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도권 사는 사람만 대한국민인가
여의도 아스팔트 농사 투쟁이라도 할 판

얼마 전 '사흘'이라는 단어가 포털 인기 검색어에 오른 적이 있다. '광복절부터 사흘 휴가' 기사에 '3일 노는데 왜 4일 논다고 하냐'며 오보라 지적했던 댓글이 원인이었다.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사흘의 뜻을 알지 못해 빚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연장선에서 몇십 년 지나면 '고향'이라는 단어가 그런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중·노년 세대가 느끼는 깊은 의미는 이미 젊은 세대에서 같은 무게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

생각이 촉발한 이유는 지역불균형과 그에 따른 지역소멸의 가속화 때문이다. 출생률은 줄고, 청년들은 떠나고, 지역은 늙고 있다. 2001년부터 2021년(6월 말 기준)까지 20년간 경남 인구 추이를 보면 최근 5년 동안 매년 1만 명씩 줄었다. 특히 군 지역 감소가 두드러져 20년 전보다 9만 6955명 줄었다. 20년 동안 도내에서 인구 5만 명 수준의 군지역 두 곳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반면 수도권에는 인구 절반 이상이 몰려있다. 이대로 간다면 수십 년 뒤 국민의 고향 대부분이 서울이나 경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향이라는 단어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대선을 앞두고 지역균형발전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5년 전 그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굵직굵직한 공약을 제시했다.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것을 찾기 어렵고, 그 노력 또한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달 김부겸 총리는 "혁신도시 시즌2에 대한 정부 입장이 조만간 최종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취재 결과 정부 차원의 실무적 방안은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역민의 외침을 엄살로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 요소인 교육, 의료, 교통 등의 확대를 요구하면 효율성만 따져 예산낭비라는 말을 한다. 쪽수가 적다는 이유로 불편을 넘어 삶의 질에서 차별받고, 생존의 위협까지 느껴야 하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은 대한국민이고 지역에 사는 사람은 대한궁민(窮民)이란 말인가.

선거 때만 되면 '지역균형발전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고 뽑아야 한다'고 독자들께 이야기해왔지만 이번에는 다시 반복할 염치도 없다.

울어도 울어도 안 된다면 싸워서 쟁취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에라도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라도 지어야 할 판이다. 지역민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읽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검찰개혁·언론개혁도 중요하지만 지역불균형 심화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울·수도권만 잘살아서 해결될 문제라면 모두 이사 가서 살면 된다. 지역불균형의 결과는 공멸이라는 것을 누구나 뻔히 알고 있다. 때를 놓치면 재앙이 될 수 있다. 표심을 얻고자 쏟아내는 그럴듯한 공약보다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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