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에어컨이 고장 나 창틈에 물이 찼다. 빨간 실지렁이들이 꿈틀댔다. 이 미물의 성충이 깔따구다. 더러운 물에만 살아서 수생태계 오염 지표생물이다.

페이스북에도 깔따구가 기승이다. 언론이 사건·사고 기사를 공유할 때 기만적·가학적 섬네일을 쓰는 것을 보면 빨강 꿈틀이를 조우하는 심정이다. 뉴미디어 환경이 오염됐음을 실감한다. 섬네일이 참 정직한 지표인 셈이다. 이제 기만적 깔따구와 가학적 깔따구를 만나볼 차례다.

중앙일보를 보자. 20일 '남친 성폭행범 몰아간 여중생' 기사를 공유했다. 섬네일을 보면 노트를 펼친 한 여성 얼굴이 흐림 처리돼 있다. 게시자는 본문에 '#중학생'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속 여성은 중학생인가? 누리집 기사 본문에는 정작 이 사진이 없다. 굳이 자료사진에 모자이크까지 하며 써야 할까? '현장의 진실을 중앙에 둔다(슬로건)'는 중앙일보는 이러한 앞뒤 다른 호객 전략을 애용하는 편이다.

머니투데이는 16일 '친딸 200회 성폭행에 낙태까지…' 기사를 공유했다. 눈물짓는 여성과 그의 양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그린 삽화가 섬네일이다. 최근 중앙일보도 성추행 피해 여성이 새빨간 손아귀에 둘러싸인 듯한 삽화를 썼다. 피해자를 정형화하거나 가해자를 악마같이 묘사하는 삽화는 보도 객관성을 떨어뜨리고 범죄 현실 인식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언론 처지에서는 이런 방식이 관심 끌기에 효과적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사고 기사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사회 공기로서 언론은 시민이 범죄 현실을 인식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범죄 환경을 감시하는 임무도 있다. 저널리즘은 신문 지면으로 실현할 거고 SNS에서는 클릭 수에 천착하겠다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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