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4억→지난해 4682억 원
사회초년생 중심 피해액 급증
계약 전 근저당권 등 확인 필수
"중개 사고 배상책임 강화해야"

금융·부동산 상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유형의 전세사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차인이 계약 전 관련 서류를 꼼꼼히 확인하는 한편, 중개인 처벌 수위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창원시 양덕동 집합건물 한 층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최소 19가구로, 면적이 가장 작은 호실 전세금 3000만 원으로 계산해도 최소 6억 원 이상 피해가 예상된다. 임대인은 부동산 소유권을 신탁사에 넘기고 받은 수익권증서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돈을 빌렸다. 이후 신탁계약상 규정된 절차(신탁사·우선수익자 동의) 없이 효력 없는 신규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임대인이 돈을 갚지 못하자 금융기관은 부동산 공매절차에 들어갔고, 임차인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하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전세사기 사건은 주로 금융·부동산 상식이 부족한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금 미반환 피해액 집계 자료를 보면 2016년 34억 원에서 지난해 4682억 원으로 치솟았다. 올해 8월까지만 해도 3517억 원에 이른다.

◇유형 가지각색 = 유형도 다양하다. 근저당권을 무리하게 설정한 부동산에 임차인을 들이고서, 문제가 생기면 잠적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근저당권은 채무자가 채무를 못 갚아 담보물을 현금화했을 때, 금융기관이 요구할 수 있는 우선 청구권리다. 경매 때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뒷순위로 밀리기 때문에, 근저당권 설정금액(채권최고액)이 높을수록 임차인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창원 중앙동 오피스텔에서도 이 같은 방식으로 17억 원 규모 사기 사건이 벌어졌다.

2010년대 이후 '갭투자'가 기승을 부리면서 관련 피해도 늘었다. 갭투자는 전세가-매매가 차이가 작은 상황을 이용해 임차인 전세보증금에 나머지 자본을 합쳐 건물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매매가가 하락했을 때 전세 보증금 반환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2019년 서울시 강서구 한 임대인은 이런 방식으로 대주택 280여 채를 사들였다가 돌연 잠적했다. 공인중개사가 이중계약서를 써서 전세금을 빼돌린 사례도 있다. 창원 한 공인중개사가 2012년부터 7년간 임차인 150여 명에게 70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받고, 임대인에게는 월세 계약을 했다고 속인 사건이다. 이 공인중개사는 국외로 도피했다 검거돼 지난해 징역 9년형을 받았다.

◇보증보험·중개사협회 변제 '한계' = 계약 1년 이내에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들면 피해금액을 보증받을 수 있지만, 예외도 있다. 전입신고 다음날에야 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생기는 법적 허점을 악용해 전입신고 날 근저당을 설정하거나, 소유권을 옮겨버리는 사례가 나오고 있어서다. 신탁부동산은 보증보험 가입 대상에서도 빠진다.

임대차계약 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공제증서를 받았다면, 협회에서 최대 1억 원까지 갚아주지만 먼저 민사소송 판결이 나와야 한다. 어찌 임대인·공인중개사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완벽한 피해 회복은 어렵다. 1억 원은 한 공인중개사가 1년 동안 중개한 계약에서 피해를 본 모든 임차인에게 지급할 수 있는 한도인데, 특정 사건에 복수의 피해자가 연루되는 일이 많아서다. 하재갑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남지부장은 "민사소송 판례를 살펴보면 임차인 과실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라며 "임대차 계약 때 공인중개사 설명을 들었더라도 반드시 관련사항을 재확인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계약자 사전 확인·법 개정 필요 = 결국 계약자 자신이 철저히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부동산등기사항전부증명서(등기부등본)'를 떼면 근저당권 설정 여부·채권최고액을 확인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는 계약 예정 부동산 매매가를 확인하고, 전입세대 열람원을 떼 먼저 들어온 임차인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실거래가와 비교해 근저당 설정액이 높고 이미 들어온 전입세대가 많을수록, 자신의 전세보증금 반환 권리는 미뤄지기 때문에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이중계약을 막으려면 임대인 본인임을 꼭 확인하고, 전세금도 임대인 명의 계좌로 넣어야 이후 문제의 소지가 없다

신탁 부동산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등기사항증명서에는 신탁원부 번호가 나와 있고, 등기소에 방문하면 직접 원부를 떼 볼 수 있다. '신규 임대차 계약 시 신탁사와 우선수익권자 동의가 필요하다'는 항목이 있다면 증명 서류를 요구하고서, 직접 신탁사에도 확인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보통 사람들은 공인중개사가 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돼 있다"라며 "현재 공인중개사가 관련서류를 제대로 발급·설명하지 않았을 때 배상책임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기준을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중개사협회 책임보장한도를 개인 2억 원, 법인 4억 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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