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잡이를 얼마나 하셨습니까?" "오래했지." "대충 50년 정도 됩니까?" "스무 살 때부터 했지." "그럼 60년입니까?" "그렇지."

창녕군 이방면 장재마을에 사셨던 오춘길 선생님과 지난 7월 30일에 나눈 대화다. 오 선생님은 1941년생이니까 올해가 만 80세이다. 1남 7녀 중에서 셋째이고, 3대 독자 외동아들로 태어났으나 가난하게 자랐다. 이방초등학교를 다니긴 했으나 어린 나이에 일찍 생업에 뛰어들어 누구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매일 고기잡이를 하면서 동네에서는 이장을, 지역에서는 경화회 활동을 했다. 7년 전 특발성폐섬유화증으로 진단 받았고, 지난해 10월에 악화해 수술한 이후로 호흡이 힘들었다. 그래서 방에 있는 게 답답해 주로 밖에 나와 계셨다. 8월 초에는 집 앞 주차장 큰 나무 옆에 깔개를 갖고 오셔서 누워 있었다. 나도 매일 퇴근하면 차를 이곳에 세우는데 8월 4일에 또 만났다. 스무 살 때부터 고기를 잡은 오 선생님은 초기에 주로 우포 쪽으로 가서 잡았다. 고기를 잡으면 '다라이'에 담아서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다른 동네나 읍내에 나가서 팔았고, 누이동생들은 말밤을 삶아서 읍내 장날에 팔기도 했다. 초기에는 그물을 이용하지 않고, '미르기'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여러 사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수초 더미를 말며 늪으로 들어가 점점 좁혀가며 물고기 몰이를 한 후 저마다 가래라는 기구로 물고기를 가두어 건져 내기만 하면 되었다. 한 번에 서너 마리씩 손으로 끄집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몹시 힘든 작업이었다. 가래는 집 주위에 대나무가 많아서 필요할 때 잘라서 직접 만들었다.

그 후 나일론 그물이 나오기 전에는 명주실로 만든 그물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3중망을 쓰다가 한 겹으로 된 홑그물을 썼다. 인근의 누에 치는 분들에게서 실을 사 갖고 와서 그물을 고치기도 했다. 조금 사용하면 끊어지고, 뜯어져서 자주 고쳐야 했다. 그런데 1965년쯤부터 훨씬 질긴 나일론 그물이 개발돼 굉장히 편리했다. 주로 삼각망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나일론 그물을 일일이 노끈으로 꿰고, 추를 달아야 물속에서 제대로 그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드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생 하던 일인데 쉽다고 하셔서 그럼 날 잡아서 같이 해보기로 약속했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며칠 동안 주차장에서 뵙지를 못했다. 알고 보니 8월 11일, 숨이 차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불과 이틀 지난 13일,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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