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 준설토 매립 후 악몽 시작
전에 없던 모기까지 득실득실
매일 사체 쓸어 담는 건 일상
야간 조업은 꿈 못 꾼 지 오래

둑둑둑둑.

방충망에 붙은 깔따구가 떨어지는 소리, 김정순(83) 씨는 '둑둑둑둑'이라고 표현했다.

그 정도로 클까,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보니 김 할머니 옆에 켜진 '홈매트'가 눈에 들어온다. 볕 좋은 가을날과 동떨어진 풍경, '둑둑둑둑'이 스친다.

할머니가 바지 밑단을 살짝 올려 정강이를 보여준다. 빨간 반점 서너 개. 모기 물린 자국이란다.

"내 고향, 섬일 때가 좋았네요."

정강이를 긁으려다 이내 바지 밑단을 다시 내린 할머니 뒤편으로 어촌계에서 나눠줬다는 한 달 치 '에프킬라' 두 통이 보인다. 저녁 불빛을 보고 달려든 깔따구와 모기가 에프킬라 맛을 보고 둑둑둑둑 떨어지고 나서 매일 아침 빗자루로 쓸어 담는 게 일상이다. 벌써 10년쯤 됐다.

섬이었던 창원시 진해구 수도마을은 이제 섬이 아니다. 풍요로운 어촌은 1997년 해양수산부와 민간사업자가 부산신항만 공사를 하고 2003년 웅동 투기장에 준설토(바닥에서 퍼낸 흙)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육지와 가까운 섬, 진해에서 잘살기로 유명했던 마을은 생기를 잃었다. 매립이 본격화하며 삶 터전인 바다를 내줬고 가난해졌다.

불청객도 왔다. 작은 날벌레, 4급수 이하 더러운 물에서 사는 환경오염 지표종. 늦은 봄에서 가을까지, 해가 질 무렵 거대한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해충. 깔따구였다.

2005~2007년 수도마을은 깔따구 창궐로 몸살을 앓았다. 주민들은 준설토에 든 영양물질 때문에 깔따구가 대량으로 발생했다고 봤다. 정부는 곤충 성장억제제 100t가량을 매립지에 뿌렸다. 2007년 중앙환경분쟁조정위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유해곤충 피해는 건설주체가 직접 배상해야 한다'며 17억 6396만 원 배상 결정도 내렸다.

약효가 다해서일까, 2011년 깔따구는 수도마을을 다시 덮쳤다. 이후 매년 깔따구는 수도마을을 괴롭혔다. 올해도 역시나다. 전에 없던 모기떼까지 합세했다.

▲ 창원시 진해구 수도마을은 1997년 해양수산부와 민간사업자가 부산신항만 공사를 하고 2003년 웅동 투기장에 준설토(바닥에서 퍼낸 흙)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깔따구가 창궐했다. 사진은 이달 마을 한 가게 벽면에 득실거리는 깔따구.  /주민
▲ 창원시 진해구 수도마을은 1997년 해양수산부와 민간사업자가 부산신항만 공사를 하고 2003년 웅동 투기장에 준설토(바닥에서 퍼낸 흙)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깔따구가 창궐했다. 사진은 이달 마을 한 가게 벽면에 득실거리는 깔따구. /주민

이상철(64) 씨는 집 담벼락이 하얗게 변했다고 했다. 깔따구떼를 막고자 벽에 '락스'를 뿌린 탓이다. 그가 이달 중순 찍었다며 보여준 사진에는 그간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깔따구가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내 집인데도 내 마음대로 문도 못 열어요. 이 바다에서 50년 넘게 일했는데 깔따구 때문에 밤 조업은 어려워요. 바다가 메워지면서 원래 조업하던 곳은 사라졌고 다른 곳으로 가려니 항로·항계가 겹치고. 겨우 남은 자리는 조류가 세서 물이 뒤집히고. 구정물이 계속 올라와서 고기도 못 살아요. 깔따구까지 기승이니 최근 3년 동안 제대로 일도 못했어요."

'한창때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창틀, 물웅덩이, 거미줄 등에 흔적은 여전하나 깔따구를 굴착기로 퍼냈던 과거보다는 낫다. 보건소, 부산항건설사무소 등이 합동방역을 하고 마을 앞 매립지 복토도 많이 이뤄졌다.

그렇다고 근심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주민은 없다. 생계대책위원회는 새 걱정거리를 안았다고 했다.

"방역약품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걱정돼요. 머리가 아프다는 주민 이야기가 들리고 어릴 적 마을에서 볼 수 없었던 벌레를 보게 된 건 그저 우연일까요. 피조개·새조개를 키우고 낙지, 장어, 문어, 갈치를 줬던 그 바다가 이제 없네요."

윤영모(64) 수도어촌계장은 몇 해 전 겪은 수난을 꺼냈다. 매립지 내 골프장 조성 과정에서 15년 넘게 주민이 사용해오던 진입로(1.2㎞)가 폐쇄되고 우회도로(2.45㎞)가 개설된 일, 어업 피해 보상 차원에서 만들어졌으나 비법정도로(제방로)여서 폐쇄 때 주민 합의가 우선하지 않은 일, 폐쇄를 막다 업무방해 혐의로 21명이 입건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일이다.

"마을은 길을 잃었죠. 대신 깔따구가 찾아왔고 골프장 야간 불빛이 생겼고요. 생태계 교란, 농작물 피해 등 피해는 계속되고 있어요. 속에 쌓인 응어리, 깔따구는 언제쯤 사라질까요."

이달 창원시의회는 '웅동지구 복합관광레저단지 주변 마을 깔따구 피해 해결 촉구 건의안'을 채택해 경남도와 창원시, 해수부 장관,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에게 전달했다.

시의회는 해수부가 90억 원 이상 예산을 쏟아부어 해충억제제를 살포했지만 깔따구 피해가 반복하고 있는 점, 633만㎡ 습지에 복토 작업을 해 해충 근원지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작도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민 의견을 반영해 △매립지역 습지대 복토 작업 추진 △복토 전까지 충분한 배수로 확보·잡초 제거 △깔따구 예방대책협의체 구성 △피해 주민 대책·깔따구 번식 방역대책 강구 △부산신항만 준설 작업 때 시의적절한 방역대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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