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체 인구 50% 넘었지만 정치영역 진입 벽 여전히 높아
17개 광역자치단체장 남성 독식...국회·광역의원 여성 20% 이하
도내 기초의회 25.7% 평균 이하...주요 상임위원장도 대부분 남성
성평등 정치는 모든 성의 요구와 관심에 부응하는 정치를 말합니다. 나아가 지역, 성별, 연령, 이념, 장애, 성향 등 정치 주체의 다양성 확보로도 해석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 성이 과대 대표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경남을 비롯한 각 시도의 다양한 사업과 업무가 특정 성의 시각으로만 심사·결정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여성정치 현황과 경남의 현재, 광주와 제주의 새로운 움직임과 일상 속 성평등 운동을 살펴보고 성평등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5편에 걸쳐 짚어보려 합니다.
올해 8월 기준 주민등록상 여성 인구는 259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0.13%를 차지한다. 최근 남성 인구(2576만 명)를 앞질렀다. 과반을 기록한 이 숫자는 통계상 나타난 딱딱한 지표일 뿐이다. 실제 삶에서 여성 몫과 지위는 5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성공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다. 여성가족부가 5일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공공기관·민간사업장 여성 관리자는 2010년 15.1%에서 지난해 20.9%로 5%포인트(p)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판사 24.0→31.4%, 검사 20.8→32.0%, 변호사 11.0→27.8%를 기록했다. 여성 삶이 척박한 사회에서 괄목할 만한 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벽'에 갇혀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특히 정치 영역의 벽이 공고하다.
◇자치단체장은 남성 전유물 = 오세훈·박형준·권영진·박남춘·이용섭·허태정·송철호·이춘희·이재명·최문순·이시종·양승조·송하진·김영록·이철우·하병필·구만섭…. 이들의 공통점은? 17개 광역시도 수장이거나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남성이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수장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따지면 '17 대 0'이다.
김미경·김수영·조은희·서은숙·정명희·정미영·박정현·은수미…. 이들의 공통점은? 시장·군수·구청장 등 여성 기초자치단체장이다. 전국 226곳의 기초자치단체 중 고작 8명. 비율을 따지면 '218 대 8'로 96.5%가 남성, 3.5%가 여성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3명, 대전과 경기에서 각각 1명을 배출했다. 경남(18곳)을 비롯해 대구(8곳), 인천(10곳), 광주(5곳), 울산(5곳), 강원(18곳), 충북(11곳), 충남(15곳), 전북(14곳), 전남(22곳), 경북(23곳)에서 여성 기초단체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휘권을 통해 행정력을 발휘하며 정치 경영을 할 수 있는 권력. 이 자리는 여성할당제 등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학연·지연·혈연을 넘어 이익집단과 이전투구를 치러야 하는 남성중심주의적 정치가 강고한 힘을 발휘하며 거대한 장벽처럼 서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국회·광역의원 20% 언제 넘나 =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2000년 5.9%에서 2020년 19.0%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300명 중 57명에 불과하다. 여전히 깨질 듯 깨지지 않는 '20%의 벽'에 갇혀있는 셈이다.
이 중 11.5%인 29명만이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로 진출했고 나머지 28명은 비례대표다. 여성 정치계에선 공직선거법 제6장 47조에 '정당이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를 추천할 때는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를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당선이 어려운 지역구에 공천하는 식으로 할당을 채우는 시늉만 한다고 호소한다.
대부분 지역에 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 전무하다. 인천(선거구 13곳)·대전(7곳)·울산(6곳)·세종(2곳)·강원(8곳)·충남(8곳)·충북(8곳)·전북(10곳)·전남(10곳)·경남(16곳)·제주(3곳) 등 17개 광역시도 중 11곳에서는 남성이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독차지했다. 여성은 0%다. 서울과 경기 등이 비교적 여성 진출이 활발했지만 서울(24.5%·49석 중 12석)을 제외하고 모두 20% 이하다. 경기가 59석 중 11석(18.6%), 경북 13석 중 2석(15.3%), 광주 8석 중 1석(12.5%), 부산 18석 중 2석(11.1%), 대구 12석 중 1석(8.3%) 순이다.
여성에겐 광역시도의원 자리도 좁다. 광역의원 여성 비율은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19.4%지만 지역구 비율은 13.3%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성비와 비슷한 수치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광주가 23석 중 8석(비례 2명)으로 34.8%의 높은 비율을 보였고 울산이 22석 중 7석(비례 2명)으로 31.8%를 기록했다. 이어 대구 23.3%(30석 중 7석), 경기 22.5%(142석 중 32석), 세종 22.2%(18석 중 4석), 부산 21.3%(47석 중 10석), 제주 21.1%(38석 중 8석)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인천은 37석 중 3석으로 8.1%를 기록, 전국 꼴찌였다. 특히 3석 모두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다. 강원, 충남, 충북, 전북, 전남, 경북 등에서 여성 광역의원 비율은 20% 이하다. 경남은 58석 중 8명(비례 4명)이 도의회에 입성해 13.8%로, 지역구 여성 정치인 당선만 따지면 7.7%다. 전국 17개 시도 중 13위다.
◇기초의원이 희망의 불씨일까 = 시군구 기초의회의 지역구 여성의원은 전국 평균 20.7%로 국회의원이나 광역의원보다 높다. 비례대표를 포함하면 전국 평균 30.7%로 기초의원 10명 중 3명이 여성이다. '20%의 벽'을 깬 곳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도 한 기초의회다.
대전이 특히 높다. 63석 중 여성이 27석(비례 9명)을 차지해 42.8%로 절반에 근접했다. 지역구 기초의원만 따져도 33.3%다. 이어 인천 39.8%(118석 중 47석·비례 16명), 서울 39.7%( 423석 중 168석·비례 54명), 경기 39.5%(446석 중 176석·비례 56명), 부산 35.7%(182석 중 65석·비례 25명)로 높은 편이다. 이 밖에 광주(33.8%), 대구(31%), 충남(26.9%), 울산(26%)이 경남보다 높았다. 243석 중 52석(비례 28명)으로 21.4%를 차지한 전남이 가장 낮다.
경남은 264석 중 68석(비례 34명)을 차지해 25.7%에 그쳤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진주가 21석 중 9석(비례 3명)으로 42.8%, 사천이 12석 중 5석(비례 2명)으로 41.7%, 통영이 13석 중 5석(비례 2명)으로 38.5%, 하동과 거창이 각각 11석 중 4석(비례 2명)으로 36.4%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창원은 18개 시군 중 12위로 나타났다. 총 44석 중 9석(비례 4명)으로 20.4%에 그쳤다. 남해와 함양, 밀양은 지역구 당선 여성 정치인이 1명도 없고 의령, 함안, 산청은 각각 지역구 9석 중 1석만 여성이다.
◇기초의회 의장은 왜 모두 남성일까 = 경남 18개 기초의회 의장의 성별은? 물론 남성이다. 건설 분야 상임위원장은?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의 의정활동이 활발하지만 현재 의장을 맡은 기초의회는 한 곳도 없다. 권한이 막강한 의장을 선수 등에 따라 남성이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해양농림위원회(창원), 도시환경위원회(진주), 산업건설위원회(통영·밀양·의령·함안·창녕·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 건설항공위원회(사천), 도시건설위원회(김해·양산), 경제관광위원회(거제) 등 18개 시군 중 16곳의 알짜 상임위원장도 모두 남성이 맡고 있다. 여성이 건설 분야 상임위원장을 맡은 곳은 고성, 하동 2곳뿐이다.
이같이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최근 동시선거 기준) 등 자료를 취합해 분석한 결과 여성 정치인이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국회의원, 광역시도의원, 기초의회 의장과 알짜 상임위원장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도 확인된다.
질문도 쏟아진다. 여성 인구가 50%를 넘은 지금, 남성 정치인들은 과연 여성들을 대변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도 여성 대통령, 여성 장관, 여성 당대표를 배출하며 나아지고 있다지만, 성평등 정치가 처한 현실이 과연 정말 그런가.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