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응답자, 내용 전반은 이해
한자·영어 무분별한 사용 지적
사용된 용어들 사무적·함축적
"예시·풀이 붙여 이해 도와야"

"스마트농업, 스마트팜처럼 영어를 붙인 것도 거슬리지만 굳이 '스마트'를 붙여야 한다면 '스마트팜'이 아닌 '스마트농장'이라고 해야죠."

경상남도 스마트농업 육성 조례를 본 농민 반응이다. 조례 내용에 '스마트팜'이 나온다. 영어인 '스마트'는 '정보 기술을 접목해 자동화한'으로 풀어쓸 수 있다. 다만 문장이 길어지는 것을 고려해 '스마트'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팜(farm)'은 우리말 '농장'으로 써야 한다는 설명이다.

공공 기관은 더디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를 쉽게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나 조례에는 여전히 낯선 단어나 표현이 많다.

일반인에게 법이나 조례는 어떻게 읽히는지 알아보고자 청소년·청년·노동자·학부모·농민·장애인 등 30명에게 물어봤다. 9명은 어렵다고 했고, 15명이 보통이라고 답했다. 쉽다고 답한 이는 6명이었다. 다른 법과 조례까지 범위를 넓혀 물어보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지난 회 청소년(6명), 청년(6명), 노동자(3명)에 이어 농민(5명), 장애인(5명), 학부모(5명)에게 관련 조례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문장이 있는지 알아봤다.

◇한자어·외래어 남용 = 세 집단에 경상남도 스마트농업 육성 조례, 경상남도 장애인가족 지원 조례, 경상남도교육청 대안교육 진흥에 관한 조례를 각각 보여 줬다. 설문 응답자 대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지만 전반적인 조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꼭 쓰지 않아도 되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점은 아쉽다고 했다.

앞서 예로 든 스마트팜은 '정보 기술을 접목해 자동화한 농장'으로 바꿀 수 있다. 표현은 길어지지만 읽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는 훨씬 쉽다.

또 전문 컨설팅은 전문가 상담, 전문 도움으로, 경쟁력 강화는 경쟁력 키우기, 매년은 해마다, 적정하게는 알맞게, 교육을 이수한 자는 교육을 마친 사람 등으로 쓸 수 있다.

함양에 사는 농민 차용택(62) 씨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한자어를 써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명사형 한자어 투성이라 낱말 하나하나는 알지만 문장이 머리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며 "요즘은 영어도 너무 함부로 쓰고 있어서 더 어렵다"고 전했다. 차 씨는 조례 안에서 한자어 명사형을 사용해 뜻이 명확하지 않은 예로 '스마트농업의 생산, 유통, 경영 등 추진 전략'을 꼽았다. 그는 "스마트농업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경영한다는 말인지, 스마트농업에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건지, 후자라면 농산물을 경영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김해 학부모 ㄱ(46) 씨 역시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중간에 용어를 검색해 보는 등 수고로움이 있었다"고 했다.

◇생소한 표현 문장 = 조례에 평소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 많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응답자들은 장애인가족 지원 조례에 나온 '직계 존비속'이라는 단어를 가장 어려워했다. 직계 존비속이란 조상에서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수직적인 혈족인 직계 존속(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등)과 자신에서 수직적으로 내려가서 후대에 이르는 혈족인 직계 비속(자녀, 손자, 증손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즉 혈연으로 친자 관계가 직접 이어진 사람을 모두 이른다.

이 밖에 영위(일을 꾸려 나감), 사유(일의 까닭), 부칙(보충하려고 덧붙인 규칙), 진흥(떨치어 일어남), 정규(정식으로 된 규정이나 규범) 등도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꼽혔다.

또한 '정책수립과 지원에 관하여 정함으로써', '농업의 생산성 향상과 농작업의 질 향상을 위하여',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안교육대상자의 대안교육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등 표현은 딱딱하고 자연스럽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거창에 사는 농민 이예성(31) 씨는 "법이나 조례를 많이 읽어보지 않아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낯선 단어와 문장들이 많아 이해하기 쉽지 않다"며 고 밝혔다. 사천 학부모 박남희(50) 씨 역시 "용어가 너무 딱딱하고 사무적이며 한자어가 많다"며 "개념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곱씹어 보게 돼 조례를 읽는 데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창원에 사는 장애인 ㄴ(59) 씨는 "조례 내용이 간략한 단어로 축약돼 있고, 그게 한자어라 뜻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쉬운 우리말 사용 강조 = 설문에 참여한 시민들은 나이, 직업, 학력 등에 상관없이 시민이라면 누구나 조례 내용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창원에 사는 장애인 ㄷ(57) 씨는 조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그는 "내용이 함축돼 있고 다른 법령과 연관성이 있어 무슨 뜻인지 어려울 때가 있었다"고 전했다.

진주 농민 김재영(35) 씨는 "문맥 흐름 등을 봤을 때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면서도 "평소에 쓰이는 말들로 대체해 만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창원 학부모 최효원(42) 씨는 "첨부 자료 조례는 간단해 많이 어렵지 않았지만 일반적 조례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라며 "한자어나 전문용어 대신 우리말을 사용하면 뜻이 잘 전달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조례에 있는 모든 표현을 바꿀 수 없고, 특히 전문용어처럼 꼭 쓸 수밖에 없는 단어가 있다면 예시나 풀이라도 달아 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창원에 사는 장애인 ㄹ(45) 씨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어려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며 "보통 사용하지 않는 용어는 설명을 덧붙여 주면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해 학부모 ㅁ(49) 씨 역시 "모든 용어를 풀어서 적는 것이 해답인지는 모르겠다"며 "어려운 표현은 풀어 쓰도록 노력하고, 그것이 안 될 때는 사례 등을 들어 이해를 돕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감수 김정대 경남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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