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아버지 만나는 순간 딸의 절박한 심경 대변한 음악
오페라 〈킹 아서〉 대표 아리아 3막 2장 '서리의 장면'에 흘러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노래, 스산한 분위기로 긴장감 더해

2021년 올해 열린 제93회 아카데미는 국내 영화계에 또 한번 큰 성과와 의미를 가져다 주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작년,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등을 휩쓸며 한국 영화의 수준을 세계에 내어 보였다. 하지만 연기 부문의 수상이 없어 아쉬웠던 차 올해 영화 <미나리>에서 열연한 윤여정 배우가 호명되며 그 아쉬움을 시원히 날려준 것이다. 그리고 올해의 남우주연상은 바로 '앤서니 홉킨스', 영화 <더 파더>로 1992년 <양들의 침묵>에 이어 생애 두 번째 수상이다. 불과 25분 남짓이라는, 역대 수상자들 중 가장 짧은 출연 분량으로 잔인한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연기하며 모두를 아연하게 했던 앤서니, 그랬던 그가 이번엔 화면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마저 잊어가는 노인 앤서니가 되어 피가 아닌 눈물을 앗아간다.

영화가 시작되고 어디론가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앤이 향하는 곳은 그녀의 아버지 앤서니의 집, 그리고 방문을 열어젖힌 그녀에게 '어쩐 일이냐?'며 헤드폰을 벗기까지 들려오는 선율이 있다. 그 선율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긴박한 가운데 이어지는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여 마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의 도입부인 듯 서늘한 기운이 넘친다. 이는 마치 앤의 심정, 빨리 아버지를 만나 할 말을 해야겠다는 급박함과 치매를 앓는 그로 인해 자신이 희생해야 할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들려주듯 간절하다. 이 곡은 바로 바로크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1659~1695)의 세미 오페라 <킹 아서>(King Arthur) 중 3막에 흐르는 'What power art(are) thou(you)?', 일명 'The Cold Song'이라 불리며 오페라 <킹 아서>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선율이다. 영화음악 작곡가 '마이클 니만'에 의해 'Memorial'이라는 곡으로 리메이크되어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의 메인 테마가 되었으며, 팝의 거장 '스팅'이 직접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던 명곡인 것이다. 여기서 '세미 오페라'(Semi Opera)란 일반적인 오페라가 지녔다 할 음악적 요소보다는 연극적인 요소가 부각된 오페라를 일컫는다. 즉 오페라의 상당 부분을 노래가 아닌 대사로 이어간다는 것으로 연극을 사랑했던 영국이라 가능했던 것이기에 '잉글리시 오페라'라 칭하기도 한다. 영국 최초의 계관 시인 '존 드라이든(John Dryden·1631 ~ 1700)'의 대본을 바탕으로 1691년 초연된 <킹 아서>, 그는 영국의 유명한 전설적 위인으로 모두가 그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으로 5~6세기 영국을 외세로부터 지켜낸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민담과 전설은 넘쳐나 수많은 예술 장르에서 그를 다루고 있는데 아서 왕 휘하의 기사단을 일컫는 원탁의 기사 이야기와 바위에 꽂힌 왕의 칼 엑스칼리버 이야기는 특히 유명하다. 하니 그의 일화에 영감을 얻은 오페라 역시 다수 존재하여 프랑스 작곡가 쇼숑의 오페라 <킹 아서>, 포르투갈의 바체비츠가 작곡한 <아서왕의 모험> 등 많은 작곡가들이 이 전설적인 인물을 음악으로 다루었다. 하지만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역시 퍼셀의 <아서왕>으로 세미 오페라의 대표작이니 대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작곡가로서의 퍼셀이 창조한 가장 서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선율 또한 가득하다. 이는 아서왕이 이끄는 군대와 침략자 색슨의 전투, 그리고 납치된 사랑하는 여인 에멀린을 적의 수장으로부터 구출하는 이야기이며 5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을 요구하기에 현대에는 음악만으로 구성하거나 극을 대폭 축소한 버전으로 공연하는 추세이다.

▲ 영화 <더 파더>의 스틸 컷.
▲ 영화 <더 파더>의 스틸 컷.

1막: 아서왕이 이끄는 브리턴족과 오스왈드의 색슨족이 결전을 앞두고 있다. 이는 그들 종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전투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 에멀린을 두고 벌이는 두 남자의 결투이기도 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매혹적인 것으로 오스왈드 역시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에멀린의 사랑은 아서왕에게 향해 있다. / 색슨의 오스왈드와 그가 거느린 마법사 오스몬드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때 땅의 정령 그림발드는 오스몬드에게 공기의 정령 필리델은 너무 선하여 전쟁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리고 마법사 오스몬드는 전쟁이 끝난 후 벌을 내릴 것이라 말한다. / 치열한 전투, 병사들의 함성과 말발굽 소리로 가득하고 브리턴이 승전한다.

2막: 전쟁이 끝난 전장에서 숨진 병사들을 안타까워하던 필리델과 브리턴의 마법사 멀린이 우연히 마주한다. 이제 멀린을 따르기로 결심한 필리델은 그림발드의 계략을 폭로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계획이 틀어진 그림발드는 복수를 다짐한다. / 전쟁의 결과를 초조히 기다리는 에멀린, 하지만 오스왈드에게 납치되고 만다. /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브리턴의 병사들 / 아서왕은 사랑하는 에멀린을 구출하고자 협상을 벌이지만 오스왈드는 거절한다.

3막: 드디어 시작된 공격, 하지만 오스몬드의 마법에 밀려 퇴각, 아서왕을 돕기로 약속한 멀린은 에멀린을 찾아가 눈을 뜨게 한다. / 마법의 숲, 그림발드는 우연히 필리델을 발견, 포획하지만 또 한 번 그의 기지에 당하고 만다. 이제 멀린은 필리델에게 마법의 숲을 헤매고 있는 아서왕이 탈출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마법을 부려 아서왕과 에멀린이 잠시나마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나타난 오스몬드, 그 역시 에멀린에게 반하여 갖은 환상과 춤으로 유혹하고 설득해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 영화 <더 파더>의 스틸 컷.
▲ 영화 <더 파더>의 스틸 컷.

이러한 3막의 2장, 이는 오페라 <킹 아서> 중 가장 유명한 '서리의 장면'으로, 큐피드가 얼음 속에 잠자던 콜드 지니어스를 깨우는 장면에서의 곡이 바로 'What power art thou?'다. 본래 베이스 가수가 이 배역을 맡아 하지만 영화 <더 파더>에서는 독일의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1967 ~ )의 목소리로 들려주어 그 스산함을 더한다.

4막: 서서히 숲의 마법을 벗어나려는 아서왕의 군대, 위기를 느낀 오스왈드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진군을 막으려 한다. / 멀린의 도움과 필리델의 안내로 맹렬히 진군하는 아서, 사이렌과 님프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에멀린을 이용한 오스몬드의 마법마저도 극복, 마침내 오스왈드의 성으로 향한 길이 열린다.

5막: 이제 힘이 다한 오스몬드의 마법, 두려움에 떨며 오스왈드와 아서왕의 결전에서 오스왈드가 승리하길 기도할 뿐이다. / 최후의 결전, 성에서 나온 오스왈드는 단 둘의 결전을 제안한다. 왕관과 에멀린을 둔 마지막 결투, 마침내 아서왕이 승리하고 군대가 물러가는 조건으로 오스왈드는 생명을 유지하지만 오스몬드와 땅의 정령 그림발드는 영원한 지하의 세계에 갇힌다. 승리를 쟁취한 아서왕, 그는 모두의 축복 속에 에멀린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이러한 5막 중 가장 사랑 받는 곡이라면 오페라의 후반부, 극 중 비너스가 부르는 'The Fairest Isle'로 조수미의 앨범 에서 그녀의 목소리로 만나볼 수 있다. (계속)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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