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출산 - 육아 안전망 열악해
갈등 벌어진 틈에 숨어버린 방안

집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움직인다. 코로나19 단계에 따라 놀이터는 폐쇄됐다.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의 놀이도 중단됐다. 아니다. 놀이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놀이가 주는 '재미'도 함께 놀던 '연대'도 스마트폰 속으로 옮겨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해 질 녘 어머니의 부름에 아쉬움을 남기며 내일 만나자는 어린 약속은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방과 후 수업을 듣고 학원을 가고 엄마,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는 풍경이 반복된다. 조부모의 손에 이끌려 집에 오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부모는 은퇴 후에도 다시 육아를 시작한다. 손자, 손녀의 얼굴에서 자식의 기억을 되돌린다. 경력단절을 걱정하는 자녀를 위해 끝 모를 희생이 이어진다.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 미안함과 속상한 마음 그리고 먹먹함이 공존한다. 누구를 위한 맞벌이인지 구별되지 않을 만큼 가치가 혼란스럽다. 부모님을 위한 것일까.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너와 나를 위한 것일까.

아이들을 위한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달라진 환경에 스마트폰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간단한 게임 규칙에 부가적인 수칙들이 더해지더니 복잡한 규정을 가진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만든다. 'GAME OVER'가 되어도 괜찮다. 부활이란 버튼이 있으니까. 성장을 위해서는 코인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이 게임을 위한 돈 쓰기를 이길 수 없다. 게임 안의 세계에도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다른 점은 현실의 목숨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어렵게 스마트폰을 숨긴다.

알 수 없는 코시국. 태권도 학원으로도 해소할 수 없는 활력에 집 안이 놀이터가 된다. '엄마, 아빠 놀아줘, 심심해.'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 모르지만, 추억의 옛날 놀이는 이어진다. 딸이 좋아하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 놀이를 한다.

이불을 깔고 매트를 깔아보지만, 자녀의 발걸음에 머릿속은 온통 층간소음에 쏠려있다. 초인종이 먼저 울릴지 걱정이다.

"다 숨었나요?" 물어본다. "네"라는 대답을 쫓아가면 열 번도 넘게 똑같은 장소에 숨어 있는 순진함이 있다. 초인종이 울린다. 집 밖은 위험하다.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더는 끝내야 하지 않을까. 경쟁을 넘어서 상생의 길로 가기 위한 사회 분위기는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결혼, 출산, 육아 등 변해가는 사회구조가 낳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이 있다. 결혼 후 출산과 함께 찾아오는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육아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기에는 우리 사회 안전망은 너무 열악하다.

무상보육, 양육비, 육아휴직을 마치 혜택처럼 던지는 정책에 현혹될 수 있을까. 그러나 따지는 계산법. 해당하는지, 안 되는지 세대 간 갈등도 있다. 세대 간 싸우다 보면 방안이 순식간 숨어버린다.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게.

아들의 초등학교 확진자 발생에 따라 선별검사소에서 코를 찌르며 하루분의 근심과 걱정으로 음성 확인 문자를 기다린다. 감염병이 정말 가까이 찾아왔다. 마치 '숨바꼭질' 놀이처럼 움직이면 걸린다. 백신 1차 접종과 '코로나19(Covid 19) PCR 검사 결과 음성(Negative), 정상입니다' 문자를 본다. 술래가 고개를 돌려 다시 말한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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