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옹호센터-도내 관련 기관, 경계선지능인 자립 지원 협약
사회적기업 활용안 중점 논의... 공론화 토론회도 열 예정

세상에는 편의에 따라 그어진 수많은 '금'이 있습니다. 크게는 사상·인종·국가, 작게는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씨줄과 날줄처럼 어지러이 얽혔습니다. 금이 만든 경계선은 양쪽을 손쉽게 나눌 수 있을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 회색이 있는 것처럼, 모든 금 언저리에는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적장애와 평균지능 경계에서 방황하는 '경계선지적기능인'도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부대껴 왔음에도, 우리는 이들을 잘 모릅니다.<경남도민일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4회에 걸쳐 이들이 살아가는 자리를 돌아봅니다.

◇경남형 지지체계 논의 첫발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가 펴낸 보고서를 보면, 도내 40개 시설 아동 336명 중 34.15%가 경계선지능으로 판정됐다. 지능지수 정규분포상 추정비율(13.6%)을 한참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미미하다. 시설 종사자들이 '경계선지능아동지도사' 교육을 받도록 하고 지원하고 있지만 참여 인원은 소수다. 정부가 지난달 13일 보호기간과 자립수당 지급기간을 연장하는 등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안을 내놨지만, 경계선지능 관련 내용은 '사회적기업을 활용한 취업방안 연구를 시작한다'는 언급뿐이다. 경남도 차원의 지원은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경계선지능인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와중에 경남아동옹호센터가 작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센터는 지난 6월 경계선지능 아동 자립 지지체계를 마련하고자 도내 여러 기관과 협약을 맺었다. 참여 기관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남아동옹호센터·가정위탁지원센터, 경남아동청소년그룹홈협회, 경남아동복지협회, 경남광역자활센터, 경남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 등이다. 경남청년센터와 희망디딤돌경남센터는 아직 협약을 맺진 않았지만, 함께 지혜를 모으기로 했다. 이들이 만드는 경남형 지지체계는 어떤 형태로 꾸려질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서울 느린학습자 의제 협의체 사례를 참고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이 달라 그대로 적용할 순 없다. 수도권은 경계선지능인 부모 모임이 활성화돼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교육복지센터라는 다른 지자체에 없는 복지 체계를 활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을 신청해 혜택을 입은 일도 성과였다. 경남은 경계선지능인을 향한 인식이 희박한 만큼 부모 모임도 찾아볼 수 없고, 교육복지센터도 없다. 다만, 서울시동부권NPO지원센터가 실무단을 공간·예산 차원에서 지원했던 것처럼 경남공익활동지원센터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여러 기관이 각자의 영역에서 할 일을 고민하며 실마리를 풀어나간 선례를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지난달 13일 경남도민 소통공간 마루에서 '경남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지체계 강화를 위한 1차 실무자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지난달 13일 경남도민 소통공간 마루에서 '경남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지체계 강화를 위한 1차 실무자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이창우 기자

◇사회적경제, '경계선 자립' 역할 할까 = 지난달 13일 경남도민 소통공간 마루 2층에서 '경남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지체계 강화를 위한 1차 실무자 간담회'가 있었다. 앞으로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정리한 자리였다. 협약 참여 기관 대부분이 아동복지 관련기관인 만큼, 논의 대상은 시설 내 경계선지능 아동에 집중됐다. 그렇지 않아도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보호대상아동인데, 경계선지능 아동이 지역 사회에 안착할 곳은 좀처럼 찾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날 간담회서 나온 열쇳말은 '사회적경제'다. 일반 사기업에서 근무하기 어려운 경계선지능 아동은 그 특성을 반영한 사회적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방식을 주도할 기관으로 지역자활센터 역할이 강조됐다. 자활센터는 저소득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 의욕을 주고, 사회적기업 창업까지 이끄는 지역단위 복지 기관이다. 창원지역자활센터와 하이트진로가 지난해 저소득층 청년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자 만든 베이커리 카페 '빵그레'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원각 경남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장은 "일본과 이탈리아 등에는 치매노인이나 장애인이 주문을 받는 식당도 있다"라며 "다양한 국내외 사례를 조사해 사회적경제 내 특색 있는 영역을 운영할 수 있을 듯하다"라고 말했다.

영리 활동을 추구하는 일반 사기업이 아닌 사회적기업은 경계선지능인의 적응이 수월하다. 대안교육기관 '성장학교 별'이 2017년 만든 카페 '아자라마' 직원들은 모두 경계선지능인이지만, 카페 업무에는 어떤 차질도 없다. 부산 거제해맞이역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매일매일즐거워' 역시 사업 규모 확장에 따라, 경계선지능 청년 채용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황태연 매일매일즐거워 대표는 "경계선지능 아이들의 직업을 만들어주기 위해 스마트팜이라는 영역을 수단으로 썼다"라며 "수준별로 포장, AS, 재배·생산 등 다양한 직무에 충분히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약기관들은 그 외에도 △경계선지능 사회적 인식 확산 △시설 입소 시 종합심리검사 의무화 △구체적인 행정지원방안 제시 필요 등 정책제안 관련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오는 9월 시설 내 경계선지능 아동 자립방안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목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 지난달 24일 최진오 창원대 특수교육학과 교수가 경계선지능 학습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 지난달 24일 최진오 창원대 특수교육학과 교수가 경계선지능 학습 사각지대 해소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이창우 기자

◇맞춤형 경계선 교육, 지역대학이 나선다 = 경계선지능인들이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학령기 적절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일반교육에도, 특수교육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종일 헛된 시간만 보내다 오는 경우가 많다. 한 지역대학에서 이러한 교육 사각지대를 메울 방법을 제시했다. 최진오 창원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미국은 일반교육과 특수교육 경계를 다루는 분야가 세부 전공으로 있을 정도지만, 한국은 죄다 '학습부진아'로 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교육청이 디딤돌 교실, 학습클리닉센터를 통해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좋은 제도지만 아쉬운 점은 명확하다"라며 "지도교사들이 경계선지능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교육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현장 교사로 일했던 최 교수가 경험을 바탕으로 내놓은 진단이다.

그가 찾은 해법은 간단하다. 전문성을 가진 대학이 필요한 곳마다 인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원대 특수교육학과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반드시 사회·교육봉사를 하게 돼 있다. 지금까지 학생 자율에 맡겼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경계선지능 아동 교육 수요가 있는 곳에 보낼 계획이다. 교육봉사장소는 어디든 가능하지만, 학생들은 봉사 전에 경계선지능 아동 교육에 필요한 맞춤 교육과정을 밟아야 한다.

특수교육학과 졸업생들이라고 모두 특수교육기관에 취업하지는 않는다. 최 교수는 "졸업생 중 3분의 2 이상은 일반학교 내 특수학급 교사로 가는데, 경계선지능 아동이 매우 많이 모이는 장소"라며 "이들이 경계선지능에 대한 이해 없이 교육 현장으로 나가면 경계선지능 학습 사각지대 문제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봉사를 통해 곳곳의 학습 사각지대를 없애고, 특수학급 교사로 취직한 뒤에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최 교수는 "대학은 지역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믿는데, 현재는 접점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일은 지역사회와 협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얼마나 수요가 있을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교육청 등 관련 기관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주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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