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회유용으로 마을회 이용
합의 위한 금전 매수 정황 증언
재정 놓고 대표간 법적 공방도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7년 포럼에서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진행한 구술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폭력의 지속과 마을공동체의 해체-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해체된 '마을'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 기록을 압축해 3회 연재한다.

◇보상금 차등 지급 등 자본을 활용한 갈등의 조장

한국전력은 보상금을 마을이나 개인에 따라 차등 지급함으로써 갈등과 분란의 씨앗을 공동체 내부에 심어 놓았다. 보상금의 차등 지급 문제는 송전탑 및 송전선로로부터 1㎞ 이내 지역에 대해서만 보상금을 지급하는 송주법과 맞물려 지역 내에서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야기하고 있다.

<청도면 D마을 / 20170122(구술 연월일) / S씨 자택(구술 장소)> 조사자 : "송주법 혜택은 어떻게 받고 계세요?"

구술자(S씨·남·63) : "전혀 못 받았다. 1㎞ 벗어나는 자기 집안 사람들, 친한 사람들은 다 줬다. 이 집은 1㎞ 안에 있는데도, 송주법 관련 보상도 전혀 듣지도 못했다. 전기세 감면은 작년부터 나왔다. 그것만 받아 봤다. 듣기로는 50퍼센트는 개인에게 지급되고 50퍼센트는 마을기금이라던데,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도 아직 한 번도 안 받았다. 안 받아봐서 잘 모른다.(구술 내용 요약)

<단장면 Y마을 / 20170123 / K씨 자택> 구술자(K씨·남·73) : "이장한테는, 합의가 잘 안 되고 계속 반대하고 그러니까 일부라도 합의를 이끌기 위해서 '과반수를 만들면은 두당 100만 원씩 주꾸마' 이렇게 제의를 했다는 말도 있어요. 이건 사실을 모르죠. 이장한테 '50%를 넘기면 넘겨주면, 처음에 합의한 10명이 부족하다, 10명을 합의가 되도록 두당 얼마 주꾸마' 한전이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 지난 11일 밤 밀양 영남루 앞에서 열렸던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7년 촛불문화제.   /이일균 기자
▲ 지난 11일 밤 밀양 영남루 앞에서 열렸던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7년 촛불문화제. /이일균 기자

◇'마을자치' 공적 논의구조의 붕괴

도시에서 '반'이나 '동'이 실질적인 공동체로 기능하지 못하는 데 반해 농촌에서는 이들 공동체가 공적 담론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장(場)으로 기능하며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구술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송전탑 건설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마을 자치의 공적 언로와 사회적 체계들을 회유와 압박의 통로로만 이용하려 했다고 한다.

<상동면 K마을 / 20170121 / A씨 자택> 조사자 : "2005, 2006년에 조금씩 마을에 알려지면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은 어땠나요?"

구술자1(K씨·남·74) : "거의 다 반대는 했다."

구술자2(A씨·남·69) : "Y마을은 ○○○이라는 사람이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갔는데, 나에게 양심선언을 했다. Y마을은 식당에 남자 8명이 모여서 한전인지 S면 개발위에선지 공무원들이 계장이나 면장들에게 연락해서 술, 밥 사 주고 돈을 20만 원씩인가 줬다고 한다."(구술 내용 요약)

<단장면 D마을 / 20170124 / 밀양 시내 중심지 카페> 조사자 : "마을이 합의됐다는 보도가 된 게 2013년 11월인가요?"

구술자1(P씨·여·45) : "단식 끝나고."

구술자2(K씨·남·46) : "11월 20, 30일 사이. 단식하러 서울에 간 사이에 동장이 공권력에 기가 죽어서 혼자 합의한 거다."

주민들은 몇몇 이장들이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민들에게 거짓을 말하기도 했다고 구술하였다. 또한 일 년에 한 번 마을 동회(洞會)에서 주민들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던 마을 재정에 대한 회계 보고도 사라졌다. 어떤 마을 사람들은 합의 대가로 마을에 들어온 돈이 얼마인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몇몇 마을은 이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마을 주민과 이장, 혹은 5인 주민 대표 간에 법적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 2013년 10월 2일 오전 8시 40분 단장면 바드리 마을 89번 한전철탑 공사현장 부근에서 쇠사슬로 서로 몸을 묶고 앉아있는 주민들. /경남도민일보 DB
▲ 2013년 10월 2일 오전 8시 40분 단장면 바드리 마을 89번 한전철탑 공사현장 부근에서 쇠사슬로 서로 몸을 묶고 앉아있는 주민들. /경남도민일보 DB

◇마을 공동체의 자치 시스템의 훼손과 공공성의 상실

마을 주민들이 선출한 이장을 외면하는 대신 한국전력은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주민대표 5명으로 구성된 협상대표단을 만들게 하여 그들과 합의-보상 문제를 논의하였다. 한국전력은 이들 5인이 반드시 마을회의 등을 통해 선출된 이들이어야 한다는 조건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

<상동면 G마을 / 20170121 / A씨 자택> 구술자1(K씨·남·74) : "한전에서 한 마을에서 주민대표 5명을 뽑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대 주민 5명을 뽑았는데, 나도 포함됐다. 인감을 떼 달라고 해서 안 되겠다고 하니까 나에게는 빠지라고 하고 마을에서 뽑은 대표가 아닌, 여기 살지도 않는 사람들을 대표로 세웠다. 이틀인가 지나니까 반대 대표가 아니라 찬성 대표가 되어 버렸다."(구술 내용 요약)

<단장면 D마을 / 20170124 / 밀양 시내 중심지 카페> 조사자 : "5인 주민대표가 구성된 과정이 어떻게 됐나요?"

구술자(K씨·남·46) : "마을보상금이 몇 억이 되는데, ○○○가 마음대로 쓸려고 ○○○ 주도 하에 5인 대표를 뽑았다."

조사자 : "마을회의를 한 게 아니라 임의로 구성한 건가요?"

구술자 : "그렇다. 마을 전체 보상금은 한 5억인가. 개별보상과 마을발전으로 나누는데. 개별보상금은 가구당 250만 원. 마을기금은 3억 얼마로 알고 있다. 우리 동네는 아파트를 샀다는 것 같다. 5인 대표 공동명의로 산 거다."

▲ 2014년 1월 25일 밀양역 광장에서 열린 밀양 희망버스 문화제.   /경남도민일보 DB
▲ 2014년 1월 25일 밀양역 광장에서 열린 밀양 희망버스 문화제. /경남도민일보 DB

◇마을 공동체의 분열과 공동체 문화의 해체

주민들이 말하는 한국전력의 소위 대응 매뉴얼이라는 것 가운데 가장 여러 번 언급된 것은 마을 공동체 파괴에 관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이것이 합의를 목표로 하는 한국전력의 의도된 행동의 결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전력의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는 공동체의 분열이었다.

<산외면 G마을 / 20170123 / 골안동사> 구술자1(A씨·남·62) : "갈등 심합니다. 회의하면 뭐, 회의가 안 되는데, 뭐. 맨날 싸우고, 욕하고…."

구술자2(P씨·남·70) :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은, 이, 원초적으로, 지능적으로 일을 해요. 지능적으로, 이거는 지능적으로, 한전이 깔아놓고 지능적으로."

구술자1 : "지능적으로도 그렇고, 한전 놈들이 본래 마을 주민들이 단합되면 즈그가 저항이 더 커지니까 와해시키기 위해서, 이것도 자기들 매뉴얼이 있다 하더라고, 소문에 의하면. 어떻게 마을을 그, 분란시키가지고 마을 주민들끼리 싸우구로 만들고 힘을 빼라 이기지. 전쟁하면은 적과 싸워야 되는데 내부가 싸우도록 만드는 기라."

<단장면 D마을 / 20170124 / 밀양 시내 중심지 카페> 구술자1(K씨·남·46) : "지금도 말을 안 합니다, 지금도."

구술자2(P씨·여·45) : "인사도 안 하고…. 지금 같은 경우는 그, 보통 혼자 사시는 할머니도 계시잖아예. 동네 아저씨, 아저씨도 아니지. 할배지, 그 사람도. 자기 손자한테 저 할매는 인사하지 마라 카고 이란다 안 합니까, 대놓고."

◇나오며

- 전략 -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 추진과 이에 대한 반대 운동'의 사건들은 어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원전의 건설을 멈추게 한 사건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 정권의 부도덕함을 입증하는 사건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 물정 모르는 할머니들이 떼를 쓴 사건일 것이다.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밀양의 마을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밀양에서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어떤 싸움을 했는지 새로운 이야기가 기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구성이 개인이나 특정 지역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합의한 내용으로 천명되는 과정이 뒤따라야 '파괴된 마을'에서 살아온 이들, 혹은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새로운 마을을 향한 희망이 열릴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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