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설계획 확정해 놓고도 주민에 제대로 알리지 않고 강행
한전, 보상금 주먹구구식 지원... 피해대책 아닌 합의·보상 난무
"돈이 원수" 마을공동체 파괴

11일이면 밀양송전탑 행정대집행 7주년이 된다. 인체와 농축산물에 피해를 주는 765㎸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목숨까지 던져가며 10년 이상 투쟁했던 주민을 강제 해산하고 공사를 강행했던 날이 그날이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관련 포럼에서 놀라운 자료가 공개됐다. 발표자로 나선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진행한 구술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국가폭력의 지속과 마을공동체의 해체-밀양 765㎸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해체된 '마을'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2005년 밀양송전탑 주민설명회 때부터 송전탑이 들어선 이후 2017년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이 기록을 오늘부터 3회 연재한다. 지면 사정으로 발표자료 원문을 압축하되, 객관적 전달을 위해 원문 표기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2005년 주민설명회

밀양 765㎸ 송전탑 건설 추진 과정에서 지역민들은 초기부터 관련 정보를 전혀 제공받지 못했다. 2000년 1월 제5차 장기 전력수급계획 확정에 관한 산업자원부 공고(제2000-3호)를 통해 정책적으로 이미 제안된 바 있으며 같은 해 8월에 송전탑 건설 계획이 확정되었으나 정작 밀양 지역 주민들에게 관련 내용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05년 설명회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은 거의 없었으며, 그나마 참석한 이들 또한 관련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동면 Y마을 / 20160924(구술연·월·일) / K씨 자택> 구술자(K씨, 여, 60세) : "그때만 해도 설명회를 갖다가 여기 상동면사무소에서 한 번 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예. 왜 그런가 하면, 내가 그걸 왜 기억을 하는고 하면, 뭐 송전탑이 들어온다 해쌓아도 생전 송전탑이 뭣인지를 갖다가, 저희들은 지나가면서, 물론 서울 이렇게 가고 관광 다니면서 송전탑은 서 가 있었겠죠, 산에. 그렇지만 그게 송전탑이라카고 안 봤기 때문에 저희들은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부북면 P마을 / 20170124 / K씨 자택> 구술자(P씨, 남, 60대) : "한전에서 처음 설명회를 할 때 참석했었다. 이주한 지 두 해쯤 되는 시점이었다. 본동에서 8㎞ 정도 떨어진 D리에서 설명회를 했는데, 실제로 D리는 송전탑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기도 곤란할뿐더러 반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그런데도 해당 지역 주민들 위주로 설명회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한전이나 국가기관에서 하는 설명회나 공청회는 형식적일 뿐이지 정확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설명회에서 싸움이 일어났다."(구술 내용 요약)

▲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가 2013년 11월 29일 오전 밀양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가 2013년 11월 29일 오전 밀양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돈으로 주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공동체를 궤멸하는 한전을 감사원 국민감사 청구로 고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경남도민일보 DB

◇이장과 주민 대표들의 정보 독점

<단장면 D마을 / 20170124 / K씨 자택> 구술자(S씨, 남, 44세) : "설명을 일일이 다 해야 되니까, 할매들은, 물어보면 할매들이 아무도 몰란 거야, 그걸. 그러니까 어떻게 하느냐면 도장 받고 나면 또, 앞에 그 사람이 하듯이 지도 똑같이 그렇게 한 거야."

조사자: "할머니들한테 설명했더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구술자: "'아니 몰랐다, 우리는 합의된 거 몰랐다'고. 그 뭐, 도장 찍어 달라 캐갖고 그래, 이장이라 카는 파워가 시골에서는 그렇거든예. 그래서, 그렇게 떡 해주고 나니까 아니, 우리는 합읜 줄 몰랐데이…."

<상동면 Y마을 / 20170120 / J씨 자택> 구술자1(K씨, 여, 61세) : "자기들끼리 5명이 말을 다 맞춰놓고 한전하고는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어요. 회의가 마무리가 되었는데, 며칠 안 있어서 합의 본다고 다시 모였던 거지. 합의서를 처음 다 나눠줬거든요. 그날 저녁에 다시 회의를 하는데 급하게 퇴원을 해가지고 급하게 동장을 찾아갔어요. 한 2시간을 이야기를 했어요. '동장님, 동네 주민들 마음이 다 모이면 나도 합의서 도장을 찍겠구만, 꼭 이렇게 해야겠는지 말을 해보자' 사정을 했어요. 그 이야기를 하는데 2시간을 했어요."

◇송주법을 둘러싼 갈등

2014년에 공포되어 2015년부터 시행된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명 송주법)'에 의하면 송전탑 주변 1㎞ 이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과 이들의 마을은 해마다 일정 금액의 보상금을 지급받게 되는데 이와 같은 보상은 사용처 등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명확한 법률적 지원 내용조차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역민들이 드물었고, 마을기금의 사용 방식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이 거듭되고 있었다. 구술 조사 과정에서 만난 지역의 고령 여성 노인들은 대부분 송주법 관련 보상 기준이나 보상금액, 보상금 사용 제한 등의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단장면 S마을 / 20170121 / 사연마을회관> 구술자(Y씨, 여, 63세) : "한전에서 마을발전기금이 나와서 그 돈으로 (여행) 다녀온 거다. 한전에다 사진을 보내야 돈이 나온다. 송전탑 때문에 마을발전기금이 조금 나오거든. 여행 갔다. 강원도, 전라도, 통영."

조사자 : "돈이 여행 갈 만큼 많이 나와요?"

구술자 : "놀러가는 돈은 나온다. 마을 발전기금이 송전탑에서."

조사자 : "그 법 때문에 나오는 거죠?"

구술자 : "맞다. 우리 마을 송전탑 몇 개나 있어서. 이제 마을발전기금이 해마다 나오는데, 그거 가지고 관광 사업을 하는 거다. 마을발전기금은 천 단위는 넘을 거다. 한 번 놀러 가는 데 500씩 드니까…."

<단장면 D마을 / 20170124 / 밀양 시내 중심지 카페> 조사자 : "D마을 안에는 1㎞에서 벗어나는 주민도 있지 않나요?"

구술자2(P씨, 여, 45세) : "안 데려가는 거지."

구술자1 : "동네 기금으로 치면 그 사람들도 동네 사람이기 때문에 마을공동사업비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쪽과 해당되는 개인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쪽 등 말이 많다. 놀러 갈 때도 그 사람을 데려가느냐 마느냐로 논란이 있다. 계속 사소한 게 싸움이 된다."

◇합의와 보상 위주의 담론 구도 형성과 보상 체계의 부재

마을 주민들의 구술 내용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인지한 것은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마을 공동체 내부의 공적 담론이 송전탑의 안전성이나 필요성, 송전탑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대비책 등을 중심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합의 여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이 합의 문제가 전적으로 보상금의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돈이 원수다'라는 말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단장면 Y마을 / 20170123 / K씨 자택> 구술자(K씨, 남, 73세) : "마을마다 30개 마을의 보상금이 차이가 나타나거든요. '그게 기준이 뭔가 하는 보상금 마을별 보상금 산출근거 기준을 제시하라, 정확하게 제시하라, 그리고 산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했는데 공개를 안 하는…. 버티는 거예요. 왜 그런가 했더니, 어떤 마을은 송전탑이 많지도 않은데 금액이 많고, 어떤 동네는 적고…."

<부북면 Y마을 / 20170119 / Y씨 자택> 구술자(K씨, 남, 80세) : "돈이 부락 주민들이 받은 게 똑같아야 하는데 다 다른 거다. 100만 원이나 3500만 원 받은 사람도 있고…."

마을 내부의 모든 논의는 '그래서 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되었다. 그 밖의 모든 논의는 무용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합의서 날인은 개별 보상금의 수령 가능 여부와 마을 보상금 수령 가능 여부 문제로 직결되었다. 결과적으로 합의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주민은 개별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함으로써 개인적인 손실을 입음과 동시에 마을의 발전을 가로막고 마을 재정을 악화시키는 구성원이라는 낙인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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