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형제복지원 사건 무대로
공권력 아래 펼쳐진 비극
인권유린·가해자 비판

죽은 사람도 찾아준다는 '다 찾아 흥신소'. 해병대를 다녀온 전직 경찰의 철중과 프리랜서 PD로 일했던 수미가 차린 이 흥신소에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 이곳에 온 주인공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노인 김봉남이다. '죽은 사람'을 찾고 있다며 커다란 짐가방을 들고 흥신소를 방문한 그는 "여기가 흥신소가 맞느냐"고 여러 차례 묻더니 찾는 사람이 '30명'이라고 얘기한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그것도 죽은 사람 수십 명을 찾는다는 말에 흥신소 직원들은 기겁한다. 들고 온 짐가방에서 삽 한 자루를 꺼내 든 김봉남이 삽을 마구 휘두르며 사람을 찾아내라고 소리친다. 그러고는 생각지 못한 얘기를 툭 꺼낸다. "내 잘못을 반성하고 싶다니까.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라고! 이 손으로 죽이고, 내가 묻었다고!"

오는 18일까지 이어지는 '제13회 통영연극예술축제'의 막이 오른 지난 9일, 지공연 협동조합이 무대에 올린 개막작 <반성문, 살인기억>의 한 장면이다.

▲ 제13회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 당일 무대에 오른 지공연 협동조합의 <반성문, 살인기억>.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 제13회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 당일 무대에 오른 지공연 협동조합의 <반성문, 살인기억>. /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극작가 김환일이 집필하고, 연출가 장봉태가 연출한 이 연극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된 국가 최대 부랑자 강제수용시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가 부랑인 선도를 목적으로 장애인과 고아를 비롯해 노숙자,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 등 무고한 시민을 마구잡이식으로 끌고 가 불법 감금, 강제노역, 구타, 학대, 성폭행을 일삼은 사건인데, 아무런 죄 없는 시민이 수용소로 매년 끌려갔다. 이곳으로 잡혀간 이들은 3100명이 넘는다.

연극은 택시기사로 일하던 김봉남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풀어낸다. 연극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치매 환자'로 설정된 김봉남이 "나는 죄인이다"라고 거듭 얘기하는 부분이다. 철중과 수미는 김봉남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끌려간 것일 뿐 당신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는 점, 사람을 죽인 사람은 따로 있다는 점도 함께 덧붙인다. 피해자이면서도 자신을 가해자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김봉남을 통해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목으로,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장면인 것이다.

철중과 수미가 연극 막바지에 단둘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통해서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대놓고 지적한다. 죄를 짓고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가해자들을 비판한다. 또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가해자들도 꾸짖는다. 세상에 김봉남이 이뿐이겠느냐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도 드러낸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부산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머릿속에 되새기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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