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석 중 여성 8명 진출해 34.8%
2014년 전략 선거구 결정 효과
성인지예산제 실효성 향상
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등
성평등·청소년 조례 증가

전국 광역의회 가운데 여성 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광주시의회다. 총 23석 중 8명이 진출해 34.8%(지역구 30%)의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전국 평균 19.4%(지역구 13.3%)를 웃도는 것은 물론 인접한 전북도의회 39석 중 5석(12.8%·지역구 5.7%), 전남도의회 58석 중 8석(12.3%·지역구 5.2%)과 비교하면 매우 큰 격차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여성 의원이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지난달 23일 광주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박미정(광주시당 여성위원장) 시의원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처음엔 여성에게 벽이 높았다 = 광주시의회가 처음부터 여성 비율이 높았던 건 아니었다. 지역구 시의원은 1995년 23석 중 2석(8.7%)→1998년 14석 중 1석(7.1%)→2002년 16석 중 2석(12.5%)→2006년 16석 중 1석(6.2%)→2010년 19석 중 2석(10.5%)→2014년 19석 중 4석(21%)→2018년 20석 중 6석(30%)으로 지방자치제 20여 년 만에 1∼2석이었던 지역구 여성 의원은 4∼6석으로 늘어났다. 2010년까지는 전북·전남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런 기류가 바뀐 것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2014년 4월 28일. 이날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는 19개 광주시의원 선거구 중 4곳(21%)을 여성 전략 선거구로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여성 전략 선거구란 남성이 출마하지 못하고 여성 간 경선으로 후보자를 정하는 이른바 '여성 특구'다. 남성 예비후보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당이 냉정하게 대응해 관철시켰다.

4년 뒤인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은 3월 말 일찌감치 기자회견을 열었다. 20개 시의원 선거구 중 4곳을 여성 전략 선거구로 한다는 발표였다. 이어 4월 13일 박미정(동구2)·김나윤(북구6) 후보가 단수 공천받았다. 이들은 정순애(서구2)·임미란(남구3)·신수정(북구3)·김광란(광산구4) 등 여성 전략 선거구 후보와 함께 본선에 올라 모두 시의회로 진출했다. 이로써 광주시의회는 지역구 시의원 20명 중 여성 6명이 당선돼 정치권에선 말로만 존재했던 '지역구 여성 광역의원 비율 30%'를 보기 좋게 달성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박미정 시의원은 "민주당 광주시당에서 2014년과 2018년 '이 지역구는 여성만 지원을 받고 공천하겠다'고 했다. 여성이 시의회로 진출할 수 있게 배려해준 것이다. 여성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면도 있다. 그러나 광주시의회 여성 비율이 높아진 것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노력과 배려, 그리고 전체 시민의 시민성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의회는 전국 광역의회 가운데 여성 의원 비율이 가장 높다. 총 23석 가운데 8명이 진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광란 김나윤 박미정 신수정 최미정 정순애 장연주 임미란 의원. /광주시의회
▲ 광주시의회는 전국 광역의회 가운데 여성 의원 비율이 가장 높다. 총 23석 가운데 8명이 진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광란·김나윤·박미정·신수정·최미정·정순애·장연주·임미란 의원. /광주시의회

◇성인지예산부터 생태정치까지 = 광주시의회에 여성 의원이 많아지면서 양성 평등은 물론 아동청소년·생태·기후위기·도시환경·복지 문제 등에 남성보다 생활 측면에서 더 세심한 접근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광주광역시 성인지예산제의 실효성 향상 조례'를 들 수 있다.

전국 최초 성인지 관련 조례로 2017년 11월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진숙 전 민주당 시의원이 대표발의한 여성 시각의 조례다. 2011년 지방재정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성인지예산제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예산 수혜를 보도록 예산을 편성·집행했는지를 평가해 다음 연도에 반영하는 제도다. 조례는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성별영향평가 사업이나 성평등 문제 연관 사업 등을 중점 관리 사업으로 선정·관리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양성평등이 직접적인 사업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 조례가 제정되자 광주시 5개 자치구에서도 같은 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여성단체나 시민단체 참여도 활성화됐다. 한국성인지네트워크나 광주여성민우회 등이 성인지예산을 모니터링하고 성주류화 정책 활성화를 위해 각종 제언을 내놓으면서 집행부-시의회-시민단체의 협력·견제가 가능해졌다. 농기계 안전교육, 재창업자 역량강화 사업, 농촌테마공원조성사업, 공중화장실 신축·개보수 사업 등 자칫 남성 위주의 예산 집행이 될 수 있는 사업에 여성의 시각과 요구를 담아내는지 평가가 이뤄졌다.

서울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제정된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조례'도 여성 의원들 주도로 이뤄졌다. 광주시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조례안은 정의당 장연주 의원이, 광주시교육청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 조례안은 민주당 박미정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애초 올해 기준 지원 생리용품 지원 대상은 6만 906명이며 1인당 13만 원씩 약 70억 원이 드는데, 집행부와 협의를 거쳐 우선 단계적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박 의원은 "제 관점에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중·고등학생들 입장에서 어른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여성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남성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생명·건강권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여성을 존중·배려하는 것은 공감과 이해의 측면이다. 다수가 남성 정치인들이지만 성비 비교를 넘어서서 여성의 정치 참여는 지향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여성 자치단체장 나올 때 안됐나 = 광주시에서도 과제는 아직 단 한 명의 광역자치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5년부터 7번이나 지방선거를 치렀지만, 광주시장이나 구청장에 당선된 여성은 없다.

광주시의 의사결정 분야 성평등 지수는 46.3으로 전국 평균보다 9.3포인트(p) 높다. 세부지표별로 '광역 및 기초의원 비율 성비' 지표는 49.3으로 전국 평균보다 16.0p 높고 '5급 이상 공무원 비율 성비' 지표는 41.5로 전국 평균보다 11.2p 높다. '관리자 비율 성비' 지표는 31.5로 전국 평균보다 7.3p, '지자체위원회 위원 성비' 지표는 63.0으로 전국 평균보다 2.8p 높다. 타 시도보다 여성 참여 지표가 높은 편인데도 아직까지 기초자치단체장을 1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광주에서도 남성정치가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다. 내년 광주시 지방선거에서 여성 광역의원은 몇 명이나 나올까. 또 재선 광역의원 비율은 어떨까. 광주 최초로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나 기초자치단체장이 탄생할까. 광주시민은 어디까지 나아갈까. 어느 곳보다 활발한 여성정치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와 느끼는 궁금증이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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