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뵐 수가 없었다. 8월 15일, 일요일이었다. 오전에 읍내 마트에서 물건을 사시는 사모님을 우연히 만났더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후에 집으로 왔더니 평소 보이지 않던 7~8대의 승용차가 동네 어귀에 세워져 있었다. 뒤늦게 도착하신 분이 차에서 내려 오 선생님 집 쪽으로 가고 있었다. 자신을 둘째 사위라고 소개했다. 나는 "오 선생님처럼 60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고기잡이하시면서 우포와 함께 사신 분이 많지 않은데 조금 더 사시면서 그동안 살아오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집 앞에 있는 창고로 같이 가자고 했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창고는 벽체도 없이 나무 기둥과 철망으로 얼기설기 엮어 놓았다. 안에는 농기구와 온갖 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른쪽에 커다란 어항이 3개 있었다. 각각 붕어, 잉어, 빠가사리를 넣어둔 곳이다. 조립식 패널 등을 활용해 직접 만드신 것인데 우포에서 고기를 잡으면 이곳에 담아두면서 팔았다고 했다. 어항 주변에는 저울과 산소통이 세워져 있었다. 창고에는 대나무로 직접 만든 가래와 크고 작은 뜰채도 세워져 있었다.

창고에서 나와서 뒤쪽으로 갔다. 60여 평 되는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은 본래 개인 소유 밭이었는데 오 선생님이 연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린 물고기는 이 연못에서 키워서 팔았던 것이다. 이 연못을 어장이라고 불렀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냥 옆에 있는 논에 물 대기 위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사연을 듣고 보니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동네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자그마한 설명판이라도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자그마한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전기장판이 한 장 깔려 있고, 만들다가 남은 그물과 노끈, 각종 도구들이 작은 바구니에 담긴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생전에 오 선생님이 그물 손질을 하던 작업공간이다.

만약 이곳을 현재의 모습대로 보존해 전시관으로 만든다면 보는 사람들이 우포 어부 삶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제자리에 놓여 있는 어구가 보여주는 생동감과 마을재생 활동가가 들려주는 어부들 일상생활이 일반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양한 어구를 현장에서 가져와서 멋진 콘크리트 건물 전시관, 박물관에 따뜻한 온기도 없이 창백하게 전시해놓는 것보다 훨씬 생생하다. 어부 체취가 묻어 있는 이곳이야말로 살아있는 삶의 현장으로 보존할 보물이다. 소목마을 같은 경우에는 마을 전체를 어부마을로 특화해 보전, 재생하면 좋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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