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가상화폐·주식 '허상'좇는 사회
욕심에 눈멀어 삶의 진정한 가치 버릴라

배가 고픈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떠돌아다니며 그때그때 먹고살았다.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그 베짱이처럼.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싶더니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고는 마을의 한 집에 무작정 들어갔다. "이보시오. 지금 배가 무척 고픈데 밥을 좀 주시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밥을 얻어먹으려면, 예의를 갖추어서 말하시오." 집주인은 황당했다. "내가 먹는 밥에 대한 사례를 넉넉하게 하겠다는 말이오." 그는 더욱 의기양양했다."무엇으로 사례를 한다는 말이오? 혹시 양이나 말을 가졌소?" 주인은 가축 한 마리를 얻을지 모른다는 욕심이 들었다. "저기 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보이시오? 저 바위가 바로 내 바위요. 밥을 주면, 내 저 바위를 당신께 드리리다. 그러면 저 바위의 주인은 당신이 되는 것이오."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집주인은 커다란 바위가 자기 것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며칠 후 집주인은 말 한 마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웃에게 가서 커다란 바위가 자기 것이니 말과 바꾸자고 했다. 이웃은 기뻐하며, 말과 바위를 바꾸었다. 이웃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바위가 꽤 귀한 것이니, 이득이 될 것이라며 바위와 소 두 마리를 바꾸었다. 바위 가치는 점점 커졌다. 여전히 산 중턱에 그대로 있는 바위인데도 말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작은 돌멩이들을 모았다. 그러곤 돌멩이를 '구슬'이라고 불렀다. 그는 구슬이 꽤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니며 소문을 내는 데 힘썼다. 배추 한 포기는 구슬 하나와 바꿀 수 있고, 닭 한 마리는 구슬 세 개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돌멩이를 가진 사람들은 구슬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자랑을 했다. 돌멩이를 몇 개나 가졌는지가 그 사람 능력이 되었다. 돌멩이가 더 많아지자 일일이 셀 수 없어 숫자를 붙였다. 돌멩이를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지자,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장소에 돌멩이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몇 개가 자기 것인지 숫자만 매겼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숫자로만 거래를 했다. 어느 장소에 가면 내 돌멩이가 몇 개 있으니, 당신이 가지면 된다고 하면서 말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내가 가진 '별'이 있는데, 그 수가 적으니 아주 귀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희귀한 것이라며, 보이지도 않는 그 '별'에 너도나도 돌멩이 숫자를 내밀고는 바꾸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별'은 엄청난 숫자의 거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거래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싹쓸바람이 불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잡으려 대열에 합류한다. 영혼까지 끌어서 투자한다는 '영끌'부터 '빚투'가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는 일상 언어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싹쓸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왔는가? 신성한 노동과 실물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와 반대로 인간 욕심을 채우는 '보이지 않는 가치'와 '통장의 숫자'가 새로운 가치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물가가 오른다고 난리다. 농산물이 비싸다고 난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화폐, 그 숫자 1이 몇 천만 원을 오가는 세상에, 나를 살찌우고 가족을 살리는 실물은 비싸다고 난리다. 쌀 한 줌을 키우려고 노동과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그 가치는 얼마일까.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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