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교육청 교직원들 이야기
편지 형식으로 자기 고백 담아
가족·제자 등 향한 애정 '뭉클'
메마른 마음 적실 사연 한가득
코로나19로 멀어진 관계 떠올라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배우자, 자식, 부모, 제자 혹은 첫사랑이기도 하겠죠. 지난달 경남도교육청 가족들이 자기 고백을 담은 <지금 당신에게 편지합니다>라는 책이 발간됐습니다.

오영범 장학사는 머리말에 "어떻게 하면 잊혀 가는 그리운 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힘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편지'라는 단어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책에 소개된 편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함께 읽으며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하지만 그리운 이들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 <지금 당신에게 편지합니다> 경남도교육청 지음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응원해!(27쪽)

김해영운고등학교 임연길 교사가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꿈을 포기했던 아내에게 쓴 편지입니다. 두 분은 최근 20여 년 만에 부부 교사가 됐다고 하네요. 마지막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대학 졸업 후 25년 동안 아내로, 엄마로, 가정주부로 살아오다 이제 한 달 남짓 자신의 이름을 가진 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당신.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덕분에 아이들이 잘 컸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안하다 따위의 말로 위로가 되거나 당신의 꿈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아.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야. 늦은 나이에 용감히 도전해 준 당신이 고마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훌륭히 해내고 있는 당신이 자랑스러워. 여전히 주부로서 해야 할 역할이 클 테지만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응원해. 영원히 사랑해."

◇너무나 소중한 선물(53쪽)

다음 편지는 가슴이 찡합니다. 사천동성초등학교 서미주 특수교육실무원이 미처 가슴에 다 묻지 못한 첫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고이고이 하늘에 닿기를 바라봅니다.

"우주라는 망망대해 속에서는, 우리가 사는 행성은 어쩌면 떠도는 먼지 알갱이보다 작은 곳일지도 모르는데(중략) 우리 삶의 부대낌 속에서 엄마는 한낱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진 존재일 뿐일지라도, 그런 삶을 지양하고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려무나. 엄마가 마지막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너의 귀에 대고 속삭일게. 엄마는 널 만난 것을 잊지 못할 선물로 여기며 소중히 간직할 거야. 진실로 내 딸로 와 주어서 고마워. 너를 사랑해, 영원히……."

◇왕따 당해봐서 참 다행이야(231쪽)

세종고등학교 성완 교사는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혼자 끙끙거리는 친구가 있는지 아이들 표정을 수시로 살핀다고 하네요. 그 시절 외로웠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어리고 또 세상이 두렵고, 상대를 이해하기에 서툴기만 해서 무서움에 떨기만 했던 그 꺼병이가, 이제는 솜털을 벗고 포근하고 너그러운 까투리가 되어서 풀숲에 숨어서 달달 떨고만 있는, 어릴 적 나와 같은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중략) 어떤 아이는 목소리가 정말 멋지고, 어떤 아이는 얼굴에 있는 주근깨가 매력적이야. 똑같은 꽃이라고는 하나 없이 다 다른 꽃들이 피어 방글방글 어여쁘기 짝이 없어. 정말 신기한 일이지. 내가 학생일 땐 학교가 지옥 같았던 때가 많았는데, 나의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 같아. 이제 와 생각해보니, 왕따 당해봐서 참 다행이야. 오늘도 수고했어."

◇당신을 영원히 잊을 겁니다(262쪽)

사등유치원 이상은 교사 편지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독서실 짝남에게 쓴 글인데요, 인생의 시계를 되돌려 보면 비슷한 흑역사 하나쯤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날 수도 있겠습니다.

"이 고백이 실패하면 독서실을 바로 그만둘 생각이었기 때문에 마음 자체는 홀가분했어요. 그렇게 여행용 가방에 조그마한 편지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날도 잠을 설쳤어요.(중략) 그런데 없더라고요.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책도, 방석도, 잠깐 눈 붙일 때 쓰는 인형도, 매일 먹던 졸음 깨는 껌도 없더라고요.(중략) 눈에 물이 차오르더라고요. 가방만 빠르게 챙겨 밖으로 나오자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어요. 가방에서 꺼낸 편지는 잘게 찢어서 허공으로 날렸구요. 진짜 끝이구나란 생각에 그날은 자꾸 눈에서 물이 새어 나와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동굴 같은 삶도 빛나는 이유(275쪽)

서창중학교 이지연 교사는 육아휴직 기간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아이를 돌보며 제자들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저마다 이야기로 소중하게 자랐을 아이들을 응원하는 편지입니다.

"막연하고 아득했던 시간들을 지나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한 교실에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하나하나의 눈동자가 얼마나 빛나고 예쁜지 새삼 알게 되었다.(중략) 얼마나 치열하게 자라났고 강하게 이겨냈으며 부모에게 때로는 절망이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의 파도로 넘실거리며 여기까지 왔는지, 가슴 벅차게 아이들을 이해했어야 했다.(중략)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은 내가 겪지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할 일들이 많겠지만 아이들이 매일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일상이 선물 같은 날들임을 알고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충만하게, 살아가면서 다가올 어려움도 담담히 그리고 당당히 이겨내길 바란다."

◇구름 위에 새긴 편지(283쪽)

문선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성진희 교사가 20년 전 제자 영애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서툴렀던 자신을 비겁하다 말하지만 지금까지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선생님에게 영애도 사랑한다고 답장을 할 것만 같네요.

"비록 영애에게 직접 전하지 못하는 말들을 이렇게 편지에 적어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너에게 보내게 되었지만 구름 위로 새겨 쓴 이 글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려 네가 있는 곳까지 전해져 영애가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구나. 슬픔도 아픔도 없는 그곳에서 선생님 기억에 남아 있는 증명사진 속의 영애가 다시금 예쁜 미소를 꽃피우길 간절히 바란단다.(중략) 미안해……. 영애야! 영애의 예쁜 미소를 선생님은 잊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 선생님에게 늘 뒤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새로운 봄이 와도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게. 그리고 우리 영애, 그때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영애를 많이 많이 사랑해……."

◇당신과 함께하는 오늘(203쪽)

'잘 지내고 계신가요?' 평소 아버지에게 안부전화 한 번 걸려면 몇 번을 망설이는 무뚝뚝한 큰딸 수월중학교 배미주 교사가 한평생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아버지께 쑥스러운 고백을 전합니다.

"우리가 함께할 날이 얼마나 있을까요? 당신이 암 판정을 받았다는 동생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막막함을 느꼈던 것이 벌써 5년 전 일이네요. 그땐 정말 자주 전화를 드리고, 자주 찾아뵙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또 그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중략) 아버지, 한 생을 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저를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럴 거라며 전화도 없는 무뚝뚝한 딸을 한없이 기다려 주신 아버지. 이제는 당신이 기다리시지 않도록 당신의 남은 날들을 당신과 함께하는 오늘들로 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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