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감독·친구들
삶의 태도·고민 담은 다큐
여성의 눈으로 세상 보고
변화 이끄는 목소리 내기

"여성들도 안전하게 밤길을 다닐 권리가 있다."

지난 6월 30일 개봉한 페미니스트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은 길거리 집회 참석자들이 이 같은 구호를 외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집회 속 풍경이 어쩐지 좀 옛날 모습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배경은 1990년대 말. 집회 현장에서는 지금 들어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구호(여자니까 집에 일찍 들어가라고? 너나 일찍 들어가!)가 적힌 손팻말이 보인다. 참석자들이 팻말을 위아래로 흔든다. 여성이 주를 이룬 집회여서 여기에 함께한 남성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여성들 목소리가 더 크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힘주어 여성 권리를 외친다.

등장인물은 이 영화를 만든 강유가람 감독과 그의 친구 5명이다. 모두 페미니스트다. 강유 감독은 영화에서 먼저 자신이 페미니스트가 된 전후 과정을 밝힌다.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진 뒤로 강유 감독은 대학에 들어가 풍물패에 가입했다. 동아리가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알고 가입한 건 아니었다. 평소 좋아하던 선배들이 있는 동아리여서 시작하게 된 활동이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민중', '민족자주'라는 단어는 그에게 낯선 단어였다. 그저 집회에 가서 악기를 치는 게 즐거웠다. 그러다가도 세상이 나아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는 더없이 기뻤다.

▲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포스터. /갈무리
▲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 포스터. /갈무리

이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리 외부활동을 하던 도중 사회단체 활동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가해자는 존경받던 사람이었다. 친한 선배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해자를 피해 다녔다. 통일도 중요하고 노동자 연대도 중요했지만, 자신 안에 있는 부대끼는 감정을 풀어내는 게 더 중요했다. 풍물패에서 눈을 돌려 세상을 봤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활동이 꽤 있었다. 페미니즘은 감독 자신의 성추행 경험을 정확히 설명해줬다. 가부장제의 오랜 억압에 맞서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덕분에 그는 더는 자신을 탓하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년 뒤 동아리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자신에게 힘을 준 여성들을 믿고 사건 해결을 돕고자 목소리를 냈다. 이후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만났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페미니즘 행사를 찾아다녔다. 여러 경로를 통해 페미니스트 친구를 사귀었다.

감독은 문득 떠오른 옛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라도와 제주도 등으로 떠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장 먼저 만난 친구는 키라(kira)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허은주 씨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했던 그는 전북 정읍에서 수의사로 일한다. 대화를 안 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시작한 게 수의사라고 한다. 상담소에서 일할 때는 피해사례를 듣는 게 힘들었고, 때로는 누군가와 토론하고 설득하는 게 싫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게 싫을 때도 많았다. 그랬던 그는 영화가 제작되던 당시 정읍 소싸움 반대운동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싸움을 계속하고 있던 것이다.

▲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에 등장하는 집회 장면.  /스틸컷
▲ 영화 <우리는 매일매일>에 등장하는 집회 장면. /스틸컷

감독은 김이승현(짜투리)·유여원(어라)·김혜정(오매)·강정임(흐른) 씨도 잇달아 찾아간다. 그들 근황과 과거 활동 이력 등을 소개한다. 감독이 전 직장과 대학원 등에서 만난 이들이다. 그들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던 사법부를 비판하는 시위에 참석하거나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결정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사회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영화는 이들에게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만나서 행복해진 것 같다. 페미니즘 몰랐다면 내가 무슨 존재로 어떻게 살아갔을까 싶다.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보통 국면에 대해서 더 나은, 좋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조금이라도 액션을 더하는 것이다. 사회 목소리에 하나라도 더 얹혀보는 게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 같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너무 재밌었다. 행복한 순간이 지금까지 힘든 것들을 버티게 해주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은 자기성찰적이다. 일상의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산다"라고 했다.

감독은 지인들의 솔직한 고민과 삶의 태도를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났다. 카메라 앞에 서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면서 음악을 만들어 선보인다. 음악가인 강정임 씨에게 작곡과 노래를 부탁하고 가사는 두 사람이 같이 썼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무렵에 이들이 함께 만든 노래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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