 여긴다는 뜻으로, 비록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식 일은 늘 마음에 두고 생각하며 잘해 준다는 것에 빗대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사정이 없을 수 없다'는 말로도 쓰입니다.

■ 가축 : '가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집에서 기르는 짐승'일 겁니다. 그러나 이때 가축은 '家畜'이고, 토박이말 '가축'은 '물건이나 몸가짐 따위를 알뜰히 매만져 잘 간직하거나 거둠'이라는 뜻입니다. 가을, 겨울을 하루에 번갈아 겪는 요즘 같은 때, 몸을 가축하는 일에 더 힘을 써야겠습니다.

'올망졸망 화초들을 분에다 심어 놓고 그것을 가축하는 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낙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고수련 : '고수련'은 '앓는 이를 돌보고 살피며 모시는 일'을 뜻합니다. '간병(看病)', '병간호(病看護)'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이를 '고수련'이라고 하는 사람은 주위에 없습니다. 찾아보니 요양원, 병원 이름이나 어르신 돌봄 봉사 동아리 이름에 '고수련'이 쓰였습니다. 앓는 이를 돌보고 시중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간병인'이라고 하는데, 오늘부터 '고수련이'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애기 서는 사람 고수련하랴, 그 대단한 법관 사위 대접하랴 눈코 뜰 새 있을 줄 알아?' (박완서 <도시의 흉년> 중)

■ 눈시울 : '시울'은 약간 굽거나 휜 부분의 가장자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긴 타원형인 배의 가장자리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 줄인 현(絃), 활대에 걸어서 켕기는 줄인 현(弦)도 시울이라고 했습니다. 시울은 눈이나 입과 어울려 사용되고, 혼자서는 잘 안 쓰입니다. '눈시울'은 '눈 가장자리를 따라 속눈썹이 난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흔히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감정이 복받쳐 울음이 나오려고 할 때 눈 가장자리가 먼저 발개지는 데서 온 말입니다. '입술'은 '입시울'을 거친 말입니다.

■ 가멸다 :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한때 광고에서 많이 듣던 말이지요? 토박이말이 조금 더 널리 쓰여 '여러분, 모두 가멸이 되세요'라고 덕담을 주고받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가멸다'는 '가진 것이 넉넉하고 많다'라는 뜻입니다. '가멸다'는 관형사형으로도 많이 쓰이는데 그럴 경우는 '가면'이 됩니다. 쓰임을 보면, '가면 백성, 가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쓰임이 많은 건 '가멸차다, 가멸찬'입니다. '넉넉하고 풍족하다'는 뜻이지요. 간혹, '멸'과 '차'라는 말 때문에 '가멸차다'고 하면 '모질고 싸늘하다'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귀잠 : 우리말에는 '잠'을 나타내는 말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주 깊이 든 잠을 '귀잠'이라고 합니다. 귀잠이 들면 누가 아무리 깨워도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지요. 비슷한 말로 '단잠(아주 달게 곤히 자는 잠), 한잠'이 있습니다. 가끔 모든 일을 놓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귀잠'의 반대말은 '수잠'(얕게 살짝 든 잠)입니다. '여윈잠(깊이 들지 않은 잠), 선잠(깊이 들지 못하거나 흡족하게 이루지 못해서 부족한 잠), 겉잠(깊이 들지 못하는 잠)'도 마찬가지로 귀잠의 반대입니다. 잠자는 모양에 따라 '개잠, 나비잠, 말뚝잠, 새우잠, 앉은잠' 등이 있습니다.

■ 모꼬지 : 대학교 때 들었던 '엠티(MT)'라는 외국어를 초등학생 딸아이에게서 들으니 그 또한 마음이 불편합니다. '엠티(MT)'는 멤버십 트레이닝(membership training)을 줄인 말로, 단체 구성원들이 친목, 화합을 위해 갖는 모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엠티'를 대신해 '모꼬지'라는 말도 널리 쓰입니다. '모꼬지'는 '놀이, 잔치와 같은 일로 여러 사람이 모임'을 뜻합니다. "올해는 계획했던 모꼬지가 취소돼 아쉽지만, 괜찮아요. 다시 봄은 오니깐요."

■ 머드러기 :시장에 자주 가시나요? 과일이나 채소, 생선 따위의 많은 것 가운데서 다른 것들에 비해 유독 굵거나 큰 것이 있는데 '머드러기'라고 합니다.

"아주머니, 그렇게 머드러기만 골라 가시면 어떡해요?"라는 말을 예전에는 주고받았다고 하지요. '머드러기'는 사람으로 치면 여럿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말합니다.

머드러기를 뺀 나머지는 뭐라고 할까요? '지스러기'라고 하는데, '고르고 남은 찌꺼기나 부스러기, 또는 마름질하거나 베어 내고 남은 것'을 뜻합니다. 이런저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어도 스스로 '지스러기'라고 여기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는 '머드러기'입니다.

■ 암팡지다 : 15일 자 우리 신문 문화면 기사에 '퓨전 플라멩코 옴팡'이 소개됐습니다. '속이 차다, 당차다'는 뜻의 '옴팡지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하지요.

'몸이 작아도 힘차고 다부지다'는 뜻의 '암팡지다'도 비슷하게 많이 쓰입니다. 작은 사람이 들으면 기분 좋아지는 말이지요. 북한에서는 '들러붙거나 모여든 것이 보기에 빽빽하고 촘촘하다'라는 뜻으로 쓴다고 하네요. '꼬마는 엄마가 하는 말에 암팡지게 대꾸를 했다.'(표준국어대사전)

■ 곰비임비 : 어제 '시나브로'를 알아봤지요? 오늘은 '사물이나 어떤 일이 눈에 띄게 변해 가는 것'을 뜻하는 토박이말 '곰비임비'를 알아보겠습니다. '곰비임비'는 경사스러운 일 또는 어떤 일이 거듭 쌓이거나 연거푸 일어난다는 뜻으로 쓰여 가게 이름이나 동아리 이름으로 종종 사용되는 말입니다. 옛말은 '곰븨님븨' 또는 '곰븨임븨'라고 합니다.

'잠시 쉬느라고 지체된 시간을 메우려고 우리는 곰비임비 재촉하여 뛰다시피 걸어갔다'고 쓰면 됩니다. 풍성한 가을에는 경사스러운 일만 '곰비일비' 일어나길 바랍니다.

■ 시나브로 : 가을이 되면 들에는 '시나브로' 곡식이 익어 갑니다. 곧 있으면 길가에 '시나브로' 낙엽이 쌓이기 시작할 테지요.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조금씩'이란 뜻입니다. 사물의 변화나 어떤 일의 진행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느릿느릿 이루어지는 것을 '시나브로 ~하다'고 합니다. '살금살금'과 뜻이 비슷합니다. 이렇게 하루에 하나씩 토박이말을 익히다 보면, 우리말이 시나브로 외래어·외국어보다 쉬워지겠죠? 

■ 여우볕 : 아침부터 구름이 끼고 제법 쌀쌀하지만, 낮에는 햇볕이 들어 포근합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볕'은 정말 반갑지요? '여우볕'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여우비'도 있습니다. '맑은 날 잠깐 오다 그치는 비'를 뜻합니다. 별과 눈도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면 '여우별', '여우눈'이라고 합니다. '여우볕에 콩 볶아 먹는다'는 옛말은 하는 짓이나 움직임이 매우 재빠름을 빗대 이르는 말입니다. '여우볕'이 난 걸 보고 날이 완전히 갠 줄 알고 집을 나섰다가 낭패를 보면 안 되겠지요? 집을 나서기 전 날씨는 꼭 확인하세요.

■ 겨끔내기 : 우리는 공을 차는 것을 '공차기'라 하지 않고 '축구(蹴球)'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축구를 할 때 이기고 지는 것이 가려지지 않을 때 '승부차기'를 합니다. 이때 '겨끔내기'로 가리지요. '겨끔내기'는 '서로 번갈아 하기'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맞벌이를 하는 집이 많아, '집가심(집청소)'도 서로 '겨끔내기'로 하는 집이 많습니다. '양복과 두루마기를 겨끔내기로 입었지만 사람들은 양복쟁이라고 할 만큼 양복이 태가 났고….' (박완서 <미망> 중)

■ 홀소리·닿소리 : "왜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자어인 '자음'(子音)과 '모음'(母音)을 배워야 하나요?"

맞습니다.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낫을 그리고 기역 자를 배우면서 '아들 자(子)·어미 모(母)·소리 음(音)' 한자어를 같이 익혀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ㅏ', 'ㅑ', 'ㅓ', 'ㅕ', 'ㅗ', 'ㅛ'… 모음은 다른 소리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홀로 나는 소리라 하여 토박이말로 '홀소리'라고 합니다. 자음은 '닿소리'입니다. 말소리 가운데 그 소리가 제 홀로는 나지 못하고, 곧 홀소리에 닿아야만 소리가 나기 때문에 생긴 말입니다. 뜻을 이해했다면 '자음'과 '닿소리' 중 어떤 말이 더 쉬운가요? 아이들에게 한자어를 먼저 가르치는 어른이 고개 숙여야 할 한글날입니다.

■ 오롯하다 : 우리는 흔하게 '완벽하다'는 말을 씁니다. 그 말을 가지고 '완벽남', '완벽녀'라는 새로운 말도 생겨났지요. 이 말을 만든 처음 사람이 '완벽(完璧)하다'는 한자말 대신 '오롯하다'는 우리말을 먼저 익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오롯하다'는 '남고 처짐이 없이 고스란히 갖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이 말을 더 자주 사용했다면 '오롯남', '오롯녀'라는 새로운 말이 자리 잡았겠지요. '바리바리 싸 보낸 반찬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오롯하게 담겨 있었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가심 : "디저트(dessert) 뭐 먹을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먹자" 하고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디저트, 후식을 대신할 우리말에는 '입가심'이 있습니다. '입가심'은 '(무엇을 먹거나 마심으로써) 입안을 개운하게 가시어 냄'이란 뜻입니다.

'입가심'은 그래도 한 번쯤은 들어봤어도, 그냥 '가심'은 생소하다고요? '가심'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물 따위로 깨끗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집 안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집 청소' 말고 '집 가심'이라고 쓰면 됩니다. 밥 먹은 뒤 숭늉으로 볼을 씻어내면 '볼가심'이라고 하고, 부아를 가시게 하는 일(화를 누그러뜨리는 일)은 '부앗가심'이라고 합니다.

■ 깜냥 : '스펙(Spec)'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있을까요? 영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직장을 구할 때나 입시를 치를 때 요구되는 학벌·학점·토익 점수 등의 평가 요소를 말합니다. 스펙을 대신하는 우리말은 '깜냥'입니다. '깜냥'은 '어떤 일을 가늠해 보아 해낼 만한 능력'을 뜻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스펙업(spec up·더 나은 학력·학점·자격증 따위를 얻고자 노력하는 일)'을 우리말 순화어인 '깜냥 쌓기'로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깜냥껏'은 '어떠한 일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만큼'이란 뜻이고, '깜냥깜냥'은 '저마다 능력대로'라는 뜻으로 다양하게 쓰입니다.

■ 곰살궂다 :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친절하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 말을 써야 할 때 '곰살궂다'를 떠올려 쓰면 좋겠습니다. '곰살궂다'는 '됨됨이나 품(태도)이 부드럽고 고분고분하다, 친절하다'는 뜻입니다. 비슷한말로 '곰살갑다'가 있고 '매우(몹시) 곰살궂다'라는 뜻인 '곰살맞다'가 있습니다. 추석에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곰살궂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눠보길 바랍니다.

■ 갈마들다 : 하루 동안 낮과 밤이 '갈마드'는 것처럼, 기쁨과 슬픔이 '갈마드'는 것이 삶인 것 같습니다. 슬픔만 오는 법은 없지요.

'갈마들다'는 '서로 번갈아 들다'는 뜻입니다. '교체하다(대신하여 바꾸다), 교대하다(일을 서로 번갈아하다)'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쓰면 좋겠습니다. '착잡한 생각들이 끝없이 갈마들었다.', '나는 동생과 갈마들며 병실에서 간호를 하였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희나리 : '~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구창모 가수의 '희나리'라는 노래를 아는 사람은 이 말의 뜻을 대부분 아는 듯합니다. '희나리'는 '덜 마른 장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집에서 장작을 지펴볼 일이 없으니 점점 들을 일도 없는 말이 됐습니다. "딱딱 희나리 튀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어릴 때의 캠프파이어를 떠올리게 한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아름차다 : 윗사람이 버거운 일을 시키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그 일은 내게 너무 아름차다"고 말해보세요. '아름차다'는 '힘에 겹다'란 뜻으로 많이 쓰입니다. '아름'은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를 뜻하는데, 한 아름이 넘으면 '아름드리'라고 합니다. '아름'에 '차다'가 더해졌으니 '아름에 차서 힘에 겹다'라는 뜻이 됐습니다. 아름찬 일은 '울력'(힘을 합하다)하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아시죠?

■ 시부저기 : '시부저기' 시작한 일인데 뜻밖에 결과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시부저기'는 '거의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라는 뜻이 있는 토박이말입니다. 홀소리 하나에 뜻이 달라지는 '사부자기'는 '힘들이지 않고 살짝 가볍게'라는 뜻입니다. '사부자기'는 작은말, '시부저기'가 큰말입니다. 경상도에서는 '시부지기'라고 많이 쓰지요.

"그는 앉으란 말이 없었는데도 청 끝에 시부저기 걸터앉았다."(우리토박이말 사전)

■ 윤슬 : 요즘같이 햇살과 바람이 좋은 때, 바닷가에서 잔잔하게 퍼지는 '윤슬'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합니다. 비슷한 말로 '물비늘'이란 말이 있는데, 이 역시 순우리말입니다. 부르기도 좋고 뜻도 예쁜 '윤슬'은 요즘에는 사람 이름과 가게 이름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윤슬아~" 하고 부르면 반짝이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나요?

■ 마루지 : 부산시는 영화의전당 일원에 '월드시네마 랜드마크 조성' 사업을 추진하다고 밝혔습니다. 언론이나 행정기관에서 '랜드마크'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어서 '상징물'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루지'는 들어보셨나요?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라는 뜻으로 '랜드마크'를 대신할 수 있는 우리말입니다.

처음에는 생소한 말이라도 계속 사용하다 보면, 경남에도 한글 마루지 조성 사업이 추진되지 않을까요?

■ 고갱이 : '고갱이'는 '풀이나 나무의 줄기 한가운데 있는 연한 심'을 뜻하는데, '배추 고갱이'라고 들어 봤나요? 이와 함께 '고갱이'는 '사물의 가운데를 빗대어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영어 공부에 더 정성을 쏟는 아이와 어른들에게 '코어(core)'와 같은 뜻이라고 하면, 바로 '핵심(核心)'이라고 이해하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그의 삶 속에는 민족자존이라는 고갱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표준국어대사전)

■ 늘품 : '늘품이 있어 보인다.'(표준국어대사전)

신기하게도 '늘품'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려지지 않나요? '늘품'이란 '앞으로 좋게 나아질 됨됨이, 가능성(可能性)'이라는 뜻입니다. 늘품 없는 아이를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조급한 어른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 여투다 : 코로나19 확산으로 모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기부 소식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돈이 많다기보다 평소 '여투어' 두었다가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투다'는 '물건이나 돈을 아껴 쓰고 그 나머지를 모아 둔다'는 뜻입니다. '저축하다'는 말을 써야 할 때도 떠올려 쓰면 좋은 말입니다. '여퉈 놓았던 곡식이나 계단 따위를 이고 지고 가봤댔자 돈 사서 사올 수 있는 건 바늘이나 실, 급한 농기구가 고작이었다.' 박완서 <미망> 중.

■ 갈무리 : '정리정돈(整理整頓)'은 마음뿐, 늘 실천이 어렵습니다. 우리말에는 '갈무리'가 '정리·정돈'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물건 따위를 잘 간추리거나 간수하다'는 뜻인 '갈무리'는 '일을 처리하여 마무리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어머니는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의 갈무리 때문에 바쁘셨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옆 사람에게 일의 갈무리를 부탁했다'(표준국어대사전)는 보기가 있습니다.

■ 적바림 : '나중에 보려고 글로 간단히 적어 둠, 또는 그렇게 적어 놓은 것'이라고 문제를 내면 10명 중 9명은 '메모'라고 답할 겁니다. '메모'는 외래어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같은 뜻의 '적바림'이 있습니다. '적발'은 '적바림하여 둔 글'이란 뜻입니다. 메모라는 말과 함께 '포스트잇'도 많이 쓰이고 있지요. 국립국어원에서는 '붙임쪽지'라는 말로 다듬어 쓰자고 제안하지만, 토박이말에는 더 쉬운 '찌'(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을 표하려고 글을 써서 붙이는 좁은 종이쪽)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 도린곁 : 도서벽지(島嶼僻地)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크고 작은 여러 섬(도서)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으슥하고 외진 곳(벽지)을 뜻합니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의 혜택이 적은 지역으로 '도서·벽지 교육진흥법'도 있습니다. 여기서 '외딴'은 모든 것 외지게 하는 관형사인데, '도린곁'에서 '도리다'가 그런 뜻입니다.

'둥글게 빙 돌려서 베거나 파다'는 '도리다'와 '옆'을 뜻하는 '곁'이 합쳐진 '도린곁'은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외진 곳 또는 구석진 곳'을 뜻합니다. 벽지-외딴곳-도린곁 같이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 비기다 : '비기다'라고 하면 가장 먼저 '서로 실력이나 점수 따위가 같거나 비슷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하다'는 뜻이 떠오를 겁니다. '서로 견주어 보다'는 뜻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자식의 마음을 감히 부모의 마음에 '비길' 수는 없겠지요.(표준국어대사전) 그런데, '비기다'는 '비스듬하게 기대다'는 뜻도 있습니다. '난간에 비기어 서면 위험해'(고려대 한국어대사전)라고 쓰입니다.

그 밖에 '비기다'에는 '뚫어진 구멍에 다른 조각을 붙이어 때우다'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예전에는 구멍 난 양말에 다른 헝겊을 비겨 꿰매 신었답니다.

■ 풀치다 : 잠깐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거친 말싸움으로 이어질 때가 있지요? 조그만 잘못은 '풀칠' 수 있으면 그렇게 싸우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풀치다'는 '맺혔던 생각을 돌리어 너그럽게 덮어주다'는 뜻입니다. '용서하다'는 말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풀쳐 생각'으로 명사로도 쓰입니다. 남모르게 마음속으로 하는 생각 '속생각', 엉뚱한 생각, 다른 데로 쓰는 생각은 '딴생각', 상대편 속은 모르면서 한쪽으로만 하는 생각은 '외쪽 생각'이라고 합니다. 가장 좋은 생각은 '풀쳐 생각'이네요.

■ 콩켜팥켜 : 시루떡을 만들 때 쌀가루를 넣고, 그 위에 콩을 넣고, 다시 쌀가루를 넣고 그 위에 팥을 넣고 이렇게 층층이 쌓아나갑니다. 그런데 쌀가루와 콩, 팥을 한꺼번에 시루에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디까지가 콩이고 어디까지가 팥인지 몰라 '일이나 물건이 뒤섞여서 뒤죽박죽된 것'을 '콩켸팥켸'라고 합니다.

앞서 '켯속'이란 말을 배우면서 '켜'가 '층'을 뜻한다고 배웠지요?

'콩켸팥켸'는 '콩켜팥켜'가 변한 말입니다. 어원을 알면 쉬운 우리말, '뒤죽박죽, 뒤범벅, 엉망진창' 말고 '콩켸팥켸'도 기억합시다.

■ 거우다 : 요즘 아이나 어른이나 화가 나면 '빡치다'는 말을 자주 쓰는 걸 봅니다. '빡치다'는 '화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이럴 때 '거우다'라는 순우리말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거우다'는 '건드리거나 집적거려 성나게 하다'는 뜻입니다. '빡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거우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로 쓰면 됩니다.

"나는 철호가 내 성미를 거우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가 버렸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곱빼기 : 음식점 차림표를 보면 '곱빼기'라고 적힌 곳이 있고 '곱배기'라고 적힌 곳도 있습니다.

'배'가 2배, 3배 할 때의 배라고 생각하지만, '곱빼기'는 '곱'과 '빼기'가 더해져 만들어진 말입니다.

'곱빼기'는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이라는 뜻의 '곱절'과 어떤 말의 뒤에 붙어 그런 특성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뜻을 더해 주는 '-빼기'가 더해진 말입니다.

'곱빼기'는 '음식의 두 그릇 몫을 한 그릇에 담은 분량'이란 뜻 말고도 '같은 일을 두 번 거듭하는 것'이란 뜻도 있습니다.

괜히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가 욕만 '곱빼기'로 얻어먹었던 기억은 다들 한 번씩 있지요?

■ 뒤치다꺼리 : 오늘은 '뒤치닥거리', '뒤치닥꺼리'로 쓰여 헷갈리는 우리말 '뒤치다꺼리'를 알아봅니다. 발음이 비슷하고 글자 모양으로는 '뒤치닥거리'가 맞을 것 같지만, 표준어는 '뒤치다꺼리'입니다.

'뒤치다꺼리'는 명사 '뒤'와 '치다꺼리'(남의 자잘한 일을 보살펴서 도와줌. 또는 그런 일)의 합성어로, '뒤에서 일을 보살펴서 도와주는 일', '일이 끝난 뒤에 뒤끝을 정리하는 일'을 뜻합니다.

퇴근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부모들, 모두 응원합니다.

■ 거울지다 : '거울'은 우리말로 물체의 모양이나 형상을 비추어 볼 수 있게 유리 따위로 만든 물건을 말합니다. 어떤 대상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지난 역사를(실수를) 거울삼아…'라고 쓰는데, '거울삼다'는 '사람이 어떤 일을 본받거나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다'는 뜻입니다.

'거울지다'는 조금 생소하지요? '거울지다'는 '되비치어 보이다'라는 뜻입니다. 말과 몸짓에 사람의 됨됨이가 거울져 보인다고 하지요. 나한테는 너그럽고 남한테는 깐깐한 삶을 살지 않았나 돌아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꽃등 : '최초'라는 말은 들었어도 '꽃등'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있나요? '꽃등' 역시 '맨 처음'이란 뜻입니다. '꽃'에는 처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꽃다지'(오이, 가지, 참외, 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에 열린 열매), '꽃물'(곰국, 설렁탕 따위의 고기를 삶아 내고 아직 맹물을 타지 않는 진한 국물)이 그런 뜻을 담은 낱말입니다.

'오늘 학교에 꽃등 온 사람은 누굴까요?'라고 학교 현장에서 자주 쓰인다면, 아이들도 한자어 '최초'보다 우리말인 '꽃등'을 더 익숙하게 사용하지 않을까요. '꼴등'(맨 끝)의 반대말은 '꽃등'이라고 외우면 더 쉽겠습니다.

■ 가로새다 :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곧잘 가로새어 자식 자랑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옆길로 샌다'는 말을 일상에서 곧잘 하지요? 같은 뜻인 '가로새다'는 '중간에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다'는 뜻입니다. '가로'에는 '옆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로새다'는 '어떤 내용이 비밀이 밖으로 새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 사실이 가로새면 너와 나는 곤란하게 된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고 쓰면 되겠네요.

■ 갈음하다 : "이것으로 인사말에 갈음하고자 합니다"라는 말 들어 봤지요? '다른 것으로 바꾸어 대신하다'라는 뜻의 '갈음하다'는 뜻밖에 많이 쓰이는 말이지만, '가름하다'(서로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가늠하다'(목표나 기준 등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살피다)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사 '갈음'은 갈+음으로 분석되는데, '갈다'(바꾸다, 대체하다)의 어간 '갈-'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음'이 붙어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대신', '대리', '대행'이라는 말을 '갈음'으로 바꿔 쓰는 건 어떨까요? '대리운전'은 아직은 낯설지만 '갈음몰기'로 같이 쓸 수 있습니다. 

■ 말미 : "일주일만 말미를 주세요."

혹시 '말미'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말미'는 '어떤 일 따위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을 뜻합니다. '말미'는 우리가 흔히 쓰는 '휴가'를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하루를 쓸 수도 있고, 여러 날을 쓸 수도 있는 이 말미를 잘 쓰면 일을 더 잘할 힘을 얻기도 하지요.

'겨를'은 '여가'에 밀리고, '말미'는 '휴가'에 밀려 생소한 말이 됐습니다.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면, 윗사람에게 "하루만 말미를 얻어 쉬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보세요.

■ 집알이 : '집들이' 말고 '집알이'는 아시나요? 흔히 "친구 집에 집들이 간다"고 하는데 이땐 "집알이 간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집들이'는 '이사한 후에 이웃과 친지 또는 친구 등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집알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를 한 사람의 집을 인사로 찾아보는 일'을 뜻합니다. 집주인은 '집들이'를 하는 것이고, 손님은 '집알이'를 가는 것이지요. '집들이'와 비슷한 뜻을 둔 표현으로 '들턱'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을 '턱'이라고 합니다. 또한 '새집에 들거나 이사를 하고 내는 턱'을 '들턱'이라고 합니다.

■ 자리끼 : 23일 방송에 나온 한 장면입니다. 34개월 아이가 "아빠는 자리끼 먹고"라고 말하니, 이를 지켜보던 어른이 "자리끼가 뭐야?"라고 되묻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말 사용이 왜 소중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리끼'는 '잠자리(자리)'와 '끼니(끼)'의 줄임말로 잠자리에서 마시려고 머리맡에 떠 놓은 물입니다. 예전에는 화장실과 물을 마실 수 있는 부엌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요강'(오줌을 누는 그릇)과 '자리끼'가 필수였는데요. 정수기와 냉장고에서 쉽게 물을 먹을 수 있는 요즘 사람들은 쉽게 듣지 못하는 말이 됐습니다.

■ 모래톱 : 푹푹 찌는 더위에 넓게 펼쳐진 '모래톱'과 파란 바다 물결이 절로 그리워지는 때입니다.

'모래톱'은 바닷가에 있는 넓고 큰 모래벌판을 말합니다. 보통 우리는 '모래사장'이라고 말하지요. '모래사장'에서 '사장'은 '모래 사(沙)'에 '마당 장(場)'이란 한자어로 '모래마당'이란 뜻입니다. '모래사장'이라고 하면 '모래모래마당'이 돼 '역전앞', '처갓집'과 같이 이중 말이 되지요. '톱'은 어원상 '돋다, 돕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인데, '돋아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손·발에서 돋아난 '손톱, 발톱'처럼 '모래톱'은 '바다나 강가에 모래가 돋아나와 쌓인 것'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 미쁘다 : 믿음직하고 예뻐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이 떠오를까요? 요즘 아이들은 '미덥다'와 '예쁘다'를 합쳐 '미쁘다'를 신조어로 만들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미쁘다'는 '믿음성이 있다'는 뜻의 우리말입니다. '미쁘다'는 '미덥다'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입니다.

'못 미덥다'처럼 '미덥다'는 의심이 깔렸지만, '못 미쁘다'는 말은 쓰지 않습니다. 겉모양을 나타내는 '예쁘다'와도 뜻이 다릅니다. '미쁘다'는 사람 마음씨에만 쓰는 말입니다.

■ 켯속 : 두 아이가 있는데 한 아이가 울고 있으면, 상황도 따져보지 않고 남은 한 아이를 나무랄 때가 있습니다. '켯속'도 모르고 말이지요. '켯속'은 '일이 되어 가는 속사정'을 뜻합니다. '먼지가 켜켜이 쌓였다'처럼 종이나 옷감 같은 물건을 포개 놓은 층을 우리말로 '켜'라고 합니다. '켜'의 '속'을 '켯속'이라고 하는데, 그 좁은 틈을 어찌 보지 않고 알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그러려니 너무도 당연히 믿고 있는데 실제의 켯속은 그렇지 않은 데 문제가 있는 거야." - 박완서 <오만과 몽상>

■ 짜장 : 잠깐, 우리가 먹는 '짜장면'이 아닙니다. '그는 짜장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표준국어대사전)고 보기를 가져오면 쉽게 감이 올까요? 맞습니다. '짜장'은 우리말로 '참말로, 틀림없이, 과연'이라는 뜻입니다. 짜장 쉽죠? 아이들이 한번 듣고 외우는 토박이말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중국말에서 따온 '자장면'이 표준어였는데, 2011년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울력 : 민간기업, 또는 국가 간에 교환하는 합의 문서나 합의 자체를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라고 합니다. 한때 공공기관 보도 자료나 언론에서도 'MOU'라고 적다가 최근에는 '업무 협약'이라고 풀어쓰고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울력다짐'이 있습니다. '울력'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일하거나, 그런 힘을 뜻합니다. '울력다짐'은 함께 울력해서 일을 하자고 서로 다짐(약속)하는 것이지요. 쉬운 우리말 쓰기, 경남도민일보와 울력다짐할까요?

■ 도리기 :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다 함께 식사를 하고 'n분의 1'로 나눠 내는 것이지요. 비슷한 뜻으로 일본어에서 온 속어로 뿜빠이(分配)가 있고, 갹출·추렴도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말 '도리기'는 들어보셨나요? '도리기'는 '여러 사람이 나누어 낸 돈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여 나누어 먹음,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더치페이라는 단어 대신 '각자내기'라는 단어로 순화해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지요. 휴가를 떠나게 되면 '3박 4일의 여행에서 식사는 모두 도리기를 했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고 한번 말해보세요.

■ 갈림길 : 한 길로 걸어가다 길이 두 개 이상 갈리는 상황을 종종 접합니다. 어떻게든 한쪽을 선택해 계속 걸어가야겠지요. '갈림길'의 기본 의미는 '여러 갈래로 갈린 길'로, 앞으로 갈 방향이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는 지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로(岐路)'가 '갈림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생사 기로', '기로에 선 ○○당' 등 언론에서 자주 쓰고 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다'(표준국어대사전)라고 쓰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않을까요?

■ 불볕더위 : 날씨가 더운 여름에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폭염'이라는 말입니다. 말집(사전)에서는 '폭염(暴炎)'을 '매우 심한 더위'라고 풀이합니다. 한자 뜻을 풀이해 보면 '사나울 폭(暴)'에 '불탈 염(炎)'이라서, 이 한자만으로는 '매우 심한 더위'라는 뜻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집 뜻풀이 아래에 보면 '불볕더위'로 순화해 쓰라고 풀이를 해 놓고 있습니다. 풀이에 기대지 않더라도 '불볕더위'는 말 그대로 '햇볕이 불처럼 아주 세게 뜨겁게 내리쬘 때의 더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뜻을 바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말을 써야 할까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는 '폭염'이 아닌 '불볕더위'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 매지구름/솔개그늘 :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여름철에 이렇게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면 다들 얼마나 좋아할까요? 이런 손씻이(선물)와도 같은 것을 가리키는 토박이말 두 가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알려 드릴 말은 '매지구름'입니다. 이 말은 '비를 머금은 검은 조각구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해가 쨍쨍 나 있었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이 '매지구름'이 몰려와 한바탕 소나기를 뿌려 주면 더위가 싹 가시기도 하니 좀 반갑겠습니까? 무엇보다 불볕더위가 이어질 때는 더 반가울 것입니다.

또 하나 더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솔개그늘'입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솔개'만큼 아주 작게 지는 그늘을 뜻하는 말입니다. 햇볕이 그야 말로 쨍쨍 내리쬘 때 이런 작은 그늘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 이 솔개그늘을 만나면 참 좋을 것입니다.

■ 싹쓸바람/큰바람/한바람 : 해마다 여름에는 '태풍'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태풍(颱風)'은 한자말입니다. 여기서 쓴 '태'를 '클 태(太)'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태' 자는 '태풍 태' 또는 '몹시 부는 바람 태(颱)'입니다. 그래서 굳이 풀이를 하자면 '몹시 부는 바람'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 고기잡이를 하시던 분들은 이걸 그냥 '큰바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 쉽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큰바람'은 말집(사전)에 '태풍' 옆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싹쓸바람'이라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을 살려 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큰바람', '싹쓸바람'이 바람의 세기에 따른 이름으로 따로 쓰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대전'을 '한밭'이라고 한 보기를 따라 '한바람'이라고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쓰고 있습니다.

■ 작달비/큰물/넘치다/잠기다 : 여름철에는 폭우 또는 호우가 내려 홍수가 나고 때로는 범람이나 침수로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요. 이런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쉬운 말을 쓸 수도 있답니다. '폭우' '호우'라는 말과 비슷한 뜻을 가진 말에 '작달비'라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굵고 세차게 내리는 비'라는 뜻인데 굵은 빗줄기가 '작대기'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릅니다. 비슷한 말로 '장대비'도 있습니다.

이렇게 작달비가 내리면 갑자기 냇물이 불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갑자기 불어난 물을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큰물'이라고 했지요. '홍수'를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큰물이 흐르다가 둑을 넘어서면 '둑이 넘쳤다'고 했고, 넘친 물에 논이나 밭 그리고 집이 잠기기도 했습니다. 제가 쓴 말을 봐서 아시겠지만 '호우', '홍수', '범람', '침수'라는 말을 쓰지 않고도 우리가 알리고자 하는 뜻을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말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말인지는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날씨나 여러 가지 알거리(정보)를 알려 주시는 분들이 좀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비설거지 :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에는 비가 내리다가 그치기를 되풀이하기도 하고 쉬지 않고 내릴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비가 내릴 때도 있지요. 이렇게 비가 올 때 알고 쓰면 좋을 토박이말에 '비설거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우리가 먹은 그릇 따위를 씻어서 치우는 일을 '설거지'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떠올리시면 바로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빨랫줄에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는 일도 비설거지요,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리던 것도 비가 맞으면 안 되니까 거두어 들여야 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비설거지였습니다.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비설거지를 해야 할 게 거의 없어서 쓸 일이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가 안으로 들어오지 오지 않도록 창문을 닫는 일도 비설거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즘에도 비가 올 때마다 떠올려 쓸 일이 많은 말일 것입니다.

비바람이 불어 비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창문을 닫으시면서 "아이구, 바람이 불어서 비가 안으로 들어올 것 같다. 서둘러 비설거지를 해야겠구나"처럼 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갈음옷 : 여름말미(휴가)를 다녀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앞으로 가실 분도 계시지 싶습니다. 언제든 어떤 일로든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짐을 챙길 때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벌' 또는 '여벌옷'입니다. '여벌'이 말집(사전)에 올라 있고 '여벌옷'은 말집(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여벌옷'이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이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많이 쓰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뜯어보면 좀 얄궂은 말입니다. '여'는 '남을 여(餘)'이고 '벌'은 옷을 세는 하나치(단위)입니다. 그 뒤에 '옷'이 왜 붙었을까요? '여벌'이라고 하면 뜻을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우니 '옷'을 더해 그 뜻을 밝혀 주는 것이지요. '역전앞', '외갓집'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여벌옷'을 뜻하는 토박이말로 '갈음옷'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일한 뒤나 나들이 갈 때 갈아입는 옷'입니다.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알려 주고 쓰도록 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앞으로 물놀이 가실 때 '여벌옷' 말고 '갈음옷'을 챙겨 가 주시기 바랍니다.

■ 죽살이 : 여름이면 갑자기 내린 비로 불어난 큰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기도 하고 물놀이를 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래서 삶이라는 것이 '죽고 사는 것'의 갈림길 위에 있다는 말도 하는가 봅니다. '죽고 사는 것'을 한자로 '생사(生死)'라고 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생사'를 토박이말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죽고 사는 것' '죽음'과 '삶'을 아울러 이르는 토박이말로 '죽살이'가 있습니다. '죽다'의 '죽'과 '살다'의 '살'을 더한 말이라 그 뜻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좋습니다. 요즘 아이들한테 '생사'를 영어로 뭐라고 그러지 물으면 'life and death'라고 바로 압니다. 그런데 그 말과 뜻이 같은 토박이말은 모른 채 사는 거죠. 그걸 어떻게 아이들 탓을 하겠습니까?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배울 기회도 없게 만든 건 어른들이니 말입니다.

'죽살이'라는 말은 쉽기도 하지만 낱말 짜임도 한자말, 영어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한자말과 영어는 '삶'이 앞에 있고 '죽음'이 뒤에 있는데 우리 토박이말은 '죽음'이 앞에 있고 '삶'이 뒤에 옵니다. 여기에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만 놓고 봐도 죽음을 생각하고 나서 살 것을 생각한 것만은 틀림이 없으니 말입니다.

■ 죽살이치다 : 앞서 '죽살이'라는 말을 알려드렸는데 '죽음'과 '삶'을 더한 쉬운 말이라는 느낌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두고 쉽고 어렵고를 느끼는 것은 그 말을 얼마나 자주 또는 많이 봤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생사'라는 한자를 자주 많이 보고 들은 사람들은 '생사'가 더 쉽게 느껴지지요. '죽살이'를 처음 들은 사람은 많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죽살이'라는 말을 이렇게 알고 나면 이 말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말을 알 수 있습니다. '죽살이'를 알고 나면 뜻을 알 수 있는 말로 '죽살이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집(사전)에서는 '죽살이치다'를 '어떤 일에 모질게 힘을 쓰다'로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저는 좀 더 풀어서 '어떤 일에 죽기 아니면 살기로 힘을 쓰다'로 풀이를 하면 더 쉬울 거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죽을 힘을 다해 뭔가를 했다,다또는 죽기 살기로 했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 떠올려 쓰시면 좋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이루려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힘을 쓰다는 뜻의 '죽살이치다'를 아셨으니 앞으로 자주 써 주시기 바랍니다.

■ 든바다/든벌 : 여름철 더위를 식히러 탁 트인 바다를 찾기도 합니다. 이 바다를 가리키는 말 가운데 '든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든바다'는 말집(사전)에서 '육지로 둘러싸인 육지에 가까운 바다'라고 풀이를 합니다. 비슷한 말로 내양(內洋), 내해(內海)가 있습니다.

'든바다' 앞에 있는 '든-'은 우리가 잘 아는 말입니다. '밖에서 속이나 안으로 향해 가거나 오거나 하다'라는 뜻을 가진 '들다'에서 온 말입니다. '들어온'이 줄어서 된 말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뭍으로 둘러싸여 뭍 쪽으로 들어온 바다가 되는 거죠.

그리고 날씨를 알려 줄 때 많이 듣는 '근해(近海)'와 비슷한 뜻을 가진 토박이말은 '갓바다'라고 한답니다. 꼼꼼하게 풀이하자면 '든바다'는 '뭍으로 둘러싸인 바다'인데 '갓바다'는 '그냥 뭍에 가까운 바다'를 가리키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든-'이 들어간 말로 '든벌'이 있습니다. '든벌'은 '집 안에서만 입는 옷이나 신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벌'이 옷을 세는 하나치(단위)라는 것을 알면 쉬울 것입니다. 집 안에서 입는 옷 '실내복(室內服)'을 갈음해 쓸 수 있는 말이니 자주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난바다 : 앞서 알려드린 '든바다'와 맞서는 토박이말은 '난바다'입니다. '난바다'를 말집(사전)에서는 '육지로 둘러싸이지 아니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원양(遠洋)', '원해(遠海)'가 있고 날씨를 알려 줄 때 자주 듣는 '먼바다'도 비슷한 뜻으로 쓰는 말입니다. '난바다'의 '난-'도 우리가 잘 알고 쓰는 '밖으로 나오거나 나가다'는 뜻으로 쓰이는 '나다'에서 온 말입니다.

앞에서 보기를 든 '든벌'과 맞서는 말도 '난벌'이랍니다. '난벌'은 '나들이할 때 입는 옷이나 신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요. '실내복(室內服)'에 맞서는 말인 '외출복(外出服)'과 같은 뜻이니까 '외출복'을 써야 할 때 떠올려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벌'과 비슷한 말로 '나들잇벌'이 있는데 말 그대로 나들이할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이 말에 그대로 드러나 더 쉬울 것입니다.

원양, 원해를 뜻하는 토박이말 '난바다'를 알고 나면 '외출복'이라는 뜻을 가진 '난벌'이라는 말도 쉽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들이를 할 때 입는 옷이라는 뜻의 '나들잇벌'이라는 더 쉬운 말이 있다는 것도 아셨으니 앞으로 떠올려 써 주시기 바랍니다.

■ 들살이 :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을 가리지 않고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을 나서면 무엇보다 잠을 잘 곳을 마련해야 하지 않습니까? 집을 빌려 잘 수도 있고 밖에서 잘 수도 있지요. 그런데 집이 아닌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을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야영'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캠핑'이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야영', '캠핑'과 뜻이 같은 토박이말이 있는데 들어보신 적이 있을까요? '야영'이나 '캠핑'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쓰며 살지만 그 말을 뜻하는 토박이말이 있다는 이야기도 오늘 처음 듣는 분들이 많지 싶습니다.

'야영', '캠핑'과 뜻이 같은 토박이말에 '들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들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집 안에서 사는 것과 견주면 챙길 것도 많고 어려움도 있지만 집에서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즐기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말집(사전)을 찾아봐도 '야영'과 같은 말이라고 풀이를 해 놓았는데 쓰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 '야영', '캠핑'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 '들살이'를 떠올려 쓰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여울 : 앞서 알려드린 '들살이'는 바닷가나 물가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바닷가나 물가에서 들살이를 하시는 분들이 만나기 쉬운 곳이 있습니다. 바다에 가거나 골짜기에 가서 물놀이를 하게 되면 물이 조금 세차게 흐르는 곳을 만나거나 그런 곳에서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을 보거나 그런 곳에서 놀면서도 그곳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토박이말로 '여울'이라고 합니다.

물결이 더 세차게 흐르는 여울은 '된여울'이고 물살이 쏜살같이 빠르게 흐르는 여울은 '살여울'이지요. '된여울'은 '된+여울'의 짜임으로 앞가지 '된'에 그런 뜻이 있는 것이고 '살여울'은 '살+여울'의 짜임이고 앞가지 '살'에 그런 뜻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된-'이나 '살-'이 들어 있는 다른 말의 뜻도 미루어 어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넣어 새로운 말도 만들 수 있을 테니 더욱 보람이 있게 될 것입니다. 토박이말을 잘 알면 이런 좋은 것들이 많답니다.

■ 여울놀이 : '여울'이라는 말을 알면 이 말이 들어간 다른 말의 뜻도 알 수 있고 이 말을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씀을 앞서 드렸었지요. '여울'이 들어있는 말 가운데 '여울놀이'가 있습니다. '여울에서 낚시를 하면서 즐기는 놀이'는 '여울놀이'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여울'에 가서 '여울'을 보고도 '여울'이라 하지 못하고 여울에서 놀면서도 '여울놀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보신 분들이 둘레 분들에게 널리 알려 주시고 앞으로 많이 그리고 자주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여울이 들어간 말들이 여럿 더 있습니다. 여울 바닥에 깔려 있는 돌은 '여울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자주 보고 들어서 잘 아시는 '여울목'은 '여물물이 턱진 곳'을 가리키는 말이고 '여울머리'는 '여울의 맨 위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말집(사전)에 올라 있습니다만 오르지 않은 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래', '자갈'을 '여울' 앞에 세우면 '모래여울', '자갈여울'이 되고 '다리', '길'을 '여울' 뒤에 세우면 '여울다리', '여울길'이 됩니다.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한 예쁜 말들을 만들어 쓰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입다짐/속다짐 : 우리가 살면서 여러 가지 약속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때론 말로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혼자 마음속으로 하기도 합니다. 이런 '약속'을 할 때 쓸 수 있는 토박이말도 있는데 그 말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굳게 다짐합니다"를 많이 해 보셨을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다짐'이 들어간 말이지요.

입으로 말로써 하는 다짐은 '입다짐'이고 마음속으로 하는 다짐은 '속다짐'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구두 계약' 또는 '구두 약속'은 '입다짐'이라고 할 만합니다. 누군가에게 말로 술 또는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을 했다면 '입다짐'이 되는 거죠. 그리고 그걸 혼자 마음속으로 했다면 '속다짐'입니다. 자주 앉는 책상 앞이나 날마다 보는 거울 앞에 글로 적어 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글로 적은 다짐은 '글다짐'이라 할 수도 있지 싶은데 아직 말집(사전)에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서면 계약', 또는 '서면 약속'을 '글다짐'이라고 해 보면 어떨까요?

■ 구멍수 : 요즘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뭐니 뭐니 해도 빛무리한아홉(코로나19)일 것입니다. 여러 해째 이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뚫고 나갈까 많은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었죠. 어떤 어려움이나 고비를 뚫고 나갈 수, 방법, 수단 또는 도리를 '구멍수'라고 합니다.

흔히 '해결책'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그 말은 익으실 텐데 '구멍수'라는 말은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듣거나 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돌파구'라는 말도 더러 쓰는데 '해결책'과 비슷한 낱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서로 비슷한 말인데도 '해결책'을 찾으면 '돌파구'는 비슷한 말이라고 풀이를 해 놓았는데 '구멍수'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린말집(오픈사전)에 '구멍수'는 '돌파구'의 북한말이라고 풀이를 해 놓기도 했으니 더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 떠세 : 옛날이나 요즘을 가리지 않고 가진 사람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괴롭히는 일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도 계시고 그렇게 괴롭힌 사람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있는 사람, 힘이 센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말로 괴롭히거나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을 흔히 '갑질'이라고 합니다.

저마다 가진 돈이나 힘을 앞세워 잘난 체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거나 때리기도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럴 때 쓸 수 있는 토박이말에 '떠세'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집(사전)에 '떠세'는 '재물이나 힘 따위를 내세워 젠체하고 억지를 씀. 또는 그런 짓'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요.

말집(사전)에 '갑질'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풀이를 해 놓았던데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는 '돈이 많거나 힘이 센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떠세'라 할 만하다 생각합니다.

'갑질'이라는 말을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꼭 써야 할 때에는 '떠세'를 떠올려 써 주신다면 짜장 고맙겠습니다.

■ 가시다/부시다 : 사람이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심심풀이로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먹고 나면 어김없이 해야 할 일이 있지요. 바로 '설거지'입니다. '설거지'라는 말은 잘 아시다시피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갈무리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며 비슷한 말로 '뒷설거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설거지라는 말의 뜻풀이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먹고 난 뒤 그릇을 '씻는' 것과 아랑곳한 말 가운데 '가시다'와 '부시다'가 있습니다. '가시다'는 '물 따위로 깨끗이 씻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에서 나온 '입가심'과 '볼가심'이라는 말도 앞서 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가시다'의 이름씨꼴(명사형)은 '가심'입니다. '가심'은 '깨끗하지 않은 것을 물 따위로 씻는 일'이라는 뜻이 되지요. '청소'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두 낱말의 공통점을 찾으셨을 겁니다. 바로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라는 말을 써야 할 때 '가심'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부시다'도 '그릇 따위를 씻어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앞에서 '가시다'에서 '가심'이라는 말이 나온 것처럼 '부심'이라는 말도 있을 법한데 말집(사전)에는 올라있지 않습니다.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가 명개를 부시어 냄. 또는 그 비'를 가리키는 '개부심'에 있는 '부심'이 '부시다'에서 온 것임을 어림할 수 있습니다.

■ 꽃잠/귀잠/단잠/꿀잠​​​​​​​ : "잠이 보약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을 잘 자는 것이 몸에 그만큼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구나 잠을 깊이 푹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주 깊이 든 잠'을 가리키는 말로 '귀잠'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깊이 든 잠'을 '꽃잠'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혼인한 가시버시(부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을 가리키기도 하니 알아두시면 좋을 것입니다.

꽃잠, 귀잠과 같이 아주 깊이 잠을 자고 나면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그럴 때 쓸 수 있는 말이 바로 '단잠'과 '꿀잠'입니다. 말집(사전)에 '단잠'은 '아주 달게 곤이 자는 잠'이라고 풀이를 했고, '꿀잠'도 '아주 달게 자는 잠'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는데 두 말이 비슷한말이라는 풀이는 없습니다. '숙면(熟眠)'과 '감면(甘眠)'이라는 한자말은 나오는데 토박이말이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좀 더 안타깝습니다. '숙면'을 찾으면 비슷한말에 '단잠'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말집(사전)을 좀 더 알차게 손을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덧잠/선잠/풋잠/겉잠/수잠/여윈잠​​​​​​​​​​​​​​ : 앞서 깊이 자는 잠과 기분 좋은 잠과 아랑곳한 말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까닭으로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힘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때알이(시계)를 맞춰 놓고 자긴 하는데 "10분만 더" 또는 "5분만 더"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긴 했지만 잠을 잔 것 같지도 않고 더 자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춥다는 핑계로 이불에서 나오기가 더 싫지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잘 만큼 잤는데 잔 사람은 모자란 듯한 그런, '잠을 잔 뒤에 더 자고 싶은 잠'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덧잠'입니다. "아 오늘도 덧잠을 자는 바람에 늦어서 아침도 못 먹고 나왔어"처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은 분들이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알아본 '귀잠'과 맞서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선잠'입니다. 이 말은 '깊이 잠이 들지 못하거나 마뜩하게 이루지 못한 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몸이 아플 때면 이런 잠을 자곤 합니다. 비슷한 말로 '풋잠'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잠든 지 얼마 안 되어 깊이 들지 못한 잠'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풋잠을 자다가 무슨 소리가 들리면 잠을 깨곤 하니까 쓸 일이 많을 것입니다. 깊이 들지 않은 잠을 가리키는 말에 '겉잠', '수잠', '여윈잠'이라는 말도 알고 쓰시면 좋겠습니다.

■ 터울거리다/애면글면하다​​​​​​​​​​​​​​ : 경남도민일보에서 세 해째 '쉬운 우리말 쓰기'에 앞장을 서 주셔서 이렇게 여러분께 토박이말을 널리 알릴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아직 저희가 갈 길이 한참 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리 삶과 멀어진 만큼 사람들 마음과도 멀어져 버린 토박이말을 삶 속으로 사람들 마음속으로 끌어오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늘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고 새롭게 힘과 슬기를 보태주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기운을 내서 일을 하게 됩니다.

토박이말 살리는 일을 해 온 지 스무 해가 넘었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면 가슴 아픈 일들도 많습니다. 오로지 토박이말을 살려 보겠다는 마음으로 애를 몹시 쓰며 살았지요.

이처럼 '어떤 일을 이루려고 애를 몹시 쓰다'는 뜻을 가진 토박이말로 '터울거리다'가 있습니다. 비슷한말로 '터울대다', '터울터울하다'가 있지요. 이 말과 비슷하면서도 더 느낌이 센 말에 '애면글면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의 본딧말이자 어찌씨인 '애면글면'은 그나마 알고 쓰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많은 사람이 토박이말을 살리는 일에 터울거리고 있고 애면글면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토박이말을 알고 쓰며 사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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