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공무원·이장 등 동원
집집마다 찾아가 합의 종용
선물 주거나 약점 잡아 압박
반대하는 주민과 분열 조장

7년 전 오늘,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 인체와 농축산물에 피해를 주는 765㎸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목숨까지 던져가며 10년 이상 투쟁했던 주민들을 강제 해산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관련 포럼에서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는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진행한 구술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폭력의 지속과 마을공동체의 해체-밀양 765㎸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해체된 '마을'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 기록을 압축해 3회 연재한다.

◇합의를 압박하는 한국전력의 패턴화된 대응

사업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점검되고 합의된 다음에는 예상 가능한 피해 내용과 규모를 측정하고 이에 대한 보상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피해에 대한 점검은 치밀하다 해도 언제나 피해 주체의 입장에서는 부족하기 마련이므로 한계를 두지 않고 밀어붙여야 하며 보상은 피해 당사자들과의 끊임없는 협의를 통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구술 조사 과정에서 조사자들은 이와 같은 과정에 대한 진술을 단 한 차례도 들을 수 없었다. 한국전력은 오로지 합의를 종용하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이 과정에서 매우 전략적이고 패턴화된 대응 방식을 드러냈다.

<부북면 Y마을/20160730(구술 연월일)/Y씨 자택> 구술자(S씨·남·57): "이 정부에서 돈하고 찬반논리로 해갖고 이간질을 시킨 기다, 정부에서. -중략- 다 참 야비해요, 야비해, 완전. 어쨌는가 알아요? 저번에 한전에서 6급 이상 공무원인가 7급 이상 공무원이 한전에 7시간인가 몇 시간 교육을 받고 각개전투로 집집마다 돌면서 어, 설득시킨다 돌아댕겼어요, 공무원들이."(구술내용 요약)

▲ 지난 2일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만난 이운우(46·송전탑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한 고 이치우씨 친족) 씨가 마을 앞 송전탑 102호기 앞에서 말했다. 7년 전에 만든 티를 지금도 입고 있는 그는
▲ 지난 2일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만난 이운우(46·송전탑에 반대하며 분신 사망한 고 이치우씨 친족) 씨가 마을 앞 송전탑 102호기 앞에서 말했다. 7년 전에 만든 티를 지금도 입고 있는 그는 "마을 사람들끼리 한쪽은 반대하고, 또 한쪽은 찬성하고. 많이 싸웠다. 갈등도 컸고, 골도 깊어졌다"고 했다. /이일균 기자

<단장면 Y마을/20160724/K씨 자택> 구술자(K씨·남·72): "그게 인제 어떻게 되는 과정에 한전이 그냥 앞장서고 저기 단장면 있는 사람을 포섭을 해요. 제일 우선적으로 주저앉히기 위해서, 그 수법은 자기들이 수많은 수법 중에 제일 먹히는, 50년 철탑을 세우면서 가장 효과적인 수법…. 자기들 말로는 뭐 53가지나 되는 수법이 있대요. 그런데 아주 그런데 나쁘게 주민들한테 뭐라고 캤나 하면, '아이고 당신들 뭐 막는다고 해 쌓는데, 할매들, 앞으로 일 년 후에 손, 손발, 앞발 뒷발 다 든다, 두고 봐라, 내 손에 장을 지지라'…. 이 놈들이 그렇게 할머니들한테 욕을 하고 무시하고 그런 야유를 보내고 그런 짓을 했어요."

구술자1(K씨·남·71): "그때는 시청 직원들까지 다니고 했는데…."

구술자2(K씨·여·61): "2013년도부터는 동장님, 면직원들 137명인가 교육시켜가지고 계장 과장급들 교육시켜가지고 각 마을마다 다 풀어놔가지고 낮에 쉬려고 있으면 여기서 전화 오고 저기서 전화 오고, 이랬었어요."

주민들은 동네 이장이나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이 한국전력 직원들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면사무소나 심지어 시청 직원들까지 나서서 이들을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성향이나 생활 조건, 여러 가지 환경 등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순차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시청 공무원들까지 나서니 주민 입장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나라에서 하는 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민에게 한국전력은 일개 공기업이 아니라 국가 기관을 배후에 둔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회유와 협박을 통한 합의 종용과 분열의 조장

구술에 참여한 주민이 언급한 한국전력의 대응방식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회유'와 '협박'이었다. 주민 불안을 해소하거나 사업의 정당성을 타당한 방식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서에 도장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주민의 일상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한 끝에 마을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합의서 날인을 받아갔다는 것이다.

<부북면 Y마을/20170119/Y씨 자택> 구술자(P씨·여·75): "우리 집에 한전 직원이 본사에서 집에 왔는 기라. 저그 엄마가 외가가 우리 ○가라, 직원 말이. 이모가 터미널 거기서 식당을 하고 있어. 이모를 통해가지고 즈그 엄마랑 우리 집에 찾아왔어. 안 넘어가니까 이모 통해가지고 우리 아저씨 꼬을려고…. 엄마랑 이모랑 우리 집에 수박을 사서 온 거라. 절대로 나는 안 된다, 우리 집에 오지 마라 했는데 얼마 있다가 한전 직원 이게 지 엄마랑 이모랑 우리 집에 또 왔는 기라. 그때는 내 화장품 세트 사고 탁주 두 병 사고 수박 사고…."

<단장면 Y마을/20170123/K씨 자택> 구술자(K씨·남·73): "어떤 식으로 하느냐…. 아까 말한 대로 '너희 앞으로 여러 불이익을 당한다', '너가 무슨'…. 시골에 대개 보면은 집들이 움막이라든지 우사 축사 이런 것이 불법이에요. 그런 걸 그냥 허가 안 받고 그런 게 많습니다. 이걸 갖다가 약점을 잡아서 축사 뜯으라 할 거다 이러하면 기가 찬 거예요. 이건 협박이지 싶어요."

<단장면 Y마을/20170123/K씨 자택> 구술자(K씨·남·73): "그놈들이 설득 방법 중 아주 나쁜 방법이, '당신들 이렇게 계속하면 자식들 회사에 다 쫓겨난다' 이런 루머를 퍼트린 거예요. 이게 아주 핵심 문제 되는 거라고…. 그러니까 동네 할머니들이 '우리 아 회사에서 쫓겨난단다'…. 근데 그게 공무원이면 그럴 수도 안 있겠습니까만은, 이거는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 다 쫓겨난다는 루머를 퍼트린 거예요."

함께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웃이 왜 합의서에 도장을 찍게 되었는지, 도장을 찍은 그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주민들과 그렇지 않은 주민들 사이에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함께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웃이지만 지금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가깝게 지낸 만큼 서로에 대한 상실감이 크고 상실감이 큰 만큼 서운함이나 분노의 감정도 커져서 갈등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깊어지기만 하였다.

▲ 2013년 8월 12일 한국전력공사와 시공사 직원 등 관계자들이 밀양시 내일동 밀양 관아 앞에서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거리 홍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문정선 당시 시의원.   /경남도민일보 DB
▲ 2013년 8월 12일 한국전력공사와 시공사 직원 등 관계자들이 밀양시 내일동 밀양 관아 앞에서 송전탑 건설과 관련한 거리 홍보전을 준비하는 동안 손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문정선 당시 시의원. /경남도민일보 DB

◇공동체로부터의 소외와 배제 기제를 통한 압박

<단장면 D마을/20170124/밀양 시내 중심지 카페> 구술자2(K씨·남·46):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앞집에 가서는 뒷집이 합의했으니까 빨리 도장 찍어라, 뒷집 가서는 앞집이 합의했으니까 도장 찍어라, 해서 온갖 술수를 많이 부리면서 합의를 이끌어낼라고 했지요."

<상동면 Y마을/20170120/J씨 자택> 구술자1(Y씨·여·71): "가까운 사이가 더 힘든 게 무엇이냐면, 옛날에는 형님 아우 잘 지내다가 요즘은 서로 돌리고 그냥 지나가. 그게 제일 답답하고…. 갈등이 너무 심해. 왜 심하냐. 옛날에 그렇게 지내던 사이가 정 없다고 못하거든요. 옛날 싸우고 할 때, 데모하고 할 때 '뭐 먹어라', '네가 바쁘니 내가 가고'…. 서로 그래 가다가, ○○○이 동장이 되고 나니…. 한 사람이라도 같이 가지 합의는 절대 없다 했거든. 그래 내가 같이 간다 안 했나, 왜 이런 짓을 하나 했더니…."

구술자2(P씨·여·72): "'정부에서 하는 일은 안 된다, 왜 안 되는 일을 하냐', 이러데."

구술자1: "'너희는 바보다, 바보. 너희 그리 한다고 송전탑이 안 들어서는 줄 아나'…."

구술자3(K씨·여·61): "그런 식으로 하니까, 회관에 합의 본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합의 안 본 사람들이 안 가고, 합의 안 본 사람들이 앉아 있으면 합의 본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 거야. 그게 무슨 마을입니까."

마을 사람들 다수와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마을로부터 내쳐지거나 마을 사람들의 동아리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농촌 지역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이 이와 같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조건 속에서 누군가 주민 한 사람에게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합의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도 더 큰 불안과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 '당신을 제외한 모두가 합의했다'거나 '당신이 합의하지 않아서 모두가 괴롭다'는 말은 주민들을 합의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지닌 '주술'로 작용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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