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초교생 피아노 과외하다
특수교육·음악치료학에 주목
"장애인도 예술가 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창단·활동 확장
창원한마음병원 '직고용'까지

"음악은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경계가 없지요."

정지선(39) 사단법인 희망이룸 대표는 밝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지난 1일 창단한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의 뿌리인 희망이룸 장애인오케스트라를 만든 당사자다. 10년 넘게 지역에서 발달장애인과 함께 음악활동을 이어왔다. 그를 12일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에 있는 희망이룸 사무실에서 만났다.

▲ 정지선 희망이룸 대표가 12일 오전 희망이룸 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정지선 희망이룸 대표가 12일 오전 희망이룸 센터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장애인 오케스트라 새 옷 입기 3번째 = 정 대표는 장애인이 음악활동을 할 수 있고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장애인 친구들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한 지 어느덧 10년 넘었네요. 그 사이 세 번이나 단체 이름을 바꾸며 새 옷을 입었지요."

그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서 갔다. 도내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오케스트라를 출범시키고 유지해 온 세월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름만 세 차례 바뀌었다. 한마음오케스트라(2010년)-희망이룸장애인오케스트라(2012년)-창원시 장애인오케스트라(2017년)-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2021년).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센터로서 주요 역할을 하는 희망이룸은 바리스타·제과제빵 이외에 음악교육과 오케스트라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활동센터를 찾는 이들이 바우처를 활용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지역 내 학교·관공서·기관 등을 찾아 장애인식개선 활동 중 하나로 연주회를 이어왔다.

실력을 키우며 전국과 국제 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청와대 초청 공연을 비롯해 대만 콘서트, 러시아 공연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러시아 야쿠티아 국립음악원 초청으로 국제워크숍 초청공연도 하고 경연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 지난 1일 열린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 창단음악회.  /창원한마음병원
▲ 지난 1일 열린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 창단음악회. /창원한마음병원

◇직업인 장애예술인 탄생의 순간 = 정 대표는 장애인 자립을 돕고 직업인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2019년 창원시 장애인일자리 사업 수행도 지난 3월에 끝났기 때문이다.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하충식 창원한마음병원 이사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정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그가 쌓아온 저력과 추진력이면 충분해 보였다. 정 대표가 '장애인 직고용'을 제안했더니 하 이사장은 단번에 뜻을 알아차리고 수락했다.

"너무 간절했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으니까요. 친구들 실력은 점점 늘어가고 무대 경험도 쌓여 자신감이 충만한 시기였거든요. 일면식도 없는 하충식 창원한마음병원 이사장을 찾아갔어요. 제 이력서와 우리 법인 소개서 두 장을 들고 말이죠."

드디어 지난 1일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 이름으로 창단 연주회를 했다. 플루트 연주자 박종호(23)·클라리넷 연주자 김지윤(23)을 비롯해 20명은 병원 직원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이날 창단식에는 최경숙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과 안중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원장, 신동일 한국장애인문화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경훈 경남지사장은 '장애인을 직고용해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경우는 국내 최초'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 정규직 단원은 하루 4시간 주 5일 근무를 한다. 월급도 받고 4대 보험 적용도 받는다.

"가정 형편상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음악인으로 살고자 했던 친구가 제조업 공장에 일하러 갔다가 그만두고 다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어요. 엄마도 울고 그 친구도 기뻐서 같이 울었어요."

희망이룸 공간서 연습에 매진 중인 단원들은 12일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 연습에 한창이었다. 매주 수요일 창원한마음병원 로비에서 연주회를 열기 때문이다. 어느덧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신청곡을 주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또한 전국에서 사례를 배우고 싶다고 연락이 온다. 창단 음악회를 열던 날도 울산의 한 병원장이 다녀갔고, 장애인고용공단 각 지사에서도 초청공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 12일 희망이룸 센터에서 연습하고 있는 단원들. /김은주 인턴기자 kej@
▲ 12일 희망이룸 센터에서 연습하고 있는 단원들. /김은주 인턴기자 kej@

◇음대 졸업 후 처음 만난 발달장애 아동 = 정 대표가 장애인과 더불어 살게 된 계기는 음대를 졸업한 이후 과외를 갔다가 만난 학생 때문이었다. 창원대 음악학과를 졸업한 그가 특수교육대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됐다.

"처음에 피아노 과외선생을 구한다고 하기에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찾아갔더니 발달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였어요. 부모님은 피아노 전공자인 저에게 교육을 부탁하셨죠. 어떻게 하면 그 아이를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싶어 장애교육 서적을 뒤지고 자료를 찾던 끝에 결국 특수교육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특수교육대학원에 갔더니 대부분 아동학이나 심리학 전공자들이었다. 그처럼 음악학과 출신이 찾았으니 담당 교수도 드문 경우라고 말할 정도였다. 음악치료학에 저절로 관심이 갔다. 열정이 넘쳤다. 정 대표는 2010년 임신한 몸을 이끌고 매주 1회 수업을 듣고자 서울까지 갔다. 전국서 유일하게 숙명여대에 음악치료 대학원 과정이 있었다. 올해 박사과정에 합격해 공부도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장애예술인 축제를 열어보고 싶다는 게 소원이자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청소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음악·미술·복합 등 각 장르별 장애예술인들 공연도 하고 작품 전시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요. 새로 길을 여는 일에 저는 항상 설레고 기쁩니다. 늘 마법 같은 순간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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