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와 가곡 대표 작곡가 이수인 선생
그의 부음은 음악사 한 장이 바뀌는 듯

"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메 음메 울 적에, 어머니 얼굴을 그리며 간다. 고향을 부르면서 구름은 간다."

정근 작사, 이수인 작곡의 동요 '구름' 1절 가사다. 참으로 처연한 가사이며 '올드한' 정서인데, 과거엔 노래 좀 부른다는 어린이들이 모두 알고 있는 동요였다. 하기야 그때는 서수남, 하청일이라는 듀오가 가요 무대에서 '과수원 길'이나 '겨울바람' 같은 곡을 불러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되면 꼼짝없이 '라떼는 말이야' 식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도리가 없다. 오늘은 지난 22일에 작고한 이수인 선생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엔 동요나 가곡 대회가 무척 인기 있었다. 특히 KBS에서 진행한 <누가 누가 잘하나>라는 동요 대회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아이들이 즐겨 보았다. 시골에서 노래 잘하는 어린이 축에 속하던 나는 어찌어찌하여 그 프로그램 연말 결선까지 진출하게 되었는데, 그때 부른 노래가 이수인 곡 '구름'이었다. 결선에서 떨어지고 침울하게 앉아있는 내게 심사위원이던 이수인 선생이 다가와서 "좋은 목소리를 가진 건 정말 행복한 거야"라며 위로해주던 기억이 난다.

무려 40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당시에도 선생은 동요와 가곡 분야에서 대한민국 대표적인 작곡가였고, 어린이 합창단과 어머니 합창단 선구자였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아이들은 많았지만, 그의 노래를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아폴로 우주선 발사를 기념하며 만든 동요 '앞으로'를 부를 땐 팔을 휘저으며 씩씩하게 제자리걸음을 하며 불렀고, '둥글게 둥글게'를 부를 땐 모두 손을 잡고 돌면서 불렀다. 그런 동요를 선생은 500여 곡이나 지었고, '고향의 노래', '내 맘의 강물', '석굴암' 같은 국민 가곡도 150여 곡을 남겼다.

선생은 생전에 '골목마다 아이들의 동요 소리가 가득한 풍경'을 이상향처럼 말했지만, 이미 세상이 바뀌었음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신작 동요가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동요를 부르는 나이는 미취학 아동 정도로 낮아졌고, 신작 가곡 또한 '아트 팝'이라는 발라드풍 가곡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린이가 옛날 동요를 부르지 않는 이유나, 젊은 세대가 과거 가곡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쉽게 알 수 있다. '고향집 싸리울에 꽃 등불이' 타오르는 풍경도 볼 수 없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타나는 시어를 공감하기도 힘들고, '뒤뜰에 봉선화 곱게곱게 필 적'의 느리고 단순한 리듬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선생의 부음 소식이 한 시대 에필로그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순수했어" 또는 "그때가 좋았어" 따위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카라얀이나 아바도나 로스트로포비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 느끼던 감정처럼, 음악사 챕터가 바뀌는 것 같은 상념에 사로잡힌다.

음악에는 사진첩과 비슷한 시간 재생 기능이 있어서, 그 빛바랜 음악을 뒤적이며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게 만든다. 동요와 가곡은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어린이 시선을 돌려주고, 들꽃과 저녁놀에 한숨짓는 시인 마음을 보태준다. 오늘 내가 테너 팽재유 목소리로 다시 듣고 있는 '내 맘의 강물'처럼, 그렇게 시간의 물길을 열어주는 것이 음악의 힘이다. "수많은 날은 떠나갔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그날 그땐 지금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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