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 한 맺힌 유족
눈물 흘리지 않을 길 국가가 만들어줘야

전화기 너머로 젖은 목소리가 간간이 끊겼다.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면, 그렇노라고 했다. 전화로 몇 마디 나눈 기자에게 80대 남성은 자신이 10대 때 겪은 아버지의 죽음을 눈물 흘리며 증언하고 있었다.

또 다른 70대 여성도 아버지 사연을 묻는 기자에게 누가 불러서 '다녀오겠다'고 '맥지(공연히)' 가서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하며 목이 멨다.

마치 얼마 전 일인 것처럼 전화 한 통에도 감정이 북받치는 이들의 이야기는 무려 71년 전 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등으로 군인, 경찰에 죽임을 당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포함한 과거사를 밝히는 작업을 했지만, 반세기가 넘은 사건을 진상 규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다시 출범한 진실화해위는 10여 년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경남에서도 올해 진주·창원·하동·고성·남해·사천지역 보도연맹 사건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달 초 만난 사천지역 보도연맹 피해자 유족은 1기 진실화해위 때는 진실규명 접수 시기를 몰랐다고 했다. 10년 만에 다시 '(진실을 규명할) 문이 열렸다'고 해서 시에 신청을 했고, 이번에는 조사개시 통보서까지 받았다.

또 다른 유족은 10여 년 전에는 당시 사건을 이야기해 줄 증인을 찾지 못해서 신청을 못 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증언자를 찾아서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가 학살을 당할 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거나 사태를 알 수 없었던 어린아이였던 이들은 어느덧 세월이 흘러 70~80대 노인이 됐다. 어린 나이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피해 유족 상당수가 평생 연좌제 등의 고통 속에서 살다 유명을 달리했다. 피해를 증언해 줄 사건 관계자도 마찬가지다.

진실화해위 활동은 이미 너무 늦은 시기에 시작됐다. 그럼에도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자 하는 활동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란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 이들을 위한 명예 회복과 보상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국가가 자행한 학살로 가족을 잃은 채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려야 했던 이들에게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작업을 스스로 신청해서 해야 하고, 여기에서 진실규명 판정을 받은 후 소송까지 직접 진행해서 명예회복, 보상을 받는 절차는 가혹하다. 피해자가 언제, 어떻게 죽임을 당한 줄 몰라서 군·경에게 끌려간 날을 피해자 제삿날로 삼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남은 생은 길지 않다. 사건을 기억하는 이가 줄어드는 만큼, 진상규명은 요원해질 수 있다. 유족들이 더는 피해자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서 목이 메지 않았으면 한다.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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