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원서 1.8㎞ 걸으니 안골왜성
한산한 주변 풍경 마음 빼앗겨
황포돛대 노래 벗삼아 쉬다가
웅천읍성 올라서 한참 어슬렁
다섯 시간 걸었더니 다리 뻐근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부터 조성한 '코리아둘레길'은 동·서·남해안과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 등 약 4500㎞ 한반도 둘레를 잇는 걷기여행길이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지리적 특성상 동서남해안 둘레길은 'U자' 형태를 띤다. 동해안 해파랑길(750㎞), 남해안 남파랑길(1446.6㎞), 서해안 서해랑길(1800㎞) 등 3개 구간만 합쳐도 3996.6㎞에 달한다.

U자 맨 아래쪽인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2020년 10월 말 개통된 남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경남을 거쳐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진다. 부산 5개 코스 100.4㎞, 경남 42개 코스 610.1㎞, 전남 43개 코스 736.1㎞로 구간마다 지역 관광지가 연계돼 노선이 짜여 있다. 남파랑길 경남 구간을 살랑살랑 걸어본다.

▲ 남파랑길 안내판. /최석환 기자
▲ 남파랑길 안내판. /최석환 기자

◇부산과 진해 사이에서 출발 = 첫 코스는 부산 강서구 송정공원부터 창원 진해구 제덕사거리까지 이어지는 14.8㎞ 구간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남파랑길은 흔히 떠올리는 제주 올레길처럼 잘 조성된 둘레길 모습이 아니다. 안내판만 몇 개 설치돼 있을 뿐 따로 산책로가 조성돼 있지 않다. 코스만 정해놓은 형태다. 코스를 따라 도심지 등을 걷는 게 전부여서 걷기 좋게 만들어진 여행길을 상상하고 이곳에 들른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고가도로와 마주보는 송정공원 건널목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건널목을 건너면 진해, 반대로 건너면 부산이다. 공원 앞 건널목을 기점으로 두 도시가 경계를 이룬다. 주변으로 바다가 드러난다. 멀찌감치 진해 신항도 보인다.

길을 건너 바다와 접한 용원시외버스센터 옆길을 따라 걸었다. 어시장 주변은 저지대여서 집중호우 때면 침수가 잦은 지역이다. 좁은 골목 왼쪽에서 부산항 신항 재해방지시설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용원동 저지대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공사다. 이를 뒤로하고 밑으로 쭉 내려가면 용원어시장이 나온다. 어시장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생선을 사려는 사람들이 시장 안을 서성인다.

어시장 주변에 사거리가 있다. 용원교라고 부르는 116m 길이 다리 앞이다. 길 건너편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는데 다리를 건너가지 말고 건널목을 건너야 이 안내판을 만나볼 수 있다. 안내판이 다음 목적지로 가리키는 곳은 웅천 안골왜성이다. 1.8㎞ 거리를 30분가량 걸으면 안골왜성이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우리나라 남해안에 만든 18개 성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에 웅포성이라는 이름으로 왜구 침입을 막고자 만들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를 보수해 제2기지로 활용했다고 한다.

한산한 산성을 천천히 둘러본다. 왜성 본성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은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바람에 푸르스름한 풀과 나무가 흔들린다. 무릎 가까이 자란 수풀이 왜성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본성 비석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첫 출발지부터 쉬지 않고 걸어온 다리에 휴식을 준다.

▲ 진해 황포돛대 노래비 배모양 비석. 작사가 이일윤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군부대에서 복무할 당시 고향 바다인 영길만을 회상하며 만든 가사가 이 곡에 쓰였다고 한다. 노래 유래를 기록해 놓은 비석이 황포돛대 노래비다. /최석환 기자
▲ 진해 황포돛대 노래비 배모양 비석. 작사가 이일윤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군부대에서 복무할 당시 고향 바다인 영길만을 회상하며 만든 가사가 이 곡에 쓰였다고 한다. 노래 유래를 기록해 놓은 비석이 황포돛대 노래비다. /최석환 기자

◇안골포해전지 지나 황포돛대 노래비로 = 안골왜성에서 무궁화공원으로 향한다. 왜성 주변에 안골포해전이 벌어졌던 안골포 앞바다가 있다. 안골포해전은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조선 수군함대가 진해 안골포에 있던 일본 정예 수군함대 42척을 쳐서 승리로 이끈 전투다. 걷다 보니 안골포해전이 있던 진해유치원 앞 바닷가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세 명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가 들린다. 다들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다. 돌을 잘 던지던 때가 있었는데 문득 아이들 곁에 서서 그때 실력을 뽐내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무궁화공원에서 황포돛대 노래비까지 걸어가는 길은 제법 길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가파른 언덕도 여럿 만나게 된다. 대장천이 지나는 진해 두동 진철교까지 가야 중간 정도 온 셈이다. 다리를 지나 공장이 몰려있는 옆길로 들어서면 갈매기 같은 새들이 바닷가 가로등 위에 줄지어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새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새똥을 얼마나 싸놨는지 바닥이 하얗게 범벅이 돼버렸다. 새 무리가 즐겨 찾는 곳은 피해서 지나가는 게 좋겠다.

▲ 황포돛대 노래비 쉼터. 비석 주변 바닷가 쪽에 의자가 여럿 놓여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잠깐 쉬어가기 좋다.  /최석환 기자
▲ 황포돛대 노래비 쉼터. 비석 주변 바닷가 쪽에 의자가 여럿 놓여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잠깐 쉬어가기 좋다. /최석환 기자

이곳을 지나고 나면 깔끔한 도로가 이어진다. 진해신항이 한눈에 보이는 흰돌메공원과 황포돛대 노래비를 잇는 남명로 거리다. 황포돛대 노래비라고 적힌 안내판이 거리에 세워져 있다. 이상한 건 안내판만 있고 비석은 여기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안내판만 설치해놓은 이유가 뭘까? 어쨌거나 이곳에서 10분 정도 더 걸어야 비석을 만날 수 있다.

'황포돛대'는 가수 이미자가 부른 노래다. 작사가 이일윤이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군부대에서 복무할 당시 고향 바다인 영길만을 회상하며 만든 가사가 이 곡에 쓰였다고 한다. 노래 유래를 기록해 놓은 비석이 황포돛대 노래비다. 노래비 전면에는 가사가 적혀있다. 그 옆에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온다. 비석 주변으로 바닷가 쪽에 의자가 여럿 놓여있어서 노래를 들으며 잠깐 쉬어가기 좋다.

▲ 주기철목사기념관.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전시관이다.  /최석환 기자
▲ 주기철목사기념관.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전시관이다. /최석환 기자
▲ 주기철목사기념관 주변 동천 산책로.  /최석환 기자
▲ 주기철목사기념관 주변 동천 산책로. /최석환 기자

◇종착지 제덕사거리로 가는 길 = 제덕사거리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주기철목사기념관은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주기철 목사를 기리는 전시관이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펼치다가 갖은 고문을 당하고 세상을 떠난 주기철 목사를 기억하고자 만든 곳이다. 그의 고향이 웅천이어서 이곳에 기념관을 세웠다고 한다. 2015년 개관한 기념관에는 주 목사가 생전에 사용했던 각종 유품과 항일운동 기록 등이 전시돼 있다. 가상현실 기법으로 제작된 기념관 누리집(jugicheol.or.kr)에 들어가면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방문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기념관은 한동안 코로나로 휴관 중이었는데, 지금은 관람이 가능하다.

기념관 바로 주변에 웅천읍성이 있다. 웅천읍성은 세종대왕 때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왜인들을 통제하려고 만든 성이다. 주민 보호와 함께 지방의 주요 거점에 군사 기능과 행정 기능을 같이 수행하던 성이다. 조선군의 일본 방어 기지 역할을 하던 곳이자,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있던 곳이 웅천읍성이다.

▲ 웅천읍성. 세종대왕 때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왜인들을 통제하려고 만든 성이다.  /최석환 기자
▲ 웅천읍성. 세종대왕 때 남해안 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왜인들을 통제하려고 만든 성이다. /최석환 기자

진해 성내동에 있는 이 읍성은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돌로 쌓인 성곽 꼭대기까지 갈 수 있다. 눈 아래 펼쳐진 동네가 평화롭게 느껴진다. 올라서기 전에도 느꼈지만, 이 읍성은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이곳 특유의 분위기에 한참이나 사진을 찍으며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마지막 종착지는 제덕사거리. 읍성에서 세스페데스공원 방면으로 걷는다. 쌩하고 지나가는 차는 많은데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끝에 다다르고 나서야 돌아왔던 길을 다시 살펴본다. 다섯 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다리가 이제 힘들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렇게 오래 걸을 일이 최근에는 많지 않았다. 둘레길이 나를 조금은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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