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곶 산양, 옛 산양초를 예술 창작 공간으로…입주작가 7명 올해 말까지 활동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삼달초 분교 고쳐 전시관 운영…한 해 관람객 10만 명

인구 감소 등으로 경남 도내 폐교가 늘고 있습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를 '미활용 폐교 재산 감축의 해'로 정했습니다. 지난해 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도내 미활용 폐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발생하는 폐교를 어떻게 잘 활용해나갈지, 경남지역을 포함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8차례에 걸쳐 찾아 나섭니다. 지역공동체가 함께 만들었던 학교가 그저 허물어지지 않고, 이제는 독서·예술·치유 공간 등 새로운 지역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내고, 지역 특성을 반영한 예술 활동이 제주 지역 폐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제주 서귀포 성산읍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그러하다. '예술곶 산양'은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고인이 된 김영갑 사직작가의 제자가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레지던시 공간 = '예술곶 산양'을 운영하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서부권사무소 관계자는 "제주도에 레지던시 공간이 부족해서 유휴 시설을 확인해 2017년 옛 산양초등학교가 있던 곳에 예술 창작공간을 마련하기로 결정해서 지금 형태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재단은 2019년부터 국내외 입주작가를 위한 예술 공간 설계 연구를 했고, 작년 시범 운영을 거쳐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작가 2명, 제주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5명을 선정했다. 작가들은 지난 3월부터 오는 12월까지 9개월간 활동한다.

'예술곶 산양'은 학교 공간을 최대한 살려서 사무실, 전시실, 창작실, 교육실, 아티스트 게스트룸 등으로 꾸몄다.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전경.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전경.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마을 자료 전시 공간.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마을 자료 전시 공간.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전시실, 창작실은 기존 교실을 증축했다. 학교 창문을 그대로 살려서 일반 전시장과는 달리 빛이 그대로 들어오게 돼 있다.

입주작가들이 지내는 아티스트 게스트룸은 과거 관사, 창고, 화장실 공간 등을 새롭게 고쳐서 숙소로 바꿨다.

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아트 큐브'라는 작은 전시 공간을 둬서, 지난해 입주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민 역사 기록도 = 재단은 예술 창작 공간을 꾸미는 것과 동시에 '예술곶 산양'이 들어선 산양리 마을 자료 수집 작업도 진행했다.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이곳의 과거 모습을 모았다. 사무실 공간에 따로 제주 산양리 마을 자료들을 전시해뒀다. '산양리 삼촌네', '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등의 제목으로 결혼식, 체육대회 등 산양리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들이 하나하나 전시돼 있다. 산양초등학교 역사도 더듬어서 '1995∼2020 폐교에서 개관까지'라는 자료 전시도 하고 있다. 주민들은 부모님이나 이웃,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이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2년에 한 번 운동장을 빌려서 단체 행사를 진행할 때도 이곳을 방문한다.

재단은 지역 주민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산양 주민의 음식 문화를 기록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기억 밥상>이라는 책자를 만들었다.

지역 초등학생과 함께 '답이 없는 교실'이라는 미술 수업도 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내면, 입주작가가 맞히는 것으로, 창의적인 활동을 돕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재단 서부권사무소 관계자는 "조사를 통해 지역민의 문화 욕구를 파악해서, 앞으로 어떤 문화 지원 활동을 할지 결정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입주작가로 활동하는 박도연 작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입주작가로 활동하는 박도연 작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입주작가로 활동하는 이한나 작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한경면 '예술곶 산양' 입주작가로 활동하는 이한나 작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지역 소재로 한 예술 활동 = 입주작가들은 '예술곶 산양'에서 제주라는 공간을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고 있다.

박도연(29) 작가는 제주 흙, 조개, 전복, 성게 등을 재료로 도자기를 빚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박 작가는 "2007년 중학교 2학년 때 폐교였던 이곳 산양초교에서 예술가의 도자기 수업을 들었다. 이후 고등학교도 도자기를 전문으로 하는 곳으로 진학했고, 대학·대학원까지 이어졌다"며 "남다른 인연을 가진 이곳에서 전통을 살리고, 제주를 담아내는 도자기를 빚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나(38) 작가도 제주와 관련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작가는 "예술곶 산양에 오면서 제주 환경, 해양 동물 등과 관련한 작품을 구상했는데, 최근에 제주 4·3평화공원에 다녀온 후에는 4·3과 관련한 설치, 영상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찾는 이가 많다. 삼달초등학교 분교를 고쳐서 만든 곳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제주를 주제로 한 사진 작업을 20여 년간 한 고(故) 김영갑(1957∼2005) 사진작가의 작품을 2002년부터 전시하고 있다. 많을 때는 1년에 10만 명, 적을 때는 6만∼7만 명이 다녀간다.

작가가 제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제주의 오름, 나무, 풀꽃 등을 주제로 삼았다.

▲ 제주 성산읍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전시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성산읍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전시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중산간을 표현한 미로형 정원.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제주 중산간을 표현한 미로형 정원.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폐교 공간을 제주를 한껏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해냈다. 운동장이었던 공간이 특히 그러하다. 운동장에는 수국, 감나무, 팽나무 등을 빼곡하게 심었는데, 제주 중산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중산간은 해발 100∼300m 고지대로, 밭 사이 농로가 미로처럼 얽혀있는 모습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박훈일(53)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관장은 "고등학교 시절 김영갑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 오셔서 사진 작업을 하시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 후에 선생님께 사진을 배웠다. 이 공간을 만들 때도 소통을 했었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학교 정원을 중산간처럼 표현하고자 하셨다. 중산간의 미로처럼 얽힌 길이 결국 어디서든 만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 작업에 애정을 많이 쏟으셨다"고 말했다.

갤러리 앞쪽에는 정원을, 뒤쪽에는 돌계단을 만들어 관람객들이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관사로 이용하던 공간은 무인찻집으로 바뀌었다.

▲ 김영갑 작가의 제자인 박훈일 관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김영갑 작가의 제자인 박훈일 관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갤러리 전시 공간은 3개로, 1·2전시관, 현관 및 영상실로 돼 있다. 지난 17일 방문 당시에는 2005년 김영갑 작가의 마지막 서울 전시 '내가 본 이어도 1·2·3' 등을 선보이고 있었다.

전시 공간에도 제주 돌, 제주 옛 초가집 기둥 등을 가져다 두고, 제주 오름 사진과 어우러지게 했다. 돌은 전시장의 습기를 가시게 하고, 공간의 울림도 막는 장치라고 했다.

박 관장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제가 갤러리를 맡게 됐다. 갤러리 마무리 작업을 하고 후원회도 만들고, 2014년에는 법인을 만들었다. 500여 점 이상인 선생님의 작품을 잘 지키고 보존해서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 사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묵묵히 담아온 작가 정신을 이제 그의 제자가 이어가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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