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 차리기 힘든데
말투 바꾸니 대화 질·인간 관계 달라져

믿거나 말거나, 나에게는 횟수로 10년째 연애를 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1년을 넘기기 힘들었던 지난날 나의 연애사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이번 연애의 비결을 궁금해하곤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귀찮아서다. 새로운 만남에 설레던 젊은 날과는 달리 40줄에 들어서니 연애세포가 시들해졌다. 별 남자 없다는 어른들 말에 공감이 간다고나 할까, 아무튼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귀찮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그래도 굳이, 애써 연애 장수비결을 찾는다면 존댓말의 힘이 아닌가 싶다. 연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남자친구와 나는 서로 존댓말을 사용한다. 서로의 성씨에 맞춰 "김 선생" "남 선생"으로 부르거나 "김 선수" "남 선수"로 부른다. 이런 호칭을 하면 아무리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야!" "너!"와 같은 거친 반말을 할 수 없다. "밥 먹게", "잘 잤는가?"와 같은 주로 '하게'체 말투를 사용하는데 그 옛날 조선시대 양반이 된 것처럼 대접 받는 느낌이 든다. 말끝마다 사용하는 '했쥬', '했어유'와 같은 근본 없는 충청도 사투리는 애교다. 비음 섞인 충청도 사투리는 짜증을 참는 데 도움이 된다. "네가 잘못해서 화가 났잖아"라는 말보다 "남 선생 때문에 화가 났쥬"라는 말을 하면 화를 내는 사람도, 화를 듣는 사람도 크게 화를 내기가 힘들다.

존댓말의 힘은 가족 간에도 통한다. 요즘, 동생과 관계에서도 나름 효과를 보고 있다. 호칭이 달라지니 관계가 달라졌다. 나는 동생을 청소를 깔끔하게 한다고 해서 '깔끔이님'이라고 부르고, 동생은 나를 '귀요미님'이라고 부른다.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다 보니 대화에 웃음이 넘친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불렀는데, 부르다 보니 효과가 있어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다. 가까운 가족 사이일수록 예의를 차리는 게 힘든 법, 호칭과 말투로 예의를 지키다 보니 대화 질도 높아졌다. 동생을 가르치려는 습성이 줄어들었다고나 할까? 물론, 아직 멀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남해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서로에게 경어를 사용했던 것 같다. 남해 사투리 특징상 주로 '하게'체와 '하시다'체를 많이 사용했는데, 같은 연배 친구뿐만 아니라 성년이 된 20대 청년들에게도 함부로 반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 길거리에서 동네 오빠들을 만나면 "자네, 밥 먹었는가?"와 같은 말로 어른 대접을 해줬다. 특히, 아버지가 엄마를 부르던 호칭이 기억에 남는데, 아버지는 엄마를 "임자!"라고 불렀다. 새벽녘 잠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아버지가 엄마에게 "임자! 일어났는가?" 조용히 묻던 장면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여보, 당신보다 더 흐뭇한 호칭. 나에게 '임자'는 부부 사이에 품격과 로망을 갖춘 최고 호칭이다.

일찍이 존댓말의 위력을 알아서일까? 우리 회사 직원들은 대부분 서로를 부를 때 '○○씨'나 '○○님'이라고 부른다. 직급 나이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존대를 한다. 반말이 친근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온 나로선 처음에는 어색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모든 직원에게 높임말을 사용할까? 고민 중이다. 빠르게 기획하고 재빨리 일을 실행해야 하는 콘텐츠 회사 특징상 윽박지를 상황이 생긴다. 이럴 때 나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 존댓말이 아닐까 싶다. "최 과장! 이거 처리했어?"라는 말보다 "최 과장님 이번 건 처리했어요?"라는 말이 더 곱지 않은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고, 주고받는 말 속에 직장에 웃음꽃이 핀다. 존댓말의 힘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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