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 조사
40%가 30년 넘은 건물에 거주
에너지효율 낮아 냉난방 취약
외국인노동자 숙소도 열악해
민관 주거환경 개선사업 꾸준
"에너지 공공성 강화 연대 필요"

기후재난은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를 들춰내고 있습니다. 쪽방촌과 아파트, 농촌과 도시, 지구촌 남반구와 북반구가 모두 기후위기를 체감하지만, 그 격차는 큽니다. '기후정의'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내년 1월 시행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기후정의'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에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기후변화 책임에 따라 탄소중립사회 이행 부담과 녹색성장 이익을 공정하게 나눠 사회적·경제적, 세대 간 평등을 보장하는 것.' 기후재앙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에너지 복지와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치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

'경상남도 에너지 복지 조례'는 지난해 11월 제정됐다. 이 조례는 기후위기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구든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에너지 이용에서 소외되지 않아야 하고, 보편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조례는 저소득 가구 등 연료비 부담으로 에너지 이용이 원활하지 않은 가구를 '에너지이용 소외계층'으로 정의했다. 조례 제정 즈음 경남도는 첫 실태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취약계층 에너지 사용 실태와 정책 요구 등이 담겨 있다.

민관에서 기후위기·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일도 이어지고 있다. 환경이 열악해 주거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매년 돌아오는 폭염과 한파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저소득 가정 등이 대상이다.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인 이사누딘 누를 씨가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 있는 숙소 부엌에서 벽지가 교체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벽지 교체는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동욱 기자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인 이사누딘 누를 씨가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 있는 숙소 부엌에서 벽지가 교체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벽지 교체는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동욱 기자

◇실태조사 결과 = 경남도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취약계층 에너지 복지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창원, 진주, 통영, 사천, 거제, 양산, 고성, 남해, 산청, 함양 등 10개 시군 3만 1645곳(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 3만 507가구·복지시설 1138곳)으로 조사 규모가 큰 편이었다. 국비와 도비, 시군비를 합쳐 9억 7300만 원을 들였고, 설문조사를 위해 조사원 227명도 채용했다.

에너지 취약계층은 가구원수로 보면 1인 가구가 61%로 가장 많았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이 62%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단독주택(42%)에 사는 이가 아파트(34%)나 다가구주택(9%)에 사는 이보다 많았는데, 군 지역은 단독주택 거주자(80%)가 훨씬 많았다.

또, 월세(43%)를 내면서 사는 이가 가장 많았고, 임대주택·요양병원(25%), 자가(21%), 전세(11%) 순이었다. 이는 취약계층 거주비 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사는 집 40%(군 지역은 57%)는 지은 지 30년이 지난 건물로 에너지 효율이 낮아 한여름과 한겨울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 기기는 가스 보일러(56%), 기름 보일러(30%) 순이었는데, 도시가스 공급률이 낮은 군 지역은 기름 보일러가 74%로 난방비 부담이 컸다. 난방 요금은 시 지역 평균 월 9만 9000원, 군 지역 평균 월 15만 2000원이었다. 냉방시설은 선풍기(67%), 조명기기는 형광등(70%) 비중이 각각 가장 높았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율은 2.6%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코로나19 이후 전기요금 증가(77%), 가스요금 증가(14%) 등으로 에너지 사용량도 늘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기요금 할인이나 연료비 지원 확대 등 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 보고서는 올 4월에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경남도는 앞으로 추진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도가 만들 에너지 복지사업과 도의회 사업·예산 심의에 이목이 쏠리게 됐다.

◇주거권 확보로 불평등 해소 =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사누딘 누를(32) 씨는 한국 생활이 올해로 9년째다.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 있는 회사 숙소에서 그는 다른 외국인노동자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한 가정집 2층을 기숙사로 쓰는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자동차부품 조립공장에서 일한다.

방 3개와 거실, 공동부엌 등이 있는 숙소는 지난 8월 말 탈바꿈했다. 이전에 숙소는 늘 눅눅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오래된 벽지는 누렇게 변한 데다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그득했다. 무더운 여름 곰팡이와 동거하는 상황은 겨울이 와도 바뀌지 않았다. 경유 보일러가 고장이라도 나면 바닥은 발을 디디기 어려울 정도로 차가워졌다. 이달 중순 숙소에서 만난 이사누딘 누를 씨는 거실에서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웬만큼 적응했지만, 추위는 여전히 견디기 힘겹다.

하지만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 수탁 운영)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숙소 벽과 천장에 벽지를 새로 발랐다. 일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숙소는 새하얀 벽지로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이사누딘 누를 씨는 "예전보다 냄새가 많이 안 나고, 푹 잘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5살 딸과 아내가 있는 인도네시아는 지진과 쓰나미 등 기후재난을 겪는 나라다. 그는 "가족 얼굴을 2018년 이후 보지 못했지만,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며 "사실 기후 이야기보다 요즘에는 코로나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는 올 1월 설치돼 첫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벌였다. 심사를 거쳐 8가구를 선정했고, 지난 7∼8월 도배, 장판·방충망 교체, 천장 보수, 냉난방 시설 수리 등을 진행했다. 지난해 겨울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열악한 이주노동자 숙소환경 개선 요구가 잇따랐다. 정부가 올 1월 발표한 농·어업 분야 외국인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노동자 3850명·사업장 496곳) 결과를 보면 노동자 69.6%가 컨테이너 건물,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내 가설 건축물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인 이사누딘 누를 씨가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 있는 숙소 부엌에서 벽지가 교체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은 벽지를 교체하기 전 모습. 벽지 교체는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동욱 기자
▲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인 이사누딘 누를 씨가 창녕군 계성면 명리에 있는 숙소 부엌에서 벽지가 교체된 것을 설명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은 벽지를 교체하기 전 모습. 벽지 교체는 경남도외국인주민지원센터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진행됐다. /이동욱 기자

◇취약계층 아우르는 정책 필요 =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저소득 가정을 지원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민관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누구나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확장하려면 주거환경 개선 등 에너지 복지사업도 재편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취약계층을 아우르면서 가구별 상황까지 섬세하게 살피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 웹진 <인권>에 실은 '기후위기는 평등하지 않다' 글에서 "기후변화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큰 고통을 초래한다. 특히 빈곤층, 여성, 아동, 장애인, 노인, 원주민, 소수민족, 이주민, 난민 등이 더 큰 타격을 받는다"며 "1차 산업 종사자들일수록 기후변화에 취약하고, 도서 지역이나 저지대, 해안가에 사는 주민들의 취약성이 클 수밖에 없다. 폭우나 폭염, 한파와 폭설 등으로 피해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이들은 그런 상황에 대처하거나 그 지역을 벗어날 능력이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최예륜 빈곤사회연대 회원(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올 7월 종교환경회의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기후위기 시대, 정의로운 공간을 상상하다' 대화마당에서 "허름한 농가주택에 살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 청계천 국일고시원에서 규모가 크지 않은 화재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일용직 노동자 등 7명이 사망했다. 폭염이 심했던 2018년에는 온열질환 사망자도 많았다"면서 "코로나 시국에 소득과 주거 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에너지 기본권 제고, 에너지 공공성·시민권 개념으로 연대가 필요하다. 낮은 소득과 높은 에너지 비용, 낮은 에너지 효율, 주거 점유 형태와 가구 특성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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