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필봉산 기운 머금은 약초
보기만 해도 절로 힘 솟는 듯
동의보감 연합 전시 특별전
허준 등 한의학 역사 한눈에
나라별 전통의학도 볼거리

이름만 떠올려도 보약 한 첩을 지어 먹은 듯 개운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산청한의학박물관이 그렇습니다. 박물관은 왕산과 필봉산 자락 산청 동의보감촌 내에 자리한 까닭에 주위 좋은 기운이 몰려 있어 둘러보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더욱더 좋습니다. 산청읍내를 지나 왕산으로 가는 길은 산에 안기는 기분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동의보감촌 표지판과 함께 동의문(東醫門)이 나옵니다. 본격적으로 한의학의 세계로 한걸음 옮기는 기분입니다.

◇불로장생의 기운이 몰려 있는 한의학박물관과 동의보감촌 = 동의문을 지나면 동의폭포가 나옵니다. 폭포 앞에는 그늘막과 함께 읽을거리가 작은 공중전화 부스 크기에 담겨 있습니다. 폭포 앞 주차장 쪽으로 향하면 아늑한 산자락의 맑은 기운이 몰려와 반깁니다. 불로문(不老門)을 지나면 한의학박물관과 연결된 엑스포주제관이 나옵니다. 주제관 앞에는 큰 행사를 펼칠 수 있는 넓은 잔디 광장이 있습니다. 잔디 광장 주위에 한의원과 식당 등이 에둘러 있습니다.

주제관 앞에는 다양한 약초들이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이름표와 더불어 약초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약초를 먹은 듯 힘이 솟습니다. 약초들 사이를 지나면 의생 남녀 1쌍 조형물이 동의보감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다부진 눈매와 몸짓이 열심히 의학을 배우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 산청 동의보감촌에 있는 엑스포주제관 입구 의생(醫生) 조형물.<br /><br /> /김종신 시민기자
▲ 산청 동의보감촌에 있는 엑스포주제관 입구 의생(醫生) 조형물. /김종신 시민기자

◇BC 3300년 아이스맨 <외찌>를 만나다 = 주제관으로 들어서자 곤충전시실이 나옵니다. 자연의 숨은 주인공인 곤충을 자세히 살필 기회입니다. 다양한 곤충 표본들이 화려한 빛으로 유혹합니다. 어찌나 많은지 헤아리다 멈췄습니다. 새끼를 위해 먹을 것(나뭇잎)을 겹겹이 접어서 안전한 요람을 만든 후 알을 낳는 거위벌레를 비롯한 자식 사랑이 큰 곤충들의 이야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곤충의 세계를 벗어나 아이스맨 외찌 전시실로 걸음을 옮기자 한가운데 미라(복제품)가 눈길과 발길을 이끕니다. 약 45세로 추정되는 외찌는 알프스 계곡에서 발견된 미라입니다. BC 3300년 쯤 살았던 아이스맨 외찌가 지닌 물품과 입었던 옷 등으로 당시를 재현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덩달아 외찌가 숨기고 있던 의학 비밀이 한 꺼풀 풀어지기도 합니다.

◇세종에게 저지방육류를 처방하다 = 아이스맨 외찌와 이별하고 2층으로 올라가면 나라별 전통 의학이 신세계처럼 펼쳐집니다. 기원전 2500년쯤 고대 인도와 스리랑카, 네팔 등에서 사용한 찜질기는 신기합니다. 한편으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다는 까닭으로 이런 나라들이 미개하리라는 편견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 소개를 지나 조선 시대 왕들의 질병 치료와 장수 비결 등이 연이어 걸음을 이끕니다. 세종대왕의 당뇨로 생긴 갈증 해소를 위해 당시 의관들이 내린 처방이 솔깃합니다. 육식을 즐기며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세종을 위해 저지방육류인 닭고기와 양고기, 꿩고기를 먹도록 권하는 의원들의 처방은 비단 세종 임금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귀담아들어야 할 처방이기도 합니다. 주제관을 나와 한의학박물관으로 향하자 황금빛 커다란 거북이 조형물이 반깁니다. 건강과 부자 기운이 밀려오는 느낌입니다. 조형물 주위로 12띠 동물 형상의 분수 조형물이 하늘을 향해 시원한 물을 뿜어냅니다.

▲ 산청 동의보감촌 엑스포주제관과 한의학박물관 사이에는 부와 건강을 상징하는 초대형 거북이 조형물이 있다.
▲ 산청 동의보감촌 엑스포주제관과 한의학박물관 사이에는 부와 건강을 상징하는 초대형 거북이 조형물이 있다.

◇<허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 한의학박물관은 주제관 뒤편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습니다. 시원한 그늘막을 따라 걸어갈 수 있지만, 주위 풍광을 둘러보며 갈 수 있는 유리 엘리베이터(경관 보도교)도 있습니다. 한의학박물관 앞에는 류의태 동상이 있습니다. 인기리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으로 나오는 유의태는 허준보다 후대 사람이지만 산청에서 태어나 신의(神醫)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의술에 뛰어났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스승의 몸을 해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허구입니다. 이곳 동의보감촌 산책로에도 '스승을 해부한 제자 이야기'라며 설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물이 있습니다. 허구와 진실이 혼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왼편에서 동의보감 연합 전시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동의보감을 주제로 요즘 사람들이 표현한 다양한 민화가 동의보감의 의미를 되뇌게 합니다. 한지에 그려진 이유주의 민화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습니다. 뚱한 표정의 곰 앞에 팔짱을 낀 고양이(?)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떤 상황인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천하의 보배는 마땅히 천하가 함께 가져야' = 특별전을 나와 본격적으로 전시실로 향하면 먼저 한의학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지나가는 걸음걸음 전시물들이 알려줍니다. 한의학 형성 과정을 접하고 나면 동의보감을 만든 허준을 비롯한 숨은 공로자와 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조선의 허준이 쓴 것이다. 천하의 보배는 마땅히 천하가 함께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니 허준 선생의 공이 무척 크다." 청나라에서 <동의보감>을 가져가 편찬한 능어(凌魚)가 서문에 쓴 글입니다. 문득 코로나19로 지구촌 사람 모두가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개발된 백신을 독점하는 이른바 선진국들의 행태가 떠오릅니다. 인류의 위기 앞에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도 백신을 생산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제약회사에서 그 기술을 이웃과 함께하기는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도 다시금 <동의보감>의 가치가 돋보입니다. 인근 중국과 일본에서도 <동의보감>을 가져가 자기네 나라말로 번역하고 편찬해 해당 민중의 아픔을 어루만졌습니다.

▲ 산청 동의보감촌 허준순례길에 있는 '해부동굴'. 인기리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은 스승인 류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허구다.  /김종신 시민기자
▲ 산청 동의보감촌 허준순례길에 있는 '해부동굴'. 인기리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은 스승인 류의태의 몸을 해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허구다. /김종신 시민기자

◇S라인, V라인을 만드는 날씬 한방(韓方) 법도 있다 = <동의보감> 편찬 과정을 둘러보고 나오면 당시 한의원 풍경을 재현한 공간이 나옵니다. 잠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착각 속에서도 문득 한의원 문지방을 넘을 수 없었던 이른바 곤궁한 처지인 사람들은 어찌했을까 생각하니 먹먹합니다. 시간 여행 공간을 지나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동의보감을 엿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나옵니다. "동의보감은 역대 현인들의 책을 편술하여 처방을 잘 정리하고, 조제한 약을 수집하여 2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백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 있으니 의가의 귀중한 보배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판 <동의보감> 발문에 쓴 글이 <동의보감> 의미를 느끼게 합니다. 한편 "오른손을 머리 위로 넘겨 왼쪽 귀를 14번 당긴다"라는 <동의보감>에 나오는 건강 지키는 방법(안마도인·按摩導引)이 발걸음 멈추고 따라 하게 합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으로 약초들이 올라가는 걸음걸음 눈길을 앗아갑니다.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1층과 달리 각종 체험 코너들이 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게 합니다. 아이들과 퀴즈로 '약초를 찾아라'를 통해 전설의 약초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시실 나오는데 다이어트 한방비법이 걸음을 꼭 붙잡습니다. 'S라인, V라인을 만드는 날씬 한방법'이라는 글귀가 볼록 나온 아랫배를 바라보게 합니다.

◇육중한 몸에 기름칠한 듯 = 전시실을 나와 창 너머를 바라봅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광이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박물관을 나서자 다시 한번 왕산의 기운이 아늑하게 안아줍니다. 박물관이 예고편이었다면 박물관을 나서 기(氣) 바위 있는 곳으로 향하는 곳은 본편입니다. 눈길과 발길을 붙잡지 않는 게 없습니다. 곳곳에 쉬어가기 좋은 쉼터가 있습니다. 산책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을 부담 없이 걷게 합니다. 덕분에 육중한 몸에 기름칠하듯 동의보감촌을 거닐자 한결 걸음이 더 가벼워집니다. /김종신 시민기자(에나 진주 이야기꾼)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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