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선진국? 총경제규모만 A+?
모든 '을'과 지역 찬찬히 들여다봐야

폭염과 코로나 속에도 20대 대선을 향해 20여 명 후보가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마스크 위로 눈만 드러낸 채 20개월째 생활해온 시민들과 방호복 투지를 보여온 의료진도 지쳐가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국가 위상과 경제 관련 낭보가 잇따라 들려와 적지 않은 위로가 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다.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9위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뒤이어 나왔다.

여기에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이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일본보다 2단계 높게 평가했고, 1인당 명목 GDP 등에서는 아직 못 미치지만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경상 GDP는 2018년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는 보고가 나왔다.

40년 일제강점에 이어 전쟁 참화를 겪고도 "한 번 잘살아보자"며 쉼 없이 달려온 나라 국민들이 이젠 한 시름 놓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최악 산업재해가 여전하고 사회·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단위 난제가 아직 수두룩하다.

그중에서도 수십 년 세월, 갈 데까지 가버려 폭발 직전인 수도권 초집중 해소가 가장 시급해 보인다. 11.8% 면적에 전국 인구 절반 이상이 몰린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곳. 주택 공급 부족과 집값 폭등은 자연스럽고도 예견된 사태다. 이 문제는 비수도권 지역의 자치분권, 균형발전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통일신라 이래로 이 땅에선 봉건도 자치분권도 경험한 바 없고, 오로지 중앙집권만 당연시하고 살았다. 장점도 없지 않았지만 폐해는 대부분 지역 몫이었다. 한양, 서울, 수도권엔 권력과 사람, 돈, 정보가 집중됐고 명문대, 대기업 본사와 좋은 일자리가 몰렸다. 심지어 놀거리, 볼거리까지 그곳에 가야 했다.

비수도권 사람들은 상실감, 박탈감에다 출처 모를 분노까지 안고 산 지 오래다. 그러니 외국이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국가적 성취를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2등 국민' 취급을 받아온 오랜 세월 때문이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국가자본주의 체제에서 수출에 목 매달던 시절부터 지역은 저임금을 감수하는 노동자에게 먹거리를 싸게 제공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선진국을 거론하는 지금도 이 논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역민을 열받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위험의 외주화'는 산업현장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최대 원전밀집국가다. 그런데 정작 원전은 전력 최대소비처인 수도권에서 먼 지역 해안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다. 고리원전은 반경 30㎞ 안에 인구 380만 명이 살지만 지역이란 이유로 그냥 넘어간다. 그래서 '지방은 식민지'란 이야기가 나오는가.

모든 교통인프라도 수도권 중심이다. 기껏 전국에 고속철도(KTX)를 운행했더니 오히려 수도권 '빨대 효과'가 심해졌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내년 3월에 대선, 3개월 후엔 지방선거가 있다. 처음 경험하는 정치일정이다. 국가 중앙권력과 지역 권력에 접근하는 대통령·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함께 수도권 초집중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인식, 획기적 대책을 국민 앞에 약속할 절호의 기회다.

껍데기만 선진국? 총경제규모만 A+등급? 이제 나라 속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다. 생명, 노동, 환경, 기후, 소수자, 모든 '을'들. 그리고 지역. 그럼 선진국 국민이라는 자존감도 함께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연후에 선진국이라면 나라 밖 지구문제, '기후비상사태'에도 제대로 책임있게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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