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랜 분쟁
다국적 연주자 오케스트라 창단
공연 통해 화합·평화 의미 전파
첫 연습 때 흐르는 파헬벨 카논
반복 선율 '주고받음 미학'전해

1653년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난 파헬벨,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이 그랬듯 그 역시 교회의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적 기초를 쌓았으며 입학한 대학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당시의 교양 학교라 할 김나지움을 통해 음악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고 이후 여러 도시를 거치며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는 가운데 바흐 가문과도 인연을 맺게 되는데 그의 오르가니스트로서의 역량과 작풍은 우리가 잘 아는 바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그는 오르간이라는 악기와 떼어 놓을 수 없으며 당시 독일을 대표하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많은 관련 작품을 남긴다. 이 시기에 활동했던 또 한 명의 위대한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라면 북스테후데로 그가 북독일을 대표한다면 파헬벨은 남부 독일을 대표한다. 이후 고향 뉘른베르크로 돌아온 파헬벨은 주목할 만한 여럿의 실내악곡을 남기고 1706년 52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이렇듯 독일 오르간 음악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며 당대를 풍미했던 파헬벨, 하지만 남긴 업적에 비해 너무도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1919년 구스타프 베크만이 최초로 출판한 카논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널리 드러났으니 묻혀 기다린 200여 년의 시간이 안타깝다.

◇화합 = 그렇다면 제목처럼 여겨지는 카논은 대체 무엇일까?

먼저 원래 파헬벨 카논의 온전한 작품명을 알아보자면 '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카논과 지그 라장조' (Canon and Gigue in D-Major for three violin And Basso Continuo)인데 전반부의 카논을 따로 떼어 놓은 것으로 따로 독립적으로 연주, 혹은 편곡 연주되는 경우가 많다. 카논의 어원은 그리스어 '규칙적'에서 온 것으로 사전적 의미로는 '한 성부가 주제를 제시하면 다른 성부가 모방하며 화성을 진행하는 대위적 서양 고전음악 악곡의 형식'이다. 바로크 시대 유행하던 이러한 모방기법 카논은 성부 수, 선행 후행, 그리고 음정의 간격에 따라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좀 더 간단하고도 쉽게 설명하자면 여러 성부가 시차를 두고 진입, 같거나 약간의 변형이 가미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으로 돌림노래가 여기에 속한다. 이는 대위법의 가장 기초적인 양식으로 마치 연습 삼아 작곡되는 경우도 많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파헬벨의 카논이다. 곡은 첼로(혹은 쳄발로 등 통주저음)가 들려주는 주제 선율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변하지 않고 총 28번이나 반복된다고 하여 고집 저음(오스티나토)이라고도 하며 이후 세 대의 바이올린이 순서대로 이를 쫓으며 파도처럼 밀려왔다 감동이라는 선물을 남긴 채 아련히 사라져 간다. 하니 이쯤이면 감독이 왜 이 곡을 첫 연습장면에 배치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 화합이 음악의 본질이라면 그중에서도 카논은 주고받음이 주는 미학에 가장 가깝게 닿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 영화 <크레센도> 한 장면. /갈무리
▲ 영화 <크레센도> 한 장면. /갈무리

◇사랑 = 영화 <크레센도>는 음악가 '다니엘 바렌보임'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음악을 통해 이뤄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42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다니엘,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워진 이스라엘로 이주,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음악계의 아이돌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국내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혀버렸다. 바로 그의 아내이자 명 첼리스트였던 '재클린 뒤 프레' (Jacqueline Mary Du Pre·1945~1987)와의 사연 때문이다. 젊은 나이 첫눈에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 다니엘과 재클린, 그렇게 그들이 사랑을 키워가던 중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때 재클린은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떠나는 사랑하는 이를 단호히 따라 나선다. 함께 포화 속에서 위문 공연을 하였고 이후 결혼한 둘은 세계 유명 음악가들과 팬들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들의 행복했던 순간은 짧았다.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불치의 병을 안은 재클린이 외로움 가운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다니엘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와 재혼하며 세기의 사랑은 그렇게 안타까운 막을 내린다. 그래서 보수적 성향의 애호가들로부터 이기적이며 불행한 아내를 돌보지 않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운 망나니로 비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쩌면 이는 젊은 나이 요절한 천재 첼리스트를 향한 애틋함과 연결되어 더욱 그 괘씸함이 증폭되었다 할 수 있겠다.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재클린의 눈물'이 편곡자의 의도를 넘어 작곡가인 오펜바흐가 그녀를 위해 만든 곡이라 믿는 이들조차 많을 정도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그녀는 전설로 남았다.

◇평화 공존 =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사적인 일화를 뒤로하고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관련 그의 행보는 분명 놀라우며 칭찬할 만하다.

다니엘은 두 국가 간 인종과 종교를 넘어 평화공존을 주장하며 이스라엘의 탄압 정책을 비판한다. 이전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을 위해 공연을 했던 사실에 비추어 놀라운 변화인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평화를 위한 시위, 팔레스타인 정착촌 건설 반대 시위를 주도하였을 뿐 아니라 배신자라는 질타를 무릅쓰고 이스라엘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행보는 그의 본령이라 할 음악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데 종교와 언어, 정치적 신념을 넘어 이스라엘,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리고 국적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이다. 서동시집이란 독일의 시인 괴테가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즈의 시에 감명을 받아 집필한 것으로 동서양의 양식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하니 화합을 목표로 하는 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절묘하다. 그렇게 1999년 창단한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하고 있으며 2005년 마침내 팔레스타인의 임시 수도 라말라에서 역사적인 연주회를 갖는다. 여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2009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크레센도>와 함께 감상해 보아도 좋겠다.

▲ <크레센도>  한 장면. /갈무리
▲ <크레센도> 한 장면. /갈무리

◇장벽 = 영화 <크레센도>를 보며 화합과 평화를 가로막는 여러 장벽을 떠올려 본다. 인종적, 정치적, 사상적, 그리고 종교적 장벽들. 하지만 문득 이런 것들보다 더 높이 솟아 있는 듯 언어적 장벽이 무섭다. 영화의 초반, 간단한 소통마저도 원활하지 않아 결국 라일라는 자신의 가방을 열어 보여야만 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안타까운 장면, 도피행각을 추적해 온 이들의 적의 없는 경고에도 사랑이 당연한 두 젊은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두려움에 떨며 비극을 향해 달렸다. 말과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고 오히려 오해만을 증폭시킨다면 과연 무엇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까? 그 답을 이미 알기에 인류는 우주 미지의 존재를 향해서 이것을 띄워 보내는 것이다.

"음악이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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