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참상·백성 희로애락 담은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
진주박물관 전시로 위로 전해 "코로나로 힘든 우리와 닮아"
주요 장면 그림으로 쉽게 풀고 다양한 영상물로 감상 더해

'길에서 거적에 덮인, 굶어 죽은 시체를 보았다. 그 곁에 두 아이가 앉아서 울고 있어 물었더니 제 어미라고 한다. 병들고 굶주리다 어제 죽었는데 그 시신을 묻으려고 해도 제 힘으로 옮길 수 없을 뿐더러 땅을 팔 연장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잠시 후 나물 캐는 여인이 광주리에 호미를 가지고 지나갔는데 두 아이가 하는 말이 저 호미를 빌린다면 땅을 파서 묻을 수 있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슬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1594년 2월 14일)

이는 쉰이 넘은 나이에 임진왜란을 겪은 양반 오희문(1539∼1613)이 쓴 난중일기 <쇄미록>(보물 제1096호)의 일부다.

전쟁 통에 어미를 잃은 아이들의 참상을 그대로 옮겼다.

쇄미록이란 '보잘것없는 사람이 떠돌아다니며 쓴 기록'이라는 뜻으로 <시경(詩經)>에서 유래한다.

오희문은 1591년 11월 27일 한양의 집을 떠난 이후 전북 장수에서 임란 소식을 접한다. 1년 뒤에 헤어졌던 어머니와 처자식을 한양에서 만난 뒤 다시 집을 떠나 충청도, 강원도 등을 떠돌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일기로 적었고 이 일기는 1601년 2월 27일까지 꼬박 9년 3개월간 이어진다.

임진왜란을 개인이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비슷하지만 일반 백성의 삶을 더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기획특별전으로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을 열고 있으며 오는 8월 15일 전시를 마무리한다. 코로나 시국이라 문을 닫은 날도 있어 관람객은 많지 않지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 신영훈 작 '호미를 빌려 어미를 묻고'.
▲ 신영훈 작 '호미를 빌려 어미를 묻고'.

이번 특별전은 국립진주박물관이 2018년 새롭게 역주한 <쇄미록>(전 8권, 사회평론아카데미) 출간을 계기로 기획됐다.

이번 전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기록물 한 가지로 특별전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고서 특별전시의 경우 읽기도 어려운 책들과 유물이 공간을 채우지만 <쇄미록> 전시는 달랐다. 그 공간을 영상으로 채우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또 <쇄미록> 의 주요 장면은 수묵인물화가로 유명한 신영훈 작가의 21점 그림으로 담아냈다. 9년 3개월 동안의 전반적인 내용을 그림책을 넘기듯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

오희문은 평범한 양반이다. 그러나 큰아들 윤겸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손자인 달제는 병자호란 때 절의를 지키다 청나라에 끌려가 죽은 삼학사 중 한 사람이다. 이후 그의 집안은 서인(소론)의 핵심 가문으로 성장한 점에서 평범한 양반만은 아니다.

1층 전시실을 들어서면 먼저 '오희문 난중일기 <쇄미록>-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문구와 함께 어둡고 긴 복도가 나오고 벽면은 오희문의 글씨로 장식돼 있다. 암울하고 힘들었던 그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복도 끝에는 '전시를 열며'라는 코너가 나온다. 국립진주박물관이 이번 특별전을 열며 관람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오희문 일기에서 따온 글로 대신하고 있다. '난리 이후로 친구와 친척들 가운데 적의 칼날에 죽지 않으면 병으로 죽은 사람이 매우 많다. (중략) 좋은 시절에 평소 서로 어울려 젊은이와 어른이 한데 모여 놀면서 술에 취해 떠들던 일을 이제는 다시 하지 못할 것이다. 매번 이것을 생각하면 어찌 슬프고 안타깝지 않겠는가.'(1593년 11월 15일)

'전쟁으로 삶의 터전이었던 한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곤궁한 삶을 연명했던 오희문의 일상은 코로나19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우리의 현재와 닮았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본군의 칼날, 굶주림과 추위, 질병 속에서 오희문의 가족들은 하루, 또하루를 살았다'라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 신영훈 작 '밤새도록 온 가족이 즐겁게'.
▲ 신영훈 작 '밤새도록 온 가족이 즐겁게'.

그리고 첫 전시물로 오희문과 아들 윤함의 초상, 해주오씨 직계도가 나오며 오희문과 그의 집안을 소개한다.

이어 3가지의 영상과 전시물이 등장하는데 이번 특별전의 백미다.

'임진왜란, 그 고난의 기록'(상영시간 2분 20초)이란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 영상은 인간의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나무 오브제를 배경으로 오희문이 겪은 임란의 고난을 표현하고 있다.

또 '기록하다' 프로젝션 매핑 영상을 통해 전란 속에서도 매일 일기를 쓰는 오희문의 모습을 그려냈고, '오희문 그날'(상영시간 10분)이란 인터랙티브 가상현실(VR) 영상을 통해 전쟁 중에도 계속되는 오희문의 일상, 그 속에 닮긴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있다.

신영훈 작가가 그린 21점을 통해서는 9년 3개월간 오희문의 주요 일상을 원문(해석)과 함께 볼 수 있다.

그중 막내딸을 잃은 오희문은 '단아는 지난밤 초경 뒤로 다시 두통이 생겨 아침까지 아프다고 난리다. (중략) 새벽 이후로 병세가 너무 심해졌다. (중략)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사시(오전 9∼11시)에 훌쩍 떠나버렸다. 붙들고 통곡해 보지만 한없는 슬픔을 어찌하겠는가'(1597년 2월 1일)라고 적었다.

그리고 5일 뒤 그는 아이를 땅에 묻고 '오후에 발인 행렬이 왔다. (중략) 평소에 슬하를 떠나지 않던 아이를 이제 산골짜기에 묻으니, 외로운 넋이 컴컴한 무덤 속에서 슬피 울고 있겠지. 더욱 지극히 애통하다'(1597년 2월 6일)라며 애통한 심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 프로젝션 매핑 영상 '임진왜란, 그 고난의 기록'.인간의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나무 오브제를 배경으로 오희문이 겪은 임란의 고난을 표현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 프로젝션 매핑 영상 '임진왜란, 그 고난의 기록'.인간의 고통을 상징하는 가시나무 오브제를 배경으로 오희문이 겪은 임란의 고난을 표현하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노모를 만나자 그는 '난리 통에 모자(母子)가 남북으로 떨어져서 8∼9개월이나 생사를 몰랐으니, 오늘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뵈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우리 집 노모와 처자, 형제 자매가 각각 목숨을 보존해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만났으니 기쁨이 어떠하겠는가'(1592년 12월 16일)라고 적었고, 큰 아들을 만나자 '온 가족이 방안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서야 파하고 잤다'(1597년 12월 7일)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울러 <쇄미록>의 주요장면을 요약한 '여정의 시작', '일본군이 쳐들어오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나날들', '한양 잿더미의 참혹함', '불에 타버린 집에 작약꽃만', '호미를 빌려 어미를 묻고', '가난 결혼 축복', '과거급제' 등 21개 장면은 참혹한 전쟁의 참상이 있지만 그속에서도 아들과 딸의 혼례, 손자의 탄생, 아들의 과거 합격 등 희비가 교차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기획자가 부제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고 붙인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어로 엿보는 16세기 오희문의 일상'이라는 코너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를 더했다. 16개 단어 중 '#곰발바닥'이라는 문을 열면 'JMT! 이름값을 하는군'이란 글이 나오고 한 번 더 열면 '1599년 9월 20일 아침식사 전에 곰발바닥을 구워서 두 아이와 같이 먹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과연 명성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발바닥 1개는 감춰두고 자정이 오기를 기다렸다'라며 익살스럽게 정리했다.

전쟁이 끝나 유랑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면서 기록도 끝났다.

기획자는 전시 말미에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오늘은 어떻게 기록될까요?'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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