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단체·개인 주도 경향 변화
비대면 모임·대학 동아리 활발
"정보·개인화로 방식 달라져"

2020 도쿄올림픽에서 3관왕을 쏜 안산(20·광주여대)이 뜻하지 않게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이자, '영페미'(2010년대 이후 활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를 이르는 말)들이 나섰다. 이들은 짧은 머리로 찍은 사진과 함께 #여성_숏컷_캠페인이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한 게시물을 사회관계망서비스 내에 올리며 대응했다. 일부 남성 누리꾼이 안산이 여대를 다니고, 짧은 머리를 한다는 점을 들어 페미니스트라고 저격했다. 남성 누리꾼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심으로 안산을 무분별하게 공격하자 여성 누리꾼들은 성차별이자 온라인 학대라며 이 같은 해시태그를 내걸었다.

과거 여성단체나 일부 여성 운동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페미니즘은 이제 젊은 여성, 나아가 대중의 일상을 파고들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젊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

사건 이후 2030세대 여성들은 여성혐오 범죄 원인을 '성차별'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윤지(21·통영 무전동) 씨는 "소라넷부터 n번방 사건까지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걸 보면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게 안전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며 "이후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페미니즘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머리를 짧게 잘랐다. 꾸미는 것도 '노동'이라 봤기 때문이다. 그는 "다이어트나 화장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 살았지만,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탈코르셋(corset-free movement·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불편한 치장에서 벗어나려는 운동)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윤슬(32·김해 장유동) 씨도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스트가 된 경우다. 그는 "가부장제에 동조하고 싶지 않아 비혼을 선택했다"며 "결혼과 임신으로 경력단절이 되는 경험을 겪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 진주교대 페미니즘 동아리 '방과후 페미니즘' 회원들. 동아리는 2019년에 만들어져 1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방과후 페미니즘
▲ 진주교대 페미니즘 동아리 '방과후 페미니즘' 회원들. 동아리는 2019년에 만들어져 1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방과후 페미니즘

'요즘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배우고, 향유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윤 씨는 얼마 전 비혼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함께 비대면 모임을 했다. 비혼 관련 서적을 쓴 저자를 초청해 화상으로 대화를 나눴다. 지역 비혼 여성 모임에도 가입했다. 성차별을 이해하는 구성원들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이전까지 전혀 관련 없던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대가 도래했다. 여성운동 방식도 바뀌었다. 2030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성차별 사안을 알리고, 집회 인원을 모은다.

전미주(20·창원 성주동) 씨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특징은 자신이 살아갈 시대를 스스로 열어나가는 주도력이라고 본다"며 "우리는 적극적으로 성차별에 대항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숙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늘었다고 느낀다"며 "정보화 시대에 개인화 경향이 더해지면서 여성운동 방식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학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남대 페미니즘 동아리 '행동하는 페미니즘'은 배움에만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연결하려 한다. 학내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 피케팅을 하는 한편 지난 3월에는 여성의 날을 맞이해 '2021년 현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학내에 포스트잇을 붙이기도 했다. 최근 진주교대 페미니즘 동아리 '방과후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교실을 주제로 학교 내 동아리 부스를 열었다. 학생들을 상대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 오해가 있으면 이를 설명하는 식으로 소통해갔다.

지역 대학에는 방과후 페미니즘(진주교대), 행동하는 페미니스트(경남대), 페밋(창원대), 세상의 절반(경상국립대) 등의 페미니즘 동아리가 활동 중이다. 이들은 지난 2월 연합동아리 '아우르니'를 발족했다.

아우르니는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 추모 성명을 내거나 낙태죄 폐지를 위한 해시태그 릴레이 운동을 벌이는 등 페미니즘 관련 사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 여성단체와도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진주교대 오예림 방과후 페미니즘 대표는 "대학 내 페미니즘 동아리가 학내는 물론 지역민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이슈를 알리고 요구하는 실천을 하고 있다"며 "이런 활동을 통해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양성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