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상실 92% 후천적인 요인
도내 맹학교·전용복지관은 '0'
"점자 배우기, 다시 눈뜨는 일"

8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국제 문해의 날이다. '문해'는 문자를 읽고 쓰는 행위로, 기본 인권을 누리기 위한 핵심 토대다. 광복 직후 77.8%(미군정 조사)에 달했던 한국 비문해율(문맹률)은 2008년 1.7%(국립국어원 조사)까지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단순한 읽기·쓰기 능력이 아닌 글의 맥락을 파악하는 실질 문해력 부족 문제가 더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점자라는 고유의 문자 체계로 정보를 읽어내는 시각장애인들의 문해율은 여전히 낮다.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창원시마산지회에서 만난 김창수 지회장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 중도 시각장애인들의 점자 교육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남에는 맹학교·시각장애인 전용 복지관 등 이를 위한 교육 여건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점자 교육, 다시 눈뜨는 일 = "시력을 잃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더군요. 갑자기 컴컴한 영화관에 들어간 상태로 평생을 지내야 하는 거죠. 점자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였습니다."

김창수 지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시력을 잃은 중도시각장애인이다. 갑자기 빛을 잃은 김 지회장은 한동안 무력감을 겪었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병원에 갈 때 홀로 한 발짝 걷는 일조차 힘들었다. 사회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할 때였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점자책에 손을 뻗었다. 마산에서 독학으로 점자 기초를 익히고, 대구에 있는 맹학교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점자를 익힌 뒤로는 의료서적을 섭렵했다. 안마사로 일하고자 관련 지식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책 한 장을 읽는데도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한글 점자체계를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손으로 글자를 읽어내는 일이 어려웠다. 김 지회장은 "하루에 7~8시간 동안 점자책을 읽었고, 지금은 비장애인과 속도가 비슷하거나 더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점자로 익힌 지식으로 업을 찾았고, 장애인 인권을 향한 문제의식도 키웠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를 배우는 행위는 다시 세상에 눈을 뜨는 일과 같다"라고 말했다.

▲ 김창수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창원시 마산지회장이 7일 점자 찍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김창수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창원시 마산지회장이 7일 점자 찍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시각장애인 교육시설 경남은 전무 = 김 지회장 사례와 같이 시각장애인 대부분은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다가 갑자기 컴컴한 세계에 빠진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시각장애인(28만 7000여 명)의 92.4%는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는다. 각종 질환(54.4%)과 사고(38%)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시각 문자 체계와 비장애인의 삶에 익숙해진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은 점자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같은 조사에서 점자를 해독할 수 없는 장애인은 전체 86%에 달했다.

김 지회장은 "점자는 원리 이해는 쉽지만, 촉각으로 읽어내는 데는 오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학령기에 시력을 잃은 아이들은 전문적인 특수교사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경남에는 맹학교가 한 곳도 없어 다른 지역에 가야 하는 형편"이라고 꼬집었다.

맹학교는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점자·직업교육을 하는 특수교육기관이다. 2020년 정부 통계를 보면, 현재 국내 10개 시도(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강원·충북·전북·전남)에 13곳의 맹학교가 있다. 경남은 시도별 인구로는 전국 4위(332만 명)이지만, 맹학교와 농학교가 없다.

김 지회장은 성인 중도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지원 공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을 비롯해 강원·전남·충북·세종 등 5개 시도에만 시각장애인 전용복지관이 없다"라며 "전국적으로 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이용자·주요 프로그램 등이 지체·발달장애인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 청각에 민감한 시각장애인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에 도움을 구하는 맹인들을 전용 복지관으로 연계하고, 점자학습·음성 정보화기기 사용법·재활 활동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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