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질 좋은 플랫폼 기업 서비스가
누군가의 피해를 담보로 한 것이라면?

배우 이병헌과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출연한 2015년 개봉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인류 저항군이 세상을 장악한 '그 어떤 존재'를 파괴하고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파괴 대상인 '그 어떤 존재'는 인간도 기계도 아닌 초월적 존재다. 2021년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존재'다. 세상을 지배하는 '슈퍼 AI'라고 할까.

어쨌든 '그 어떤 존재'는 데이터와 통신을 이용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핵무기가 저절로 발사되도록 해 인류 문명을 궤멸한 뒤 세상을 제맘대로 통제한다. 살아남은 인류는 '그 어떤 존재'의 감시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구글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불공정 거래행위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2074억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내린 조치다. 구글은 시장을 장악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삼성전자 등에 자사 모바일 기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탑재하도록 강요했다. 구글은 이런 방식으로 모바일 기기를 생산하는 전 세계 주요 업체들을 옭아맸다.

구글뿐만 아니다. 카카오와 네이버·배달의민족으로 대표되는 국내 플랫폼 기업 폐해도 적지 않다. 카카오는 공정위가 구글 과징금 부과를 발표한 날 소상공인 지원 상생안을 발표했다. 공정위와 국회의 압박에 떠밀린 카카오가 마지못해 상생안을 내놓은 것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 메신저로 사람을 끌어모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과거 대기업처럼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택시 호출 등 일부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자 마음대로 요금을 올렸다. 또 카카오는 단순 호출 중계를 넘어 자신들이 직접 운영하는 택시업체에 호출을 몰아줌으로써 다른 택시기사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일방적인 요금 인상과 호출 몰아주기가 부당한 줄 알지만 소비자와 택시기사는 어쩔 방법이 없다.

결국 공정위와 정치권이 칼을 빼든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플랫폼 기업 규제에 대해 소비자 관점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값싸게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가 누군가의 피해를 담보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독점이 더 강화되었을 때 그 기업이 소비자와 공급자를 상대로 어떤 짓을 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상상을 해보자. 구글과 애플, 아마존·알리바바·카카오·네이버·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연합해서 각자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데이터와 통신을 장악하고, 나중에 경영진이 하나로 합친다면 지구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 등장하는 그 어떤 존재 '스카이넷'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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