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뉴아트 결합한 〈열두 생〉 안무 짜고 연희자로 무대 누벼
"옛것과 새것 만남은 줄다리기 자연스러운 조화 만들려 애써"
대학원서 공연예술·기획 공부
"기술 익히고 다양한 실험하며 춤 너머의 미래 열어가고파"

조용하면서도 강한 사람. 조민경(42) 청음예술단 대표는 낡은 것이 아닌 언제나 새로운 전통연희 공연을 꿈꾼다. 그는 한국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대를 연결하는 촉매자가 되고 싶어 한다.

조 대표를 처음 만난 건 7월에 열린 <열두 생 : 열두 개의 생> 공연 때였다. 통영 12공방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한국무용을 전공한 그는 안무 총괄을 맡고 동시에 연희자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3일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진해요'라는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기획자이자 무용수로 사는 삶을 돌아보며 미래를 이야기했다.

▲ 조민경 대표가 2019년 초연한 <열두 생> 작품에서독무를 선보이고 있다.  /청음예술단
▲ 조민경 대표가 2019년 초연한 <열두 생> 작품에서독무를 선보이고 있다. /청음예술단

◇뉴아트 기술과 전통연희 만남 = 사물놀이·판소리·탈춤. 전통연희 하면 쉽게 떠오르는 장르다. 익숙한 것과 이별하는 건 때로는 파괴적이다. 최근 '범 내려온다'로 주목받은 이날치·'괴상한 소리꾼' 이희문이 일으킨 돌풍은 예사롭지 않다.

"모순적인 말 같지만, 전통은 새로운 옷을 계속 입어야 합니다. 한국의 춤·음악·놀이가 박제된 모습이 아닌 일상에 흘러 넘치려면 변화무쌍한 기획을 이어나가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뉴아트 기술과 전통 연희를 접목한 <열두 생> 기획 무대는 지난 2년간 새로운 길을 만들고 내보이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청음예술단이 2019년 통영에서 초연 형태로 선보인 <열두 생>은 그에게 잊지 못할 작품이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뉴아트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돼 쇼케이스 형태로 작품 발표회를 하고, 평가 이후 2년 연속으로 예산을 받아 완성도까지 높였기 때문이다.

전통연희 창작 단체인 놀플러스와 융복합 콘텐츠 기업인 비움아츠가 공동으로 참여했고, 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도 도움 단체로 함께했기에 의미가 컸다.

"저는 안무 짜는 것을 전담했고, 연출을 맡은 소경진 놀플러스 대표를 비롯해 작가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윤제호 미디어아트 대표와 치열하게 소통하면서 만들었는데요.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습니다. (웃음) 옛것과 새것의 만남은 줄다리기 과정의 연속이죠. 기술과 전통연희 융합, 서로 해치지 않으면서 시너지를 내고자 부단히 애썼습니다."

공연 사전 작업을 위해 통영 공방을 지키는 장인을 수차례 만나 인터뷰하고, 민속품 제작 과정을 영상으로 남겼다. 이후 공연에서 경대(거울)·미선(부채)·자개·발 등을 무대 전면과 후면에 배치하고 연희 소품으로 활용했다.

"발을 만드는 장인인 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 조대용 선생님과 만남은 고마움 그 자체였습니다. 공연에 올릴 작품을 쓸 수 있을지, 빛을 가리는 용도라는 틀을 깨고 활용해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여쭈었는데 흔쾌히 뜻을 이해하고 허락해 주셨죠."

▲ 조민경 청음예술단 대표.  /김구연 기자 sajin@
▲ 조민경 청음예술단 대표. /김구연 기자 sajin@

◇기획자·무용수 양쪽 날개가 필요해 = 진해구에 터를 잡고 지내는 조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경성대 무용학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무용학원 문을 두드렸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난 스승이 한국무용가였다. 누가 봐도 자신이 봐도 한복이 찰떡처럼 잘 어울렸기에 운명처럼 한국무용을 택했다. 입시로 준비한 승무는 지금도 가장 익숙한 몸짓이다.

"어릴 적부터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어요. 춤추는 걸 한없이 즐겼죠.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용부에 들어갔어요.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상을 받은 계기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무용학원 문을 두드렸죠. 고교 시절에는 이매방류 승무를 배웠어요. 이후 경성대에 입학해 이영희 선생님을 만나 틀을 깨는 변화를 중시할 수 있었어요. 기후변화를 주제로 만든 창작무 <만선>에 출연했는데, 춤이 갖는 힘을 만끽했죠."

새로움을 추구하는 열망 때문에 그는 무용수이자 기획자로 살고 있다. 경성대 무용학과 졸업 이후 원광대 산하 디지털대학 전통연희학과에서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창원대 문화융합기술협동과정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매핑·뉴아트·코딩 등 기술적 요소를 익히는 것부터 공연예술·무대기획 전반을 배운다.

"춤만 춰서는 다음이 없더라고요. 다음이란 미래죠.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너무 거창한가요. 전통연희를 지키고 알리려면 기획자가 되자고 마음먹었죠. 발 빠르게 변하는 무대 기술을 익히고 장르 결합과 같은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 지난 7월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열두 생: 열두 개의 생> 공연. /청음예술단
▲ 지난 7월 경남콘텐츠기업지원센터에서 열린 <열두 생: 열두 개의 생> 공연. /청음예술단

◇경력단절 여성 무용인 발굴·공연 연습 중 = 경남을 주무대로 하는 청음예술단은 2011년에 생겼다. 경남민예총 진해지부 소속 단체이기도 하다.

조 대표는 많은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이 그립다. 독무보다 여럿이 합을 맞춰 움직이는 게 더 좋다. 무엇보다 춤으로 소통하고 삶을 나누는 일이 즐겁다.

새롭게 준비 중인 '노맘대로 프로젝트'는 경력단절 무용인을 발굴해 함께 창작무를 만드는 작업이다. 참가자는 40대 여성들로 무용을 전공했지만 결혼 후 춤과 멀어진 삶을 살았다. 노맘(NO-MOM), 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엄마가 아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

조 대표가 문화기획자 연수에서 만난 송윤경 무용수와 함께 손을 잡고 기획했다. 송윤경은 안무가이자 무용 치료 선생으로 영국에서 20년간 활동했으며, 최근 지역에 기반을 잡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출산 후 몸의 변화, 내가 아닌 것 같은 나의 모습을 서로 이야기 나누고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작품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사람을 이야기할 때 경력단절 여성은 지워진 존재나 다름없을 때가 잦습니다. 춤에 대한 열망은 어느새 그리움으로만 남고, 무대 오르기는 꿈도 못 꾸던 이들을 찾아 함께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12월 진해구민회관 무대에서 만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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