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처럼 시험만으로 능력 판가름하면
공정한 세상은커녕 야만 사회 될 수도

능력주의가 화두다.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인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새 당대표에 당선되면서 능력주의가 더 부각되고 있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에 출간한 책에서 비롯됐다. 원어로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인데, 일본어로 중역되면서 능력주의로 알려졌다.

번역된 능력주의라는 단어만으로는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어 좀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우수한 성적을 가진 자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사회 이념이다.

능력주의 개념은 귀족사회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영국은 21세기 현재까지도 국왕이 존재하고, 귀족 작위가 수여되는 나라다. 법적으로야 입헌군주제여서 과거처럼 신분사회가 아니고 민주주의 사회이기는 하지만, 사회 전반에 구습이 여전히 잔존해 있다. 그런 사회에 안티테제(antithese)로서 능력주의 개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왕과 양반이 몰락한 지 백 년도 넘은 우리나라에서 능력주의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그 젊은 세대의 지지를 받고 30대인 이준석 후보가 보수정당 당대표로 당선이 됐다.

젊은 세대가 능력주의에 호감을 갖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그중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우선, 젊은 세대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양반'이 있다. 최서원(최순실) 씨의 딸이 왕족처럼 구는 꼴을 보며 분노한 이십 대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박근혜를 탄핵시켰다. 그런데 적폐청산을 기치로 새롭게 정권을 잡은 현 정부에서 조국 일가가 등장했다.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조국 전 장관의 자녀들이 조선시대 정승판서 대감의 자녀처럼 보일 것이다. 소위 '부모 찬스'를 써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 찬스' 같은 거 다 없애고 오로지 시험을 쳐서 성적으로만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젊은 세대는 게임에 익숙하다. 어쩌면 게임은 공기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게임은 능력주의가 잘 구현된 것처럼 보인다. 게임에서는 누구나 같은 룰에서 승부를 낸다. 게임에서는 노력과 실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사회도 게임처럼 되길 바란다. 능력 있는 사람이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 능력이 '잘난 부모를 갖는' 것처럼 세습이 아니라, 오직 본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어야 한다.

젊은 세대가 현 정부에 반감을 갖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능력주의에 호감을 갖는 것에는 걱정이 된다. 시험 성적 1점 차이로 높은 사람은 보상을 받고, 낮은 사람은 보상을 못 받는다. 보상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몰린다. '능력'이 약간만 모자라도 하층으로 밀려나고, 보상을 받는 사람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착취'를 해가며 노력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대다수 게임을 해보면 안다. 아무리 상위 랭킹에 드는 유저라고 해도 잠시 게을리하면 순위가 한참 떨어지게 된다.

게임의 룰처럼 시험으로 능력을 판가름한다고 세상이 공정해지지 않는다. 능력주의를 추구하면 경쟁의 야만 사회가 될 수 있다. 정치인이 능력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올바른 정치인이라면 능력이 없더라도 살만한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

게임도 <리니지>처럼 능력치 높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타인을 도살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동물의 숲>처럼 모두가 평화롭게 소통하며 즐기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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