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 제·개정 시 성별영향평가, 상임위별 여성의원 배치 의무화
의원연구단체 제주 성평등 포럼... 정책 발굴·토론·교육 활동 활발
집행부도 양성평등 조례 토대로 정책책임관 둬 연구사업 활성화

제주도의 광역의원 비율은 전국 최고인 광주시보다는 낮지만, 전국 최초로 광역의회 양성평등 조례를 제정하고 양성평등 정책관 제도를 시행하는 등 체계 면에서 앞서가고 있다. 과거 회귀를 막고 미래로 가는 기틀을 놓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도의 여성정치는 눈여겨볼 부분이 많다.

◇조례로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양성평등 = 국가법령 양성평등기본법이 있지만 현행 지방의회 의원의 조례 제·개정 분야는 '성별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다. 지방의회 각 위원회 정책 결정 과정이나 상임위원회·특별위원회 구성에서도 양성평등 인식이 미흡하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는 이런 문제를 반영해 2019년 7월 10일 전국 최초로 '제주도의회 양성평등 기본조례'를 제정했다. 핵심 내용은 조례 제·개정 때 성별영향평가, 도의회 공직자 성인지 교육, 위원회 특정 성별 과다 대표 방지 등이다.

이 조례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도의회 상임위 여성 의원 배정에서 나타났다. 제주도의회 의원 중 여성 의원은 모두 8명(지역구 3명, 비례대표 5명)이다. 전반기 도의회 상임위 배정에서 지역구 우선 원칙에 따라 비례대표 여성 의원들이 특정 상임위로 밀려난 바 있다.

▲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단체인 제주성평등포럼 주최 '성평등한 제주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단체인 제주성평등포럼 주최 '성평등한 제주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경미 도의원은 "각 상임위에 여성 의원을 최소 한 명을 배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올해 후반기에 모든 상임위원에 여성이 다 들어갔다"며 "전반기에 보건복지안전위원회 6명 중 5명이 여성이었는데 조례 제정 후 바꿔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조례가 제정되면서 지역구 우선순위를 이유로 여성 의원을 특정 상임위에 집중시키는 병폐가 사라지게 된 셈이다. 제주도의회 후반기 상임위 여성 의원 현황을 살펴보면 행정자치위 1명(강민숙), 보건복지위 2명(고은실·이승아), 환경도시위 1명(강성의), 문화관광체육위 1명(오영희), 농수축경제위 2명(고태순·김경미), 교육위 1명(한영진)이다. 특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14명 중 여성은 5명이다. 조례에 젠더 이데올로기를 명문화해 향후 도의회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상임위 양성평등 원칙을 유지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 큰 성과로 평가된다. 상임위 배정만이 아니라 모든 조례를 고치고 새로 만들 때 양성평등이 반영됐는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런 배경에는 제주도의회가 2018년부터 운영해온 의원 연구단체 '제주성평등포럼'이 있다. 강성의·고태순·김경미 등 여성 의원 3명과 김창식·이상봉·한영진·현길호 등 남성 의원 4명이 활동하고 있다. 성비가 비슷한 데다 남성 참여도가 높아 도의회 내부에 자연스럽게 양성평등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성평등포럼은 2019년 2월 페미니즘 관련 독서토론 등으로 시작해 연구용역(제주 여성의 좋은 일자리 기준 설정), 정책토론회(성평등한 제주 실현)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물론 관련 조례 제정에도 적극적이다.

성평등포럼 대표인 김경미 의원은 "처음에는 의원들끼리 책자를 나누고 공부를 했다. 이후 예산을 들여 양성평등 연구용역을 하고 간담회, 공청회, 토론회, 성인지 교육 등을 하면서 도의회 차원에서 양성평등 인식을 확산하는 데 주력했다. 남성 의원들의 참여도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정책을 바꾸는 힘은 바로 연구 성과물 = 제주도의회 조례보다 먼저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양성평등 조례도 눈에 띈다. 제주도는 2018년부터 전국 최초로 행정부지사 직속 양성평등 정책관을 둬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양성평등정책책임관은 기획조정실장이 담당하며 이에 준하는 직위의 공무원을 양성평등정책책임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한편 그 아래 전담부서 3개 팀(성평등기획팀·성인지정책팀·여성친화도시팀)을 운영하고 있다. 또 '효율적인 성인지 정책 추진 및 확산을 위하여 각 부서의 장을 양성평등담당관으로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제주도 모든 부서의 성인지 정책 확산을 위한 정책으로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및 결산, 성별분리통계 관리, 부서 내 성인지 우수사례 발굴 등도 의무사항으로 명문화된 상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있다. 연구원은 2015년 시작한 '제주처럼(2015∼2018)'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제주도 양성평등정책 전략 연구'에서 양성평등 정책관 제도를 제안했다. 이는 현재 '더(More) 제주처럼(2019∼2022년)' 프로젝트를 통해 강화되고 있다. '더 제주처럼' 프로젝트는 △양성평등 정책 실행력 강화 △여성 대표성 강화 △양성평등 문화확산 △여성 친화환경 조성 △여성 안전과 건강증진 △돌봄의 사회적 책임 강화 △여성일자리 활성화 등 7개 정책영역별로 추진 중이다. 각종 위원회 여성위원 참여율, 5급 이상 공무원 여성관리직 비율, 공기업·출자출연기관 여성임원·관리직 비율, 주민자치위 여성참여율 등을 내년에 대폭 높이는 구체적인 추진계획도 세웠다. 제주양성평등교육센터 규모를 지난해 1팀 3명에서 올해 2팀 7명, 내년에 2팀 8명으로 늘리고, 부서별 성인지 정책을 읍면동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고지영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정책실장은 "2014년 개원해 100여 건의 연구보고서를 냈는데 그중 40%가 양성평등 연구였다"며 "이런 연구들이 양성평등 정책관이나 양성평등조례 등 실질적인 제주도의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와 함께 중요시하는 것은 교육사업이다. 올해만 해도 경찰청, 소방서 등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800여 명을 교육했다. 지난 7월부터 양성평등 전문강사 양성도 본격적으로 시작돼 수십 명의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의 연구와 사업이 제주도 양성평등 조례, 양성평등 정책관, 제주도의회 양성평등 조례 등 굵직한 현안 정책으로 이어지며 실질적인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성주류화 정책, 쉽게 말해 성평등 이슈를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 만드는 것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또 실태조사와 기본계획 등을 수립해 여성친화도시로 재지정 받고, 유네스코 인증 아동친화도시를 만드는 사업도 하고 있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성인지 통계를 온라인 사이트에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7년간 해온 연구·용역의 원자료를 공개해 다른 시도가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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