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비판에 여권 수정안 제시
청구인 제한·입증 책임 명확화
야권 견해차 여전·수용 미지수

야당·언론계로부터 '언론재갈법'으로 비판받고 있는 여권의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수정 처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여야는 12일 법안 심의를 위해 열 예정이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연기했다. 문체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과 국민의힘 간사인 이달곤(창원 진해) 의원이 회의 개최 전 만나 야당이 수정 법안을 제시한 후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달곤 의원은 간사 협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15일까지 우리에게 수정안을 달라고 했고 이를 우리가 수용했다"며 "16일이 휴일이기 때문에 17일쯤 다시 논의가 될 것 같다. 아직 17일 전체회의 개최는 동의하지 않았고,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건조정위원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안에 대한 그간 국민의힘 입장을 감안하면 야당 수정안은 허위·조작보도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과 사실상 '기사삭제권'으로 지적받는 기사열람차단청구권,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규정으로 가득한 허위·조작보도의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언론사의 자율적 편집권을 침해하는 정정보도 분량·위치·시점 강제 조항 등에 대폭 손질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문체위 소속 최형두(국민의힘·창원 마산합포) 의원은 "언론단체들과 정의당까지도 민주당 법안이 굉장히 위헌적이고 언론의 정상적 비판 기능을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며 "그런 것이 (12일 회의 취소와 관련해) 민주당에도 전달된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법안 심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그런 의견을 절충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 황희(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황희(왼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 의원은 이어 "언론중재법이 선량한 국민들의 허위보도 피해를 신속히 구제해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핑계 삼아 고위공직자 비리, 권력형 비리, 내로남불 비리, 언론의 비판 및 추적보도 기능을 봉쇄 혹은 차단하려는 법으로 저희는 보고 있고, 그런 조항들로 가득차 있다"며 "민주당은 이성을 찾고 이 무리한 법안에 대해 내부에서도 자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권도 이에 화답하듯 이날 오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자체 수정안을 제시했다. 문체위 소속 민주당·열린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계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온 우려 중 합리적이라 인정할 수 있는 사안을 수정하기로 했다"며 징벌적 손배와 기사 열람차단청구권 관련 조항 등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들은 징벌적 손배 청구를 할 수 없도록 제외하겠다고 했고,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도 언론에 그 입증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감안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추정의 주체임을 명시해 입증 책임의 모호함을 없애겠다"고 했다.

또 온라인 기사에 열람차단청구권이 있었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한 조항도 '낙인 효과' 우려를 고려해 삭제하기로 했다.

진보·보수를 망라한 각계의 비난에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인 셈인데 야당·언론계 요구 사항과 간격이 커 이 같은 수정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도 야당 동의와 상관없이 25일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정 의원은 12일 회견에서 "9월 정기국회에 들어가면 국감을 비롯해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다른 법들도 많이 밀려 있어 이달 안에 언론중재법을 처리할 생각"이라고 했다. 또 징벌적 손배 조항에 대해 "언론 자유에 대해 조금 더 고려했지만 피해구제에 방점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못 박았다.

다수 의석을 보유한 여당이 강행 처리에 나설 경우 야당이 이를 막을 실질적 방법은 없다. 최대 90일 동안 쟁점 법안을 심의하는 제도인 안건조정위 구성이 대안으로 거론되나 총 6명의 조정위원 중 4명을 범여권(민주당+열린민주당)이 가져갈 가능성이 커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가운데 언론중재법 관련 논란은 국내 정계·언론계를 넘어 세계적 이슈로까지 부상하고 있다. 60여 개국 1만 5000여 개 언론사가 가입된 세계신문협회는 성명을 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의해 조장되어 왔으며 정치적·경제적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는 데 사용되는 편리한 수단이었다"며 "한국 정부와 여당 등 관계기관은 성급히 마련된 이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